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기획자의 운영 업무에 대하여
코로나가 터지고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된 건 올해 2월 말 즈음. 출퇴근이랄 게 없어지면서부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게다가 결혼 직후의 시기와 맞물려 있었기에 처음 접하는 집안일에 적응하느라 더더욱 정신이 없었다. 식사 준비, 설거지, 청소, 빨래.. 등등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그게 아니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안 난다는 데에 있었다. 더 가관인 건 하지 않으면 금방 티가 난다는 것. 한 끼만 먹어도 쌓이는 설거짓거리에, 조금만 깜빡해도 먼지는 수북하고, 씻기만 하는 건데 화장실에 물때는 왜 그리 빨리 끼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늘 우리 집이 깨끗했던 데에는 어머니의 수고가 있었구나를 여실히 깨닫게 됐다.
아, 왜 갑자기 집안일 이야기냐고?
운영이야말로 우리의 집안일과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전의 조직에서 동료 기획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이런 한탄(?)섞인 말을 듣곤 했다.
“아.. 운영 업무만 없어도 좀 살 것 같은데.”
“운영 말고 기획만 하면 안 되나 ㅜㅜ”
기획자에게 ‘운영’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다들 이런 고민과 한탄섞인 목소리를 내었던 걸까?
일반적으로 실무단에서 '서비스 기획자'의 업무 범주는 크게 ‘신규 기획’ 과 ‘운영’으로 나뉜다.
신규 기획은 말 그대로 ‘새로운 기능’을 내놓는 것이다. 서비스에 없던 새로운 기능을 구현하거나, 기존에 있는 기능이지만 개편 수준으로 디벨롭하는 정도의 업무 범주는 모두 신규 기획으로 통용된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획의 프로세스를 떠올리기 쉽다. 피처를 정하고, 일정을 산출하고. 이를 위해 서비스 시장 조사, 기능 벤치마킹부터 와이어프레임, 상세 기획 그리고 출시까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작업들을 주로 우리는 기획이라 통칭한다.
그러면 운영은 무엇일까?
대개 아래 세 가지 정도의 업무를 말한다. 사실 조직과 도메인마다 운영 범위는 제각각이고, 천차만별인지라 상이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조직에서 경험했던 업무는 주로 아래의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덧붙여서, 이 외에 CMS나 admin에서의 주기적인 대응 업무들이 있을 수 있으나.. 너무 도메인 개별적 특성이 담기는 영역인지라 기재는 하지 않았다.)
1. 사용자 VOC 대응
2. 서스테이닝 개선 업무
3. 서비스 지표&경쟁사 동향 조사
1. 사용자 VOC 대응 (0.2-1MD)
일반적인 인하우스(=보통의 서비스)에서는 출시를 한 이후에는 꾸준히 서비스를 운영해나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당연히’ 수많은 이용자의 Voice를 받을 수밖에 없다.
대개의 인입 채널은 사내 고객센터, 마켓/앱스토어 리뷰 정도이나 비공식적으로 사내 임직원을 통하거나 혹은 각종 커뮤니티의 게시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VOC를 접하게 되는 특이한 경우들도 종종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저의 의견이 인입되었을 때에는 아래 두 가지로 대응한다.
하나, 자주 들어오는 질문이어서 자체 매뉴얼에 따라 답변을 낼 수 있는 경우이다. 보통 답변의 포맷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고객센터가 있는 서비스라면 고객센터 측에서 답변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다.
또 하나는 이슈를 확인한 후 답변이 필요한 경우이다. 이 단계는 문제를 확인하고, 원인을 찾고, 유관부서와의 커뮤니케이션까지 수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복잡해지거나 해결하는 데 드는 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운 케이스가 많다. 빠르면 1-2시간부터 어느 날은 하루 종일 확인만 하다 끝나는 날도 생긴다.
크리티컬한 버그성 이슈나 혹은 매출이 걸린 이슈라면 서비스에서는 발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당일 혹은 1주 내로 핫픽스로 급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빠른 대응을 진행하기도 한다. 혹은 급하지는 않더라도 반드시 서비스 수정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이는 ‘2. 서스테이닝 개선 업무’에 포함하여 함께 처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어쨌거나 이 모든 과정이 확인이 되면, 진행 상황에 대해 사용자에게 답변을 꼭 전달해야 한다. 급한 이슈라면 'N일 내에 처리하겠습니다.' 혹은 '금일 수정되었습니다.' 라고 특정 시점을 명시한다든지, 해당 이슈가 발생된 원인을 안내하고 빠른 시일 내로 대응하겠다든지, 등과 같은 답변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정말 바쁘고 정신없는 날은 인간적인 마음에 VOC 대응이 귀찮고 짜증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으로 드는 마음은 '이렇게 적극적으로 제보해주고, 리포팅해주는 유저들에게 감사하다'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모든 단말기의 모든 케이스를 확인하기 어렵기에 출시된 서비스에는 버그나 오류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인데,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오류들은 고객들의 제보로 해결이 될 때가 있다. 혹은 유저 입장에서 더 편리한 ux나, 포함되었으면 좋을 것 같은 기능들도 적극적으로 제보해주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 여러 가지 기능들을 두고 우선순위를 고민할 때, 유저의 목소리 하나가 큰 힘이 되어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평점 1점대부터 4점대까지.. 수많은 마켓리뷰와 고객 VOC를 들어본 입장으로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모든 기획은 사용자의 목소리를 듣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2. 서스테이닝 개선 업무 (그때그때 다른 MD)
이 업무에 해당하는 범주는 대개 다음과 같은 케이스로 구분한다. 신규 피처는 아니기에 대량의 작업 공수가 들어가지는 않지만, 간단한 수정을 요하는 작업들 (단순 디자인 혹은 url교체와 같은)이거나, 버그라 빠르게 수정이 되어야 한다거나 하는 업무들을 대개 통틀어 서스테이닝 업무로 칭할 수 있다.
