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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닝 Oct 27. 2020

기획자로서 나만의 색을 잃지 않으려면

세상에 단 하나인 내가, 어느 부분에서 강한지 스스로를 격려하는 일

진짜 실력이란 뭘까


며칠 전 우연히 장범준의 히든싱어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게 됐다. 개인적으로 장범준이라는 가수를 좋아해서 본 거였는데, 2라운드만에 탈락해서 충격에 휩싸였다는 뉴스 기사들이 같이 딸려나온 것을 보고 쉽지 않았나보구나 싶었다. 가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허탈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나 하나고, 독특한 음색과 창법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을 터인데.. 얼굴을 가리고 보니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보다 더 가짜같다는 걸 증명해 보인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곡 하나. 히든싱어 탈락 기념으로 ‘단 이틀만에’ 만들었다는 신곡이었다. 듣는 순간 ‘역시 이게 장범준 감성이지’ 하며 감탄을 자아내는 곡이었다. 장범준은 장범준이었다. 아무리 그와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있더라도, 창법도 떨림도 세밀한 것까지 ‘본인보다 더 본인같은’ 목소리일지라도 그가 가수로서 사랑받는 데에는 목소리가 다가 아니었다는 걸 여실히 드러낸 셈이었다. 단순한 작곡 능력이라든지, 창법 이런 수준을 넘어선 그만의 감성. 그것이 곧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이유라는 걸 그는 다시금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나다운 기획자인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의 본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나다운’ 기획자인가.

기획자로서 나만의 색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남들보다 더 잘 하는 것, 남들이 나를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것 같은 비교의 차원이 아니라, 나는 나 자체로 어떤 것에 강점이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브런치를 시작하고서 수많은 기획자분들의 글을 접했다. 같은 팀 동료로서, 협업 팀의 동료로서 눈 앞에 있는 분들이 아닌 이 통신 너머 그 어딘가에서 각자의 자리를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재능을 맘껏 뽐내고 있었다. 어떤 이는 서비스를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어떤 이는 자료 조사를 참 잘한다. 또 누구는 기획자로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태도를 읊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기획의 업을 하면서 나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해 찬찬히 나를 되짚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나는, 창의적이지는 않다. 대신 남들의 창의성을 배워 나만의 것으로 변형하는 일은 자신있는 사람이다.(표절과, 변형은 다른 것이므로-) 처음엔 창의적이지 않다는 것에 좌절감이 컸다. 대학교 동기인 내 친구 A의 재능을 부러워하면서, 잠시 함께 일했던 기획자 B의 실력을 존경하면서. 하지만 늘 크리에이티브한 것이 기획의 본질은 아니라는 생각이 이내 자리잡으면서 창의력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었다. 누군가가 만들었던 창의적인 분석 기법, 그걸 가져와 나만의 방식으로 디벨롭해 나간다든지 혹은 누가 정리한 독특한 서비스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나도 그 방향으로 함께 고민해보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방식을 하나 둘 씩 배워가다보면, 나만의 또다른 시각이 생기고 성장하는 걸 느낄 수 있다는 데에 만족감을 느꼈다.


나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엔 조금 더딘 사람이다. 대신 정보 정리와 아카이빙을 잘 한다. +공유도 실력의 좋다는 의미의 잘한다가 아니다. 잘 한다.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던 다양한 자료들을 한데 모아 기록해두는 것과, 회의 이후 논의한 내용을 정리하는 일에 특히 자신이 있다. 내가 진행한 일과 논의한 내용을 모두에게 공유하는 일도 좋아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다년간의 회사 생활을 통한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한 4년쯤 되니, 나는 회의 시간에 모든 정보를 즉각적으로 다 머릿속에 담는 것이 어려운 사람임을 알았다. (엄마에게 슬쩍 털어놓으니.. 아빠도 그런 말을 종종 하셨단다. 놀라운 유전자의 힘) 그래서 내가 리딩해야 하는 회의라면 꼭 아젠다를 정리해서 갔고, 회의 시간에 모든 이들이 있는 곳에서 내용을 함께 기입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하니 어려움이 줄어들었다. 내가 리딩은 하지 않지만 참여해야 하는 회의나 옵저버로 참석하는 경우에는 회의 내용을 모두 받아적는다. 그 이후에 시간을 내어 (30분~1시간) 회의록을 정리한다. 누군가 공유하지 않는다면 내가 공유하기도 하는데, 우선순위에 따라 중요한 회의인 경우에 한정한다. 이렇게 쭉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정리해서 공유하는 습관이 생겼다. 당장에 내용을 바로 습득하지 못해도, 정리하면서 스스로 이해를 하는 시간을 나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또 분산되어 있는 내용이나 히스토리 파악에 시간이 드는 일들을 보기 쉽게 정리하고 아카이빙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짜증나고 지겨운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덩어리째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레고 쌓듯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 들어 성취감을 많이 느낀다.


새로운 환경 앞에 서니 더 나를 성찰해보게 되는 밤이다.

지금 당장에 생각나는 건 이 정도이지만, 앞으로 나를 더 알아가다 보면 내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들이 많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간과 습관이 켜켜이 쌓여 앞으로의 나를 어떻게 만들어줄지 기대도 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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