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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닝 Jul 30. 2020

안녕, 나의 신입시절 1 - 평범한 회사원은 싫어서

나는 어떻게 기획자가 되었나 1탄

글을 시작하며


  IT 업계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때론 매니저로, 때론 PM으로) 근무한 지 벌써 7년차를 지나고 있는 요즘. 이제 갓 주니어 딱지를 뗀 자리에 선 시기에 들어선 만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도 생각도 부쩍 많아졌다.

  IT와는 하등 상관없는 과를 나와 우연히 들어선 이 업계에서- 도메인은 무엇이며, api란 무엇이며, 기획서는 무엇이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그 어느 것 하나 온전한 지식 없이 그저 발로 뛰고 배우며 알아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찌 이렇게 시간은 빨리 흐른단 말인가. 그래도 아직까지 밥은 벌어먹고 사는 걸 보면 그럭저럭 하고 있기는 한가 보다 싶은 마음에, 혼자 위안을 얻는다.

  아마 그 누군가도 비슷할 수 있겠지. 0부터 시작하며 힘겹게 홀로서기 하고 있을 전국의 수많은 기획자들- 그 중에서도 신입, 주니어들.. 아마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시간과 동일한 모양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비슷한 길에 서서 홀로 망망대해를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의 내가 그러했으니.

  그런 이들에게, 내가 지금까지 겪고 배워온 일들이 조금이나마 구체적인 예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나 스스로의 커리어에 대한 정리 차원에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안녕, 나의 신입시절 1-3편>

안녕, 나의 신입시절 1 - 평범한 회사원은 싫어서 https://brunch.co.kr/@sasap12/1
안녕, 나의 신입시절 2 - 선택의 갈림길 속에서 https://brunch.co.kr/@sasap12/2
안녕, 나의 신입시절 3 - 어떤 기획자로 살래? https://brunch.co.kr/@sasap12/3



제 꿈은 한국어 선생님이에요


  학창시절 반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다들 패턴이 비슷했던 것 같다. '판사/검사/변호사/선생님/운동선수/과학자..'같은. 지금의 관점에서는 다소 진부한 그런 류의 직업을 아이들은 곧잘 말하곤 했다. 나도 그 무리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흔한 레파토리랄까. '저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해서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는, 나 역시도 국어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생님이라는 진로 설정을 하며 (하지만 당시의 목표는 대학이 전부인) 그런 삶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고등학교 3학년, 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한국어 교사'라는 직업. 국어 선생님이 아니다. '한국어 선생님'이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직업이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한류 열풍이 불기도 전이고 한국어가 외국어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인식이 크게 없던 터라, 나에게는 나름 충격적이었을 정도로 새로운 세계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 후로 꿈이 무엇이냐는 대답에는 늘 '한국어 선생님'으로 답했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고 잘하는 국어를 가지고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꿈꾼다는 사실이 굉장한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평범한 회사원은 되기 싫어서


 그리하여 일편단심 '국어국문학과'로의 진학만을 꿈꾸었고 원하던 과, 원하던 대학교에 진학했다. 캠퍼스는 달랐지만 '한국어학과'라는 과도 별도로 있었기에 그곳으로의 복수전공도 꿈꾸고 있었다. 더 나아가 대학원 진학까지. 배움의 과정에서 여전히 꿈은 명확했고, 더 구체화되어갔다. 복수 전공을 위해 서울에서 수원까지 오가는 길도 마다하지 않았고, KOICA 한국국제협력단이 되어 해외 봉사를 꼭 나가겠다는 세분화된 목표도 세우며 나름 치열하게 노력했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면접도 2번이나 보았는데, 최종 신검 후 떨어진 히스토리도 있다. 왜 최종 선정이 안 되었을까에 대한 미련은 아직도 살짝 남아 있다.) 

  주위의 친구들이 경영학과로 복수전공을 할 때 나는 '평범한 회사원은 되기 싫어' 라는 말로 꿈에 대한 확신을 공고히 해나갔고 (지금 생각하면 참 오만한 말이지만.. 당시엔 그게 멋져 보이는 줄 알았다.) 대학교 3-4학년이 되고 남들이 다 취업 준비를 할 때에도, 다음 진로는 대학원이라는 생각으로 학교만 열심히 다녔다.


나름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던 시절. 국제협력단 신검 받을 당시엔 내가 바로 해외로 나갈 줄만 알았더랬다.




나 잘 사는 걸까?


그러다 4학년 2학기, 한 학기를 남겨두고 갑자기 미래에 대한 고민과 졸업에 대한 걱정같은 감정들이 찾아왔다. 고민 끝에 해결책으로 나는 한 달 여의 유럽여행을 선택하게 되었다. 갑자기? 

갑자기! 실은 나는 두려움이 많고 새로운 것에 대한 겁도 많은 사람인데 여행을 통해 나의 감정을 극복해보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갑작스런 휴학에 대한 승낙을 받고자 부모님께는 휴학계획서를 제출하고, 그 안에 유럽 여행을 위한 자금은 아르바이트로 얼마 확보 후 진행하겠다는 내용을 담아 OK를 받았다. 막상 결정은 했으나 아르바이트는 사실 제한적이었다. 하고 있는 과외 외에 어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지에 대한 결정도 없는 상태였고 일단 무작정 휴학만 한 셈이었다.




Connect the dots- 세상에 쓸모 없는 것은 없다


그러다 학교 게시판에 네이버에서 데이터 관련 아르바이트를 뽑는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내용은 이거였다. 맞춤법 검사기를 만들고 있는데, 거기에 필요한 데이터를 구축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나는 대학교 4학년 동안 어학(문학은 사실 별로 안 좋아했다) 공부만 주구장창 했고, 더군다나 복수전공을 하면서 맞춤법 관련 수업도 몇 개씩 듣고 있었어서 머리에 든 게 사실 그것밖엔 없었다.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선 맞춤법 규칙 외에 그 원리도 알아야 하는데 그런 걸 재미있게 공부했으니 나에겐 정말 딱인 아르바이트다 싶었다. 시기도 마침 휴학을 결심한 즈음이었다. 바로 지원했고, 합격을 했다. 아르바이트였지만 네이버 본사라는 곳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이 너무 설레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당시에도 IT선두 기업, 대학생이 가고 싶어하는 기업으로 널리 알려질 때였으니 말이다. 그 곳에서 내가 가진 맞춤법 지식을 활용하여 노가다(?)성 업무를 했다. 하지만 재미있었고, 일을 통해 내가 배웠던 맞춤법 지식들은 더 풍부해져갔다. 그것만으로도 성공이었지만-


그 때 처음 알았다. IT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국어학 지식이, 이런 곳에서도 쓰이는구나.

단순한 학습 데이터가 아니라 검색의 기반으로서 한국어를 분석해야 하니까. 품사와 단어, 단어 간 결합의 모든 정보가 이 곳에서는 정말 중요한 정보가 되는구나-라는 것을. 지금까지 알아온 나의 꿈과 인생의 시야가 트이는 경험을 했던 귀중한 9개월이었다.



당시 NHN이던 네이버의 사옥 (지금과 똑같긴 하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유럽 여행갈 준비에 들떠 마냥 기쁘기만 했고-



- 2탄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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