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캠핑

캠핑은 다음 기회에

by 이규호

2024년 9월 말, 를 입양한 지 이제 1년 정도 된 지금 첫 캠핑을 했다. '성견이니 괜찮겠지' 하는 편견(偏見)이 깨지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개고생'이라는 말은 아무 때나 쓰는 것이 아님을,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캠핑을 다닌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여름을 제외하고 봄, 가을, 겨울에 주로 다닌다. 여름 캠핑을 다니시는 분들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여름은 피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더위와 모기 때문이다. 나는 열이 많은 유형이어서 여름 나기가 힘들다. 나름대로 캠퍼로써의 틀이 있어 익숙하고 매번 편안히 쉬다 온다. 지만 그와 함께하는 행복한 캠핑에 대한 상상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다음 캠핑은 좀 더 심사숙고(深思熟考)하려 한다.


첫째와 둘째는 중학교 입학 후부터는 따라다니지 않는다. 초등학생인 막내만 함께한다. 조만간 막내도 형들처럼 안 가는 날이 올 것이다. 오늘은 우연찮게도 막내의 초등학교 별빛 축제일과 겹쳤다. 막내가 좋아하는 축제이다 보니 안 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축제도 마다하고 캠핑을 가겠다고 한다. 막내도 시루와 함께하는 캠핑을 그동안 많이 기다렸던 것 같다.



이번 캠핑장은 강원도 설악산 인근에 있다. 중/대형견 캠핑장이 아직은 많지 않다 보니 좀 멀리 가게 되었다. 중간에 동해 바다를 보기로 했다. 사실은 그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영동고속도로를 따라서 대관령 고개를 넘어 강릉에 진입하면서부터 그 좋던 날씨가 흐리다. 차창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조금씩 내리던 비는 폭우로 변했다. 내릴 엄두가 나지 않아 차창 밖으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10분 정도 기다렸지만 그칠 기미(幾微)가 없다. 그에게 바다를 못 보여주어 아쉽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 캠핑장으로 다시 길을 잡았다. 다행히 캠핑장에 도착하니 비가 많이 잦아졌다.



캠핑지기님과 간단히 이야기를 하고 예약한 사이트로 자리를 잡았다. 비도 오고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 빠르게 타프를 먼저 치고 그 아래에 짐이 비에 젖지 않도록 내린 후 텐트를 쳤다. 간단히 적었지만 그를 돌보느라고 평소보다 1시간 더 소요됐다. 사실 이때부터 고행(苦行)이 시작됐다. 그를 차 밖으로 내려놓자마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통에 정신이 없다. 땅은 왜 그렇게 파 데는지, 온통 흙 투성이다. 비까지 오니, 완전 거지 꼴이다. 대충 정리하고 아내는 식사를 준비하고 나는 장작을 피웠다. 막내도 시루를 돌보느라고 땀 좀 흘렸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놀더니 물 좀 먹고 누웠다.



다음날은 비가 그쳤다. 타프 사이로 쾌청한 바람과 파란 하늘 아래 설악산 자락의 풍경이 보인다. 이런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좋다. 잠시 멍 때리다, 흙 투성이의 그를 빗겨 주었다. 성견이 되면서 힘도 세졌다. 목줄을 꽉 잡아야 한다. 빠진 털이 바람에 흩날린다. 털도 많이 빠진다. 그는 특이하게 양쪽 귀 아래에 얇고 부드러운 연한 밤갈색 털이 길게 나있다. 다른 털과는 다르게 부드러워서 손가락에 전해지는 느낌이 좋다.


그는 신기하게도 배변을 밖에서 잘 보지 않는다. 산책시도 참았다 집에서만 본다. 배변 봉투를 산 후 딱 한번 썼다. 그날 아내는 기뻐서 증거 사진도 찍었다. 처음 배변 봉투를 써보는 경험이 즐거웠나 보다. 이후 쓴 일이 없다가 캠핑날 2번째로 썼다. 오전에 이리저리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아, 사람이 없는 장소에서 산책시켰더니 자리를 옮기면서 3번에 걸쳐 쌌다. 양도 많다. 그는 집에서 출발해서 다음날 오전까지 대략 하루 정도를 참았던 거다. 대견한 건지 어디가 문제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단하고 신기할 뿐이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기뻐하면서 그를 칭찬해 준다. 휴대폰이 없어 증거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아쉽다.



막내는 먹을 거로 그를 놀리며 장난친다. 그는 연신 낑낑 데며 달라고 울지만 막내는 절대로 주지 않는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주지 않는다. 주어도 괜찮다고 해도 안된단다. 얼마나 챙기는지 모르겠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라고 하는데, 집에서도 가끔 잘못 주면 나를 무서운 얼굴로 쳐다본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막내와 함께 그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 캠핑장 위쪽으로 올라가니 조그마고 앙증맞은 폭포가 나온다. 간단히 증거를 남기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계곡이 보인다. 내려가기 번거로워 보기만 했다. 여름에 와도 놀기는 괜찮을 듯싶다. 이 캠핑장은 펜션도 함께 있어 여름에는 펜션으로 와야 할 듯.



돌아오는 길에 멍비치 해변에 들렸다. 올여름 애견해변으로 인기를 끌었다는데 한산했다. 그는 처음 보는 바다가 무서운가 보다. 파도가 밀려 들어오자 도망간다. 파도가 두려운 건지 평소 산책 때는 잘 안 따르는데 막내를 졸졸 따라다닌다. 파도가 칠 때마다 파도 소리에 움찔움찔한다. 보더콜리 종이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소리에 좀 민감하기는 하다. 처음 들어보는 파도 소리라 더 그런가 보다. 한참을 막내와 그는 해변을 뛰어다녔다. 애견 카페도 들러볼 요량(料量)이었지만 고생 좀 한 캠핑이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내도 그냥 집으로 가잔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을 뿐. 집이 최고임.


숀(SHAUN)의 'Way back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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