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PM 되기 - 신뢰, 좋은 서비스, 틀 깨기
한 해, 두 해 연차가 찰수록 대단한 스킬이나 지식이 엄청나게 쌓이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의 경험이 주는 교훈은 전혀 다른 결의 것 - 일하는 태도에 관해 깨닫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사실인 것 같다. 요 근래 일을 하며 느낀, 혹은 동료들을 어깨너머로 보며 배운 생각들을 가볍게 기록해보려고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요 몇 번의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일은 사람이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사실 그간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일의 80%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은 생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입~주니어 시절의 고정관념 때문인지 아직도 나는 '일'을 하는 것이란 ‘일’ 자체에 집중한다는 생각이 더 큰 것 같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의 감정적인 부분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해야 하는 일이니까 업무를 요청하고, 처리하고,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그렇게 일을 하고 나면 완료된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았다. 큰 조직에 있었을 땐 상대적으로 일 중심의 분업화(?)가 잘 되어 있었던 터라 나의 이런 일처리는 크게 불만 없이 잘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 작은 조직에 오니 일 뒤에 있는 사람이 더 크게 보이고, 크게 보이는 만큼 일 뒤에 있는 사람이 많은 역할을 한다는 걸 느낀다.
결국 일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옆의 동료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인 셈. 그렇다면 어떻게 잘할 수 있는가?
첫째, 전적으로 함께 문제를 해결해갈 내 옆의 사람, 그러니까 '동료'를 신뢰하는 것이 우선이다.
신뢰는 믿고 맡긴다는 것이다. 신뢰가 있다면 굳이 디테일하게 체크하지 않아도 으레 잘해주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신뢰가 있다면 상대의 결과물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서비스에서의 고민거리나 문제들도 함께 의논하며 만들어갈 상대로 생각하게 된다.
둘째, 신뢰는 관계에 기반한다. 동료와 좋은 관계를 맺으면 상대의 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다.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협업하는 사람 1이 아니라, 동료로서 좋은 태도로 대하고,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몰 톡이나 기회가 될 때마다 많이 이야기하면서 친해지자. 상황을 이해하면 산출물이나 퀄리티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PM으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상대의 스타일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성향을 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을 왜곡 없이 주고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맞춰가다 보면 되면 소위 ‘합이 잘 맞는’ 동료가 한 명 더 생길 수 있는 셈.
신뢰가 기반이 된 관계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관계를 만들기 위해 나를 깨보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보기도 하는 것.
이 두 과제가 앞으로의 내게 필요한 액션 아이템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서비스란 무엇인가? 이용자 수가 많은 서비스? 매출이 잘 나오는 서비스? 좋은 UX와 최신 기술이 잘 반영된 서비스?
아마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달라서 다양한 대답이 나올 것 같다.
회사에서 동료분과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해봤었는데, 우리가 내린 대답은 저 세 가지가 적절히 결합해야 좋은 서비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였다.
1. 좋은 철학 - 방향의 관점
서비스의 방향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어떤 철학을 사용자에게 제공하려고 하는 것인가를 잘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아무리 큰 배고 대단한 성능을 가졌어도 옳은 방향으로 가지 못하면 암초에 부딪히거나 어딘가에 도달할 수 없다. 마찬가지의 관점.
서비스가 그냥 “문제를 해결한다”의 목표에서 더 나아가 어떤 철학을 유저들에게 제공할 것인가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서비스가 좋은 서비스인 것 같다. 그리고 PM은 이 방향 설계에서 가장 힘을 쏟고 고민해야 하는 존재인 것 같다.
2. 좋은 디자인 - 실행의 관점
좋은 디자인이라고 함은 미적인 부분과 사용성을 모두 일컫는 것이다. 아무리 철학이 대단하고 좋은 가치를 내세워 개선해야겠다는 방향이 뚜렷해도 디자인적으로 그걸 잘 소화하지 못하면 유저들은 불편한 사용경험을 갖거나 브랜드나 서비스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프로덕트의 뼈대가 되는 UX나 브랜딩이 중요하다. 반대로 디자인만 엄청 대단해도 그게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금세 외면하고 말 것이다. 결국 좋은 철학 하에 그것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디자인이 반드시 결합되어야 한다. 그래서 실력 있는 디자인팀이 매우 매우 중요하다.
3. 좋은 개발 - 지속의 관점
엄청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방향도 명확하고, 디자인도 기깔나게 잘 됐는데 그걸 받쳐주지 못하는 개발이라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자주 버그가 난다면? 아니면 문제를 꼭 풀고 싶은 UX를 고민했는데 커버해줄 수 없는 개발의 한계가 있다면? 이용자들은 외면하고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니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개발이라면? 그래서 개발팀이 너무너무 중요하다. 좋은 서비스로서 쭈욱 유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개발이 잘 붙어야 화룡점정이 된다. 좋은 개발팀을 만나는 것, 단순히 서비스를 만든다의 차원을 뛰어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어느 것 하나 튀어도, 어느 것 하나 모자라도 좋은 서비스의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것 같다. 좋은 철학과 디자인, 그리고 개발이 잘 결합해야 좋은 서비스로서 그 걸음을 내딛는 것. 뻔한 결론인 것 같지만 다시 되새겨도 모자라지 않다!
그간 업무를 해가는 과정에서는 1) 적절한 프로세스를 잘 만들고, 2) 프로세스를 잘 지켜서 업무를 차근히 풀어내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번처럼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프로세스를 제안하거나 이야기해보는 일에 대해서는 거부감 없이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동료들의 업무를 보며 느끼는데 2번, 프로세스를 잘 지켜서 차근히 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명이서 일하다 보면 서로 간 이해의 레벨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프로세스는 최소한으로 레벨을 맞춰주는 마지노선이 된다고 생각했다. 혼선으로 인해 본질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을 막아주는 차원이기 때문에 잘 지키는 것까지가 베스트라고 인지했기도 하다.
하지만, 진짜 뛰어난 사람들은 기존의 틀과 방식을 확 깨지 않더라도 본질을 잘 지켜내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고 제안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단순히 정해진 것을 잘 지키는 수준이 아니라, 개선할 점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짚어내고 이야기해보는 것까지가 항상 그들의 사고의 범주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기존에 박힌 틀을 깨며 업무를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요 근래 해본다. 더 나은 게 없을까? 아니면 지금 이 상황에서 이 방법이 최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