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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Nov 25. 2024

여권 발급신청이 정상적으로 접수되었습니다.

 여권 발급 신청을 마치고 시청 현관을 나서기도 전에 카카오톡에 알림이 도착했다. 10년 전에 첫 여권을 만들 때도 이런 걸 보내줬었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 10년 동안 나와 열심히 쏘다닌 여권. 처음에 시청에서 끼워 준 시 로고와 슬로건이 인쇄된 여권 케이스 그대로 이제는 내 서랍 속에 들어있다.

 세계여행을 다니는 대학생이나 퇴사하고 해외 한달살기를 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에 내 여행이란 그저 조금 먼 산책에 불과하지만 나는 매번 집을 나서 길을 떠나는 때마다 하나라도 더 느끼고 담아오리라고 전의를 다지며 버스에 올랐다.


 요즘은 브런치에 여행을 다녀와서 쓴 일기들을 정리하고 있다. 잊혀지지 않을 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일기들을 읽으면서야 다시 생생히 살아나는 공간과 시간들도 있어 깨달은 줄 알았고 깨닫기만 하면 잊지 않을 줄 알았던 내 오만함에 또 놀란다. 나는 아직 어리고 아무것도 모른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남의 글을)읽고, 그래서 (아무거나)쓴다.



 지난 겨울의 끝자락. 여권 만료를 석 달 남기고 다녀 온 홍콩 이후, 한 동안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려고(내 원래의 성격대로!) 했지만 결국 여권을 다시 만들었다. 내년 겨울에 다시 머리를 여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한 생각이다. 떠나자. 거기서 죽어도 후회없을 곳으로 떠나자.

 때로는 일부러 ‘이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죽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만. 언젠가는 끝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요즘 나의 과제다. 물론 쉽지 않아서 여전히 몸부림치고 있지만.

 집에서 자다가 가고 싶다는 말처럼 내 삶의 말미를 생각해보자. 나는 크게 행복한 순간마다 생각한다. 내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이런 충만함이 있기를. 때로는 고단했으나 충분히 행복했노라고.



 퇴근 후 서둘러 차를 몰아 다행히 시청이 닫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찾는 건 점심시간에도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항상 겨울에 여행을 계획한다. 여름 휴가는 적성에 안 맞는다. 겨울에 따뜻한 곳으로 가는 게 좋다. 여름은 집에서도 피난할 수 있다. 에어컨과 배달 아이스크림만(배스킨라빈스 파인트 사이즈나 프로즌 요거트 같은) 있으면 된다. 이제 며칠 후면 파란 새 여권이 나온다. 그리고 나는 또 떠날 것이다.



 1년도 더 전에 몽골에 다녀와서 쓴 브런치북의 조회수가 최근에 다시 오르고 있다. (몽골 여행 일기는 여기)

 아마 오는 여름의 몽골 여행을 슬슬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 아닐까 싶다. 나로서는 드문 일이었던 여름의 여행. 나도 앞선 겨울부터 그 여행을 계획했었고 그곳은 기대보다 멋진 땅이었다. 또 여름이 오면 그곳을 찾는 많은 이들이 그 여름의 나처럼 눈길 닿는 곳마다 감탄하고 걸음마다 즐거움을 느끼다 오겠지. 그들과는 일면식도 없으나 같이 이 세상에 사는 누군가에게 좋은 감정이 늘어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닿을 일 없는 밤하늘에 별이 늘어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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