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을 하면 좋다는데 어떻게 해도 마음은 비워지지 않는다. 비우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라는데 나는 생각의 한 꼭지마다 멈춰 그물에 걸린 듯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러면 내 몸에 집중해 보라기에 해보면......, 이번엔 코에 걸린 안경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아 견딜 수 없다.
새벽 예불을 준비하는 이른 시간, 법당에서 부처님 앞에 놓인 다기에 깨끗한 물을 채울 때면 나는 언제쯤 비워져서 맑은 것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생각한다.
'부처님, 저는 언제에나 그렇게 될까요?'
황금빛 미소만 짓는 부처님은 답이 없으시고, 나는 부처님 뒤로 법흥사 적멸보궁 소나무 숲을 본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으로 불단 위엔 부처님이 안 계신다. 텅 빈 불단 뒤로 난 창으로는 사자산 소나무 숲이 고요하게 시야에 내린다.
차로 가면 멀지 않은 거리. 시내를 벗어나면 주유소 가격표지판을 살피기 시작한다. 적당하다 싶은 때 주유까지 넉넉하게 하고 법흥사로 향한 것은 얼마 전 시작한 33관음성지순례 때문이다. 관음성지 도장을 하나 더 찍기 위해 나서는 길. 멀리 갈 때는 항상 매는 배낭을 챙기기 때문에 그것을 수행가방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오늘은 금방이니 물 한 병을 차에 싣고 평소에 드는 작은 가방에 도장을 찍을 인장첩만 챙겨 넣었다.
관음성지순례니 관세음보살님께는 꼭 인사를 드리고 도장은 보통 종무소에 있으니 찾아가서 찍는다. 그러고 나서 법흥사 관세음보살님 뒤로 아름드리 소나무 길을 따라 오른다.
'피톤치드! 나오는 것 같네.'
하면서 괜히 숨을 깊게 쉬며 오르고 올라 적멸보궁에 이른다. 부처님께 인사를 드릴 때, 어떨 때는 이마를 대고 오래 일어나지 않는다. 왠지 드릴 말씀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막상 오니 잘 모르겠어요.
뭐가 있긴 했었는데 산에 오고 절에 오면 다 괜찮아지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넓다란 도량은 고요하고 나는 걸음을 떼지 못해 적멸보궁 앞에서 눈을 감아본다.
불어도 부는 줄도 모르던 바람은 숲에서는 피부에 와닿는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는 파도로 밀려오고 그대로 내 몸에 감기는 탓이다. 솔잎 사이로 바람 소리가 지나간다.
바람이 불고 나는 조금 흔들린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붙박이지 못해서 눈을 뜨면 소나무 숲은 그대로 눈앞에 있다.
산세는 부드러운 선으로 늘어져 누우라고 차려 둔 솜이불 같다. 나는 그 위에 내려앉고, 내려앉아 이제야 봄내 소임을 다하고 떨어지는 꽃잎처럼 생각을 쉬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