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노가다였지만, 지금은 값진 경험 - 사용자 목소리 듣기
최근에 읽은 책 '프로덕트 오너(Product Owner, 김성한 저)'의 한 꼭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PO가 이행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의무 중 하나는 고객에게 집착하는 것이다. 현장이 있으면 현장으로, 공장이 있으면 공장으로, 판매처가 있다면 판매처, 심지어 단순하게 고객센터에 가서 전화 통화를 옆에서 들어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각각의 고객이 무엇을 불편하게 여기는지,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 등을 데이터까지 분석하며 파악한다." (p.52)
사실 '고객에게 집착하는 것'은 솔직히 대고객 서비스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말인 것 같았다. 내가 속한 IT뿐만 아니라 유통업계든, 심지어 자영업에도 해당이 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겟으로 보는 고객이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분석해서 그에 걸맞는 서비스/제품/상품/음식.. 등을 전달하는 것.
근데 이게 말로만 '알아야 한다' 라고 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용자를 알자고 하는데 어떻게 알아가는 거지? 사용자의 필요를 어떻게 분석하는 거지? 소위 데스크, 이렇게 자리에 앉아서 사용자를 알아갈 수 있는 걸까? 늘 했던 고민이고 생각이었다. 그러는 동시에 난 어떻게 사용자의 목소리를 들어왔던가... 다시 곱씹게 되었다.
한마디로 부제, '그때는 노가다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값진 경험이 된' 사용자 목소리를 들었던 경험에 대해서 적어보고자 한다.
내가 다녔던 두번째 직장은 채용 플랫폼이었다. 마침 내가 입사했던 그 즈음에 대표님도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그분께서도 입사 초반이라 의욕이 더 활활 타오르셨던 것 같다.
대표님의 오더 중 하나가 "전 직원이 고객센터를 방문해서 사용자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것이었다. 당시에 우리 서비스의 CS는 아웃소싱 업체에서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쪽과의 협의도 완료되었으니 실행만 하면 된다고 했다. (몇 년 지난 일이라 조금 가물가물하지만) 날짜와 순번을 정해서 전 직원이 외근의 형태로 업체를 방문해서 2-3시간 정도 고객 응대 과정을 지켜보고, 후기까지 제출하면 완료되는 프로세스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엔 일도 바쁜데 귀찮다는 마음 반 + 2-3시간 외근에 괜히 설레는 곁다리 마음 반으로 참여했었다. 그런데 역시 백문이불여일견. 이 한자성어가 딱 들어맞았다. 자리에서 고객의 니즈를 이해하는 것과는 천차만별의 경험이었다.
아 이게 진짜 눈 앞에 놓인 사용자구나.
항상 서비스를 분석/개선할 때 리서치(검색)하거나 VOC를 보거나.. 하는 행위가 대부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저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런게 불편하구나, 이런 건 빨리 해줘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전화 너머의 진짜 보이스를 들으니 '이게 사용자구나, 우리 고객이구나'라는 체감이 확 들었다. 눈 앞에 놓인 것과, 저 멀리 떨어진 것과의 차이랄까. 진짜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을 위해 열심히 개선하고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백만 번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고객센터분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방법도 이해했다.
요 경험이 좋았던 건, 고객센터에서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이 말인 즉슨, 조근조근 말하시는 고객들도 있지만 화나서 언성이 높아지거나 제대로 요구사항을 말하지 않거나, 끝도 없이 독촉하는 모습도 겪어야 한다는 말- 담당자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 고객센터에서 긴급으로 전달되는 이슈라든지, 개선 요청 사항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기꺼이'라는 마음이 생겼다. 더불어 내 마음속에서는 고객센터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기능이 오픈되거나 변경된 내용이 있을 경우에 고객 대응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겠구나 싶어 바로 전달하고 공유하게 됐다.
새로 나온 앱을 찾거나, 업데이트된 앱을 종종 보기 위해서 앱스토어를 둘러볼 때가 있다. 이 때 꼭 빼놓지 않고 보는 부분이 '앱 리뷰'부분. 어떤 리뷰가 달렸나를 보려는 게 아니라, 사용자 리뷰에 답변이 달렸나 안 달렸나를 보고 싶어서다. 왜냐하면 나도 그랬던 적이 있어서...
이전에 담당했던 서비스에서 다이나믹한(?)경험을 많이 했었다. 그 중 하나가 앱스토어 리뷰에 응대한 것이다. 당시 서비스의 대대적인 개편+업데이트가 있었고 이전과 확 달라진 사용성때문에 불편함을 느낀 유저들이 고객센터로, 앱스토어(+플레이스토어)로 엄청난 양의 VOC를 쏟아냈었다. 급격히 하락하는 별점과 부정적인 내용의 의견이 너무 많이 쌓여서 내부적으로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심각히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안이 '기획자도 앱스토어 리뷰를 꼼꼼히 보고 + 답변을 달자'라는 것.
당시에는 앱스토어 리뷰는 별도 대응하지 않는 것이 정책이었다. 고객센터로 인입되는 VOC는 일차적으로 고객센터에서 담당하고, 그 중 기획 관점의 확인이 필요한 부분은 기획자가 확인한 후에 답변을 진행하는 방식만으로 진행해왔다. (사실 이것도 충분히 많았음..)