단순 버그인 경우엔 크게 문제가 안 되지만, 작은 수정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화면을 몇 장 그려야 하거나 기획 스펙을 재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경우에는 수정 범위와 반비례하여 예상치 못한 공수가 들어가기도 한다. 늘 기획은 예상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어쨌든 이것도 기획의 일부인지라 하나 하나 모이면 적지 않은 범위가 되고, 이것들 역시 일정을 잡아 배포일의 조율이나 전체 스케줄링을 함께 검토해야 하는 일들이 수반된다. 어쨌거나 기획이다. 범위만 적을 뿐.
서스테이닝 업무의 경우, 외부에서는 변경 범위가 사소하게 보여 다소 초라해보일 수도 있다. 진행한 업무를 기재할 때 당당하게(?) 적기에도 애매하고, 때로는 메인 개선 업무에 밀려 외면당할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선순위가 밀리게 되는 것도 다반사이고, 실제로 회사 분위기에 따라 서스테이닝 업무를 하면 인정을 못 받는다 등의 말들로 더더욱 무시당하는 일도 생긴다. 소위 '짜치는 업무' 라고 칭해지기도 하는 데다 리소스가 없으면 이러한 기조는 더더욱 극심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업무를 '서비스의 틈새을 메우는 일' 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대개 보통 입사를 하게 되면, 신입이든 경력이든 큰 개편 업무나 넓은 범위의 기획을 처음부터 맡게 되지는 않는다. 작은 서스테이닝 개선 업무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통해 서비스의 구조, 관계자들과의 협업 방법 등을 차근차근 익혀가고 회사와 도메인에 적응하게 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참 고마운 업무들인 것 같다.
어떤 서비스든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면 아무리 엄청난 개편이나 기획이 반영되더라도, 금세 불편한 사용자 경험을 안겨줄 수 있다. 서스테이닝이야말로 서비스의 반석이 되어 성장을 탄탄하게 지지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3. 서비스 지표&경쟁사 동향 조사 (1-2MD)
#서비스 지표 보기
웹이든 앱이든 일반적으로 서비스는 사용자의 로그 데이터를 저장하고, 이를 활용한다. 서비스의 성장을 알아보기 위한 지표를 정하고 이 흐름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데이터와 지표는 다양하다. 유저의 방문 데이터, 클릭 로그, 이탈, 체류시간, ctr 등등. 매출이 중심이 되는 기업일 경우에는 매출도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겠다 (조금 결은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기획자의 운영 업무 중 한 꼭지는 바로 이 '지표'를 보는 것이다. 어떻게? 매일매일, 꾸준히.
담당자가 매일매일 서비스를 본다는 것은 이 서비스가 잘 굴러가는지 계속 챙기고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지표 확인이야말로 바로 서비스가 잘 굴러가는지 계속 들여다보는 일이다. 매일 100 언저리를 찍던 데이터가 50으로 떨어졌다거나, 300으로 올랐다거나 하는 일들. 보고를 위한 지표 분석이 아니라 정말 습관처럼, 출근하자마자 바로 지표부터 확인하고 동향을 살피는 일. 운영 업무의 한 꼭지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경쟁사 동향 조사
이전 조직에서는 월 1회 관련 업계의 서비스 지표를 분석해서 보고하는 담당자가 있었다. 관련 업계들의 지표와 뉴스를 확인해서 분석하고, 특이한 동향이나 변화가 있으면 확인해서 공유하는 것이 업무의 일부였다.
또 전 회사에서는 팀의 막내, 곧 신입에게 주1회 경쟁사들의 뉴스를 스크랩해서 공유하는 일이 주어졌다. 경쟁사가 새로운 기능을 출시했거나 한 경우에는 직접 사용기를 전달하기도 했다.
서비스의 위치는 경쟁사가 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업계 1위더라도 경쟁사 2-3위와 함께 비교하며 성장해갈 수 있다. 우리 서비스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림에서 업계 전체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 흐름을 분석해내는 데에는 동향 조사만큼이나 좋은 업무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 주기적으로(주 혹은 월 단위)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이는 것이 필요하므로 운영적인 성격이 강해 운영 업무에 포함시켜 이야기해보았다.
하나의 서비스의 기획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서비스의 기능과 화면 등을 변경하는 차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서비스가 제공하는 사용자 가치, 매출, 방향 이 모든 것을 아울러 크게 다루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측면에서 '서비스 지표& 경쟁사 동향 조사' 업무는 서비스를 조감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운영 말고 기획만 하면 안 되나."
실은, 글의 초반에 적은 '동료 기획자들의 한탄'은 나의 이야기였다.
다소 극단적인 말일 수 있지만 회사는 성과를 논하는 곳이고, 철저하게 자본주의에 종속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큰 성과, 더 많은 매출을 가져오는 조직과 그럴 수 있는 곳에 힘이 더 들어가기 마련이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변화를 꾀하고, 저 멀리 경쟁하는 이들보다 앞서 나가야 하고.. 이를 대응하는 시간만 해도 벅찬 일인데 운영 업무까지 챙기기엔 정해진 리소스 하에서 버겁기까지 했다.
이런 모든 시간을 거치고 나니 드는 생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운영 업무는 중요하다라는 마음이다. 티를 내고, 나를 어필하고.. 이런 매력은 분명 없을 수 있다. (혹자는 바보라고도 할 것이다)
그럴지라도 서비스를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한 마음으로 기름칠하고 닦고 쓸고 하다보면, 결국엔 그 마음들을 사용자는 알아주더라.
마치 독립하고 나니 모든 집안일에는 어머니의 노력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