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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Feb 10. 2024

단양. 뚜벅뚜벅 가을을 지난다

 단양에 다녀왔다. 목표는 패러글라이딩. 개인적인 일로 자주 들르던 곳으로 매번 버스 터미널 건너 산 정상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 해봐야지 생각했었다.

하늘 위에서 소리를 지르는 건 어떤 기분일까.


 여행 기분 좀 내려고 기차로 갔는데 단양역에서 픽업도 해줬다. 늘 걷던 길을 커다란 밴을 타고 달려 산길로 들어설 때 이미 신났고 정상에 서니 야호- 하고 외치기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순식간에 하늘로 부웅 떠오르는 느낌. 그리고 단풍이 든 풍경과 귀를 때리는 바람에 배로 신났다. 내가 원래 이렇게 웃음이 많았던가?


 휙 날아서 산을 내려왔으니 이제 뚜벅뚜벅 걸어서 구경시장으로 간다. 점심으로  마늘 순대국밥을 먹었다.

 원래 순대국밥에 찰순대는 좋아하지 않지만 단양 마늘순대는 속에 든 편마늘의 알싸한 맛이 좋다. 집에 가져가려고 냉동으로 파는 순대도 포장했다.

 냉동 순대가 한 팩에 만 이천 원이나 해서 관광지 다 됐다고 생각했다.


 기념품점에 가서 마그넷도 샀다. 여행마다 한 개씩 기념으로 사곤 한다.

 패러글라이딩 하는 사람 캐릭터 모양의 작고 심플한 것과 고민하다가 산 위에서 남한강을 내려다보는 그림으로 골랐다.

 이런 기념품점 또는 소품샵이라고들 부르는 예쁜 가게가 생겼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관광지 다 됐다고 생각했다.

십 년 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내 고향도 아닌 동네에서 느끼는 격세지감.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예매하고 미리 봐두었던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셨다. 마늘 모양으로 얼린 커피 얼음이 들어있었다. 전에는 마늘 모양이라곤 가로등이 다였다. 다시 한번 격세지감. 단양 마늘, 출세했구나.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 언젠가 본 적 있는 전기자전거를 빌렸다. 전기로 가니까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곧잘 나간다. 힘 안 들이고 기분내기네- 하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허벅지에 근육통이 왔다. 엉망인 체력과 멋진 풍경.

 자전거로 남한강변을 달리면서 아까 산 마그넷은 역시 남한강이 보이는 그림을 고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강변의 자전거 도로가 끝날 때까지만 가려고 했는데 한 시간이면 도담삼봉도 다녀온다고 해서 거기까지 갔다. 대여점 사장님은 전기자전거가 생각보다 빠르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전 치킨배달 경력자라고요.

 찻길을 건너 도담삼봉으로 가는 길. 단풍이 멋진 길 사이를 달리면서 내가 좋아하는 파랗고 높은 하늘을 실컷 봤다.


 아무도 없는 길을 내달리면서 페퍼톤스의 오후의 행진곡을 불렀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걷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 제법 어울리는 가사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아주 많이 웃고 신나서 행복했다.

 가끔 이런 느낌을 즐겨야지.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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