그런데
1. 고객센터로 들어오는 VOC는 어찌됐건 어느식으로든 답변이 나가는데 앱스토어 리뷰는 평소 대비 몇배나 많은 양이 들어옴에도 아무런 피드백이 없다면 → 사용자들이 계속 답답함을 느낄 것이 우려된다.
2. 앱스토어는 걸러지지 않은 날것의 의견들이라 우리가 다이렉트로 볼 수 있는 가장 빠른 창구일 수 있기에 → 유저들이 직접 문제제기하는 이슈와 의견을 적극적으로 보고 수정/개선 시에 반영해야 한다.
등등 여러 관점의 논의 끝에 답변을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그렇게 팀에 있는 많은 기획자분들이 '매일' 자기가 담당하는 영역의 답변을 검토하고, 달기를 거의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반복했던 것 같다. 리소스는 많이 들고, 그만큼 챙겨야 할 것이 많아 힘들긴 했지만... 지나고 나니 배운 것이 참 많았다.
고객센터를 거쳐 오기 전에 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용하는 고객층이 너무 넓어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슈나 버그가 생길지 모르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로 크래시가 나거나, 특정 환경에서 발생하는 버그들이 있었다. 유저들은 기능이 안 되면 앱스토어로 바로 와서 리뷰를 통해 제보할 때가 있다. 다음날 아침 리뷰를 보다가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확인해서 핫픽스를 낼 수 있었다. 고객센터를 거쳐 오면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을 것을 (혹은 고객센터쪽으로 제보가 많이 들어오지 않는 이슈도 있다) 바로바로 대응할 수 있었다.
꾸준히 고객 목소리를 들으니 서비스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매일 매일'의 힘이 참 중요하다. 일년 동안 거의 매일매일 유저 목소리를 보고 답변을 달았는데 진짜로 유저들이 필요로 하는 기능을 출시하면 그 이후에는 해당 VOC가 뚝 끊긴다. (편해져서 좋다는 답변도 간혹 있긴 하지만) 이 말은 만족하며 잘 쓰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즉각적으로 받는 피드백이 또다른 희열이 되었다.
기능의 우선순위를 판단할 때도 정말 좋은 근거자료가 되었다. 유저의 보이스가 많다고 꼭 필요한 기능은 아닐 수 있지만, 사용자들의 니즈를 수치로 파악하고 분석하다 보면 이건 꼭 우선적으로 해 줄 필요가 있다는 확신이 들 때가 있다. 그게 내부적인 서비스 방향과도 맞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말이다.
큰 회사에 근무하면서 좋았던 하나는 실력 좋은, 다양한 베이스의 능력을 가진 동료들 옆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와는 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고 너무 뛰어난 사람들도 많아서 어깨너머로 기웃거리며 이것저것 많이 봐왔는데 그 중 하나가 사용자 리서치였다. UX에 관한 전문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이 분야에 강점을 가진 동료들이 사용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어떻게 하는지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이게 정말 다이렉트로 유저 목소리를 마주할 수 있는 경험이라 너무너무 좋았다.
유저 리서치 참관하기
전문 리서치 업체를 통해 유저 리서치를 진행했었다. (내가 한 것은 아니고 다른 동료분들께서 담당) 각 기능을 담당하는 기획자들은 반대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투명 유리문 너머로 앉아서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사용자들이 서비스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리고 어떤 불편사항이 있는지.. 가설로만 접근했던 문제 해결 방식이 맞는지 아닌지... 어떤 건 정말 의외의 답변이 나오기도 하고 어떤 건 빨리 해결해줘야겠다 생각하게 하기도 했던 값진 시간이었다.
유저 리서치 직접 실행하기
UX리서치 방법론도 굉장히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중에서 운이 좋게 몇 가지를 해보게 되었다. 이것도 동료분들의 도움을 받아 함께 준비하고 실행해볼 수 있었다.
1. 필드 리서치
현재 제공 중인 서비스를 대상으로 실제로 필드에 나가 사용자가 사용자가 기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관찰하고 기록하는 형태의 필드리서치를 진행했었다. 관찰노트를 통해 사용자의 행동을 기록하고 어떤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등을 꼼꼼하고 세밀하게 보았고, 이후 인사이트를 발견하고 확인하고자 했다.
2. 큐비클 테스트
내부에서 하나의 기능을 두고 A/B중 어떤 것으로 진행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던 적이 있다. 서비스로 출시되기 전 단계였기 때문에 A안과 B안을 각각 스케치 형태로 만들어서 보여주고 사내 구성원(타 조직) 중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묻는 형식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사용자들이 해당 기능을 평소에 어떻게 쓰는지, 왜 쓰는지 바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리서치 이후 정리 단계에서 얻는 인사이트가 값지고 의미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 단계가 가장 고통스럽긴 하지만 ㅠㅠ)
사실 거창한 것 같지만, 당장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내 옆의 가족이나 친구에게만 물어봐도 그게 유저 목소리를 듣는 게 된다. 조금 더 깊이있게 사용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수많은 방법론은 이미 많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받아들여 서비스의 개선 포인트로 삼느냐가 핵심이 되는 일인 것 같고. 굳이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딱 알고 유저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 그게 어려운 나는 오늘도 유저의 목소리를 열심히 듣기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