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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색림 Jun 10. 2020

표류하는 내 인생

오늘 하루도 흘려보내며

아주 오래전에 어느 후배가 말했다. 우리 대학에 왜 왔느냐는 내 물음에, 그냥 흘러 흘러 왔어요, 라고. 겉으로 그래? 하면서도 속으로 퍽 한심해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이런 특수목적대학에 흘왔다 할 수 있을까,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거 아닌가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꽤나 확고한 직업의식과 투철한 사명감을 가졌단 자부심 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강력하다 생각했던 그 자부심이 현실을 만나 으스러져 먼지가 되기까지는 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때 그 후배가 한 말이 이해가 된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모르겠는 채로 인생의 흐름에 나를 떠맡기고 있다. 매일 먹고 싶은 걸 만들어 먹고, 읽고 싶은 걸 꺼내 읽고, 쓰고 싶은 걸 끼적인다. 그리고 한 시간씩 산책을 한다. 사회에 쓸모있는 존재가 되려 하지 않는다(그래 봐야 꼰대들 좋을 일만 하니까). 정신줄을 놓고 산다. 무언가가 되려는 노력 없이 그저 마음가는 대로 하루하루 나를 흘려보낸다.


나침반을 잃어버리고, 지도를 불태웠고, 노도 내팽개치고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다. 나는 흘러 흘러 어디로 가 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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