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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닝 Sep 24. 2020

ISFJ가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는 법

MBTI에 빗대어 나를 분석해보았다

"MBTI 유형별 추석 잔소리 대처법"


갑자기 뉴스 페이지를 훑어 보다 눈에 띈 제목이다. 아니, MBTI를 이런 데까지 쓴다고? 혼자 코웃음을 쳤다. MBTI는 내게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관련 자격증 (이 맞나? 교육 수강인가? 아무튼 공식 기관에서 받으신 어떤 것)이 있으신 영향도 있었고,  스무살 때부터 교회에서 단체 활동의 일환으로 몇번 테스트를 접해보기도 했던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기사를 읽다 친 코웃음은 금세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코로나 19의 영향일까. 이런 기사가 나온 건 MBTI에 대한 사람들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주위에서만 해도 감지할 수 있는 정보이긴 했다 . 단체채팅방에서는 MBTI검사 링크가 여러 군데서 공유됐었고, 각종 커뮤니티의 글 중 적지 않은 수가 'MBTI별 상황별 반응, ESTJ가 절대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제목이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테스트 자체의 재미는 차치하고서라도- 사람을 성향별로 분류하고 거기에서 공통점을 찾고, 또다른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MBTI열풍의 한 요인이 된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만 해도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을 만나면 괜히 반가우니까.


하다하다 MBTI 셔츠까지 생길 정도. 도대체 이 열풍 정체가 뭐니?


일단 MBTI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 성향부터 밝히자면 나는 ISFJ이다. '임금 뒤편의 권력형'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성향이다. ISFJ는 어떤 성향이고, 어떤 단점이 있고.. 이런 정보는 인터넷에 너무너무 많으니 그건 제외하고 (솔직히 나랑 너무 잘 맞는다), 20살때부터 단 한번도 결과는 변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나는 이 성향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는 그냥 나를 좀 더 알아가기 위한 참고용일 뿐 직업 선택에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나씩 해가다 보니 지금- 서비스 기획자가 되어있을 뿐. 그런데 막상 일을 하고 나니 '아 이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길인가?' 하는 고민들에 부딪히는 순간들이 제법 있더라. 특히 나의 기저에 깔린 이 '성향'을 근거로. 그래서 ISFJ로서 + 나로서.. 서비스 기획자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부분을 고민하고 노력했는지를 좀 정리해보고자 했다.

전적으로 자아 성찰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모든 ISFJ에 해당하는 보편적 내용은 아님을 밝힙니다 :)




정말 나를 적어놓은 것만 같다




ISFJ - 나는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했을까?


내향적인 나

지금의 나를 보면 사람들이 잘 믿지 못하는 나의 과거가 하나 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반장을, 6학년 때에는 전교 회장을, 중학교 때는 방송반을 (+사내 방송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3년 내내 반장을 했던 나의 이력(?)이다. 당시에는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아는 것이 있으면 자신있게 발표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방송반도 하고 싶어 지원했고, 교우 관계도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었기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던 것 같다. 아직 자아 형성 중인 성장 과정을 지나고 있기도 했고. 그러다 내가 처음 내향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교실이라는 틀 안이 아닌 정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회에 내던져지고 나니 나는 혼자 있는 데서 에너지를 얻고, 소수의 그룹과 논의하기를 좋아하고, 조별 과제보다는 개별 과제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주1회 공강을 만들어서 그 시간엔 집에서 쉬거나 나 하고 싶은 일을 한다거나.. MT, 동아리, 학회는 발은 담가봤지만 딥하게 활동하진 못했다. 에너지가 없어서. 그게 나였다.



싫은 소리를 못하는 소심이

하지만 서비스 기획자 or PM 이 되고 나니, 가장 많이 하는 일이 프로젝트 리딩이었다. 이는 곧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기 위한 회사에서의 '조별과제'인 셈. 그리고 나는 조장이다. 왜 그렇게 대학교 과제에 조별로 하는 일들이 많았는지 입사하고 뼈저리게 느꼈다. 대학교에서처럼 극단적인 무임승차자는 없지만, 그래도 각자 다른 색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해야 하는 거니까 정말 '노쉽(=쉽지 않음..)' 이었다. 프로젝트 논의부터, 진행 일정을 확인하고, 진행 중 수없이 변경되는 사항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일.. 그리고 그 모든 커뮤니케이션에는 조직별 이해관계와 누구를 만나느냐에 대한 스트레스는 늘 부차적으로 따라왔다.

