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닌, 단단한 생각의 뿌리를 세우는 것
요즈음 회사에서 기획 리뷰를 하다 보니 몇몇 분들에게 자주 듣는 문장이 있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몇 번 듣다보니 이 문장이 왜이리도 이질적으로 들리는 건지. 이렇게 말을 내뱉은 사람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이 문장 자체가 나에게는 이상하게 들렸다.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내가 왜 이걸 이상하게 느꼈는지에 대한 윤곽이 나왔다. 기획자로서 내가 맡은 범위에 대해 주도성을 갖기보다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의도에 맞는 답을 찾아 나서기 위한 물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랬던 적이 없던가..
나도 분명히 많이 그랬었다. 근데 언젠가부터 저 말을 잘 안 하게 됐다.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거지?
이 문장 하나에서 촉발하여 '주도적으로 기획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자세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지극히 나의 경험과 나의 생각이지만 앞으로의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 본다.
기획자로서 첫 발을 디뎠던 나의 두 번째 직장은 직급이 있는 곳이었다. 사원/대리/과장/팀장.. 이렇게 전형적인 회사가 가진 직급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직급이 있다는 말은 곧 위계가 존재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당시에는 주니어였기 때문에 무언가를 나 혼자 결정하고 판단하기 어려운 시기였고, 당연히 정리하고 기획한 내용에 대해 방향과 디테일을 모두 아우른 피드백을 받아 마땅했다. 그래야 나의 구멍들이 메워졌으니 이를 바탕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고. 그래서 당시 직급 체계가 내겐 그리 불만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돌아보면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데에는 나의 마음가짐이 가장 큰 몫을 했다. 윗사람들이 주는 피드백을 수용하고 바로 고치고 반영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 '나보다 윗사람이니까' 에 대한 인정의 마음이었다. 당연히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은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그 방향을 전달받으면 나는 발빠르게 반영해야 했다. 잘못 캐치한 게 있다면 쓴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설사 내가 의심가는 게 있더라도 쉽게 의심하긴 어려웠다. 위의 의견에 반하는 것이라면..
이상한 게 있으면 - 'A랑 B중 이건 어떻게 할까요?' 되묻곤 했다.
주니어 시기 그것이야말로 답을 얻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물으면 항상 답은 왔다.
- A가 좀 더 나은 것 같아요. A로 가시죠.
그러다 성장의 갈증을 이유로 이직을 했다. 세 번째 회사는 수평 조직이었다. 팀장과 같은 리더만 있을 뿐, 나머지는 'OO님'으로 호칭하는 조직이었다. 그 안에서도 주니어-시니어로 얼추 나눠지긴 했지만 실질적 사수의 개념도, 지시자의 개념도 전혀 없었다.
처음에 적응이 힘들었던 건 이 지점이었다.
OO님들은 나의 기획에 대해 의견을 제시해주긴 했어도 정답을 내려주지 않았다. 처음엔 그것도 모르고 가까이 일하는 시니어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대답을 기다렸다. 내가 놓친 부분에 대한 조언은 들을 수 있었지만, 답을 구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명쾌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당연했다. 내 일이었으니까.
그 때 알았다. 나는 그동안 주체적으로 사고하며 기획해본 경험이 전무했던 거다. 윗사람의 의견을 듣고 결정을 기다리고 그걸 반영하는 데엔 누구보다 빨랐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변해야 하는 지점에 왔다. 모든 것이 스스로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단순 직관이 아니라 판단과 근거가 필요했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결국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이건 어떻게 할까요?'가 아니라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서비스와 유저를 분석하고 논리를 촘촘하게 세워가는 일이라는 것을. 내가 이렇게 하고 싶어서, 해야 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해야만 하는 명확한 이유와 사고의 흐름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였지만 알아가고 있었다.
세 번째 회사는 조직 변경이 잦고 인사이동도 많은 곳이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조직 변경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의 변경이라기 보다는 정확히는 최상위 리더의 변경. 회사 내부의 정치적 이유로 이사급의 리더가 바뀌고 그에 따라 아래 리더들도 바뀌고... 등등 폭풍같은 시기였다. 상위 리더가 바뀌었다는 말은 곧 서비스의 방향도 바뀐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전 리더와 다르게 서비스를 바꿔갈 것이었다. 자신의 성과를 더 드러낼 수 있는 방향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게.
당연히 직장인은 윗사람의 사업과 서비스를 바라보는 방향과 의중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직장인이니까! 그 방향에 얼라인을 맞춰 나의 기획의 안테나를 세우는 것도 무척 중요하고. 기획의 본질은 잃지 말아야 한다. 왜에 대한 고민과 명쾌한 대답을 찾아가는 일.
그런데 문제는 리더는 하고 싶은 게 명확했다는 점이다. (그게 나와는 달랐다는 점) 몇 번 안을 가져간다, 빠꾸당한다. 또 안을 가져간다, 빠꾸당한다. 과제 단위로 대여섯 번 반복되고, 프로젝트 단위로 대여섯 번 반복되면 어느 새 '이건 어떻게 할까요?'를 내뱉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마치 스무고개 같다. 이런 상황에서 주체적 사고가 의미있는 걸까? 내가 설득을 못한 걸까?
돌이켜 생각해보는 지금, 이게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국 기획자로서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기획할 수 있는 조직과 리더를 만나는 것도 정말정말 중요한 일이다.
위의 조직에서 결국 스무고개에 지쳐버린 나는 이직이라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 회사에 있다.
여기에서 다시 잠시 끊겼던 기획자로서의 사고를 되찾는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여전히 참 많이 배우고 있다.
기획을 하면서 기획/디자인/개발 등 동료들의 의견을 묻고, 리뷰를 통해 디테일을 채워가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나와 다른 이의 목소리를 통해 혼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관점에서 서비스의 방향을 바라보게 해주고, 놓쳤던 부분을 채울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하고 고마운 거다.
다만 이렇게 의견을 듣는 것과 주도적으로 기획한다는 것은 다른 결의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주도적이라는 말로 인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라는 잘못된 오해를 야기할 수도 있는데, 이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주도적으로 기획한다는 것은 사고의 중심을 나로 가져오는 일이다.
어떤 기획의 이유와 근거를 대야 할 때, 그리고 누군가를 설득할 때, 내가 왜 이렇게 했는지 생각을 촘촘히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기획의 모든 순간 서비스의 큰 방향과 디테일 모두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한 후 결정하려고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엔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조직의 분위기와 서포트도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덧붙이며..
그래야 "이건 어떻게 할까요?" 라는 질문이 나의 생각을 먼저 드러내는 질문으로, 이걸 기반으로 상대의 의견을 끌어내는 질문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 이유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