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의 '해방'을 축하하며
감꽃은 생각보다 앙증맞다. 통통한 방울꽃을 레몬즙으로 물들인 모습이다. 붕붕 대는 벌들이 모여들면 이따금씩 툭- 하고 땅에 떨어진다. 마당을 쓸어도 몇 시간 뒤면 다시 감꽃이 이불처럼 땅을 덮는다. 하릴없이 밟고 걸으면 자박, 자박, 소리를 낸다. 눈 밟을 때 나는 뽀드득 소리보다 조금 더 경쾌하다. 봄의 한가운데에서 레몬색 눈을 밟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건 마당에 감나무가 있어서다.
이 집에 살던 노인네는 성미가 고약했다. 노인네의 고약한 성격은 그가 기르던 우리 집 감나무에 상처처럼 남아 있다. 왜 그랬는지 몰라도 그 노인네는 감나무 몸통을 철사로 칭칭 감아뒀다. 나무를 보고 있으면 내가 질식할 것처럼 답답했다. 조 선생이 철사를 끊어내자 나무는 금방 안색을 되찾았다. 나무가 자라면서 철사가 남긴 흉터는 원래 높이보다 한 뼘은 더 높아졌다.
감나무는 지난해보다 감꽃을 훨씬 많이 피워냈다.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감꽃 천지다. 감나무가 고약한 노인네로부터 해방된 걸 자축하는 걸까. 웅웅대는 벌들은 아마도 그 해방을 축하해주러 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