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토끼’였다.
새하얀 토끼. 어두운 길에서 유난히 도드라지는 색. 사람을 보고도 겁먹은 기색도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아무래도 누가 집에서 기르던 토끼 같았다.
눈이 마주치자 살짝 놀란 건 오히려 나였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토끼를 기른 적이 있었다. 그 녀석도 정말이지 새하얀 토끼였다. 내가 앉아 있으면 무릎 위로 기어 올라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몸을 웅크리고 잘 때는 커다란 솜뭉치 같았다.
매일 쓰다듬어주고 밥도 빠지지 않고 챙겨줬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녀석이 갑자기 사라졌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그냥 없어진 뒤였다. 엄마는 잠깐 문을 열어 둔 새에 나가버린 것 같다고 실수를 사과했지만 계속 울면서 엄마를 난처하게 했던 것 같다.
토끼의 귀가 뒤로 까딱 움직였다. 자세히 보면 그때 그 토끼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토끼는 다시 귀를 세우더니 앞발을 들어 세수를 한다. 꼼꼼하게 얼굴을 닦은 뒤에는 귀를 잡아내려 빗는다. 이제 곧 겨울인데 버려진 주제에 태평한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소리에 그제야 놀란 듯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이제 뭘 하려나 생각하는데 갑자기 일어서더니 달려가기 시작한다. 어두운 골목길로 흰색이 희미해진다.
따라가 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아마도 토끼는 이미 없을 것이다. 아쉬워해서는 안된다.
감기라도 오는 걸까. 목이 간질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