상황이 어쨌거나 조직의 일원으로서 일을 하긴 해야 하는데. 나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일단 나는 싫은 소리를 못 했다. 누가 거절하면 아 네.. 하며 내 시간을 다 써서라도 그 사람의 거절을 수용하며 해결하려고 했다. 갈등 상황에 놓이는 자체가 괴로웠다. 그래서 내 의견을 강하게 밀어부쳐야 할 때에도 그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원체 그냥 '둥글게 둥글게' 해결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고, 모든 이들의 기분을 살피고 눈치를 보는 성격이다 보니 내 강한 의견이 또다른 누군가를 만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모든 이들을 다 배려하려 애썼고, 이런 탓에 오히려 내 에너지만 다 쏟아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빨리빨리- 변화가 두렵다

더군다나 나는 극 J!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에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이 말은 조금 다르게 말하면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정해진 틀과 프로세스를 좋아했고,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틀어지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타입이었다. 일을 할 때는 이 부분이 제일 취약했는데, 내가 생각한 일정과 계획 범위가 본의 아니게 바뀌거나 틀어지는 상황이 생기면 거기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은 나의 하루 일과표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워낙 트렌드에 발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IT업종에서는 변화에 바로 대응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정해진 일정이 틀어지는 상황은 다반사였다. ABCDE순으로 하기로 결정했다가도, 갑자기 XYZ가 튀어나와 순서를 흐트러뜨리곤 했다. 100으로 하기로 결정했다가도 금방 50으로 변경해달라는 요구사항도 부지기수였고.. 그럴 때마다 싫은 소리를 못하는 소심한 성격의 나와 시너지를 일으켜, 제대로 말도 못하고 말 한번 하려면 숨 10번 쉬고 전달하고 하는 일들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어찌저찌 하긴 했지만


이 모든 게 다 나의 신입 시절부터 3-4년차까지도 쭉 지속되었던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성향과 상관 없이 이 모든 상황에 느긋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늘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인사이드아웃의 소심이. 꼭 나같다 !





ISFJ인 내가,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는 법


내향적이어도 괜찮아

ISFJ를 일컫는 문장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인싸 중의 아싸, 아싸 중의 인싸. 어디에서는 외향적인 것 같아 보이다가도, 어느 무리에서는 조용히 말없이 있는다. 그게 나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처음에는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입장이니까,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이야기하고, 인맥을 더 넓히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나를 깨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나의 결정은 나를 바꾸기를 포기했다는 거다. 사실 실패했다는 말이 더 맞다. 그냥 내향적인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면대면보다는 메신저 기반의 업무가 더 많아 관계 유지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덜했던 것이 한 몫을 했다. 굳이 함께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맞는 동료들과 친구가 되고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프로젝트라는 공통 목표가 있지만 업무로서 접근하는 부분이기에, 내가 업무 외의 다른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풀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을 수 있었다. 더불어 IT업계의 특성상? 뭔가 조용한 느낌의 공대생이 많은 분위기도 한 몫을 한 것 같고.. ㅎㅎ 물론 가벼운 스몰 톡이나, 친분을 쌓는 것은  +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게 서툴기 때문에 그냥.. 나를 인정하기로 한 거다.




싫은 소리를 못 하는 것과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은 '다르다'

처음엔 싫은 소리를 못하고, 모두의 눈치를 보는 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나를 바꾸고 싶어 끊임없이 노력하기도 했고. 그걸 바꾸게 된 계기는 세 번째 회사에서의 첫 평가였다. 평가는 동료 평가를 1단계로, 리더 평가를 2단계로 진행했고 동료가 평가해주면서 했던 코멘트는 나에게 공개되어 보여졌다.


"커뮤니케이션 할 때 배려하면서 차분히 정리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이끌기 위해 노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꼼꼼하게 정리하고 빠르게 피드백해주셔서 좋았습니다."


물론! 좋은 이야기만 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몇몇의 평가 문구를 보고 나니 내 강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여러 사람의 기분을 살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 빠르게 확인해서 조율할 수 있는 것. 그게 내 강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싫은 소리를 못 하는 것과,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여기에서의 '해야 할 말'은 감정이 섞인 말이 아니다. 일정이나 스펙 조율에 대한 아젠다를 가지고 관련자들 소집하고, 공유하고, 논의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기획자로서 정리하는 동안에 필요한 '말'이다. 나는 이런 말들도 상대에게 요청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싫은 소리의 범주로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오히려 리딩하는 사람이 우물쭈물해하면서 우유부단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제대로 어나운스해주지 못하는 것이 상대방을 더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때로는 의사결정의 순간에 결정을 고민하고 내리는 것 또한 기획자 및 pm으로서의 역량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부분은 수없이 개선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 가운데 세운 나의 원칙 두 가지.

1. 여러 명에게 빨리 공유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바로 실행하기.

- 메신저 단체방이든 메일이든 빠르고 편한 방법으로 일단 전달하자.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늦어지는 것보다 상황을 먼저 공유하고,(그러면 상대방도 문제에 대해 함께 인지하는 상황이 된다) 그 후에 대안책을 모색해서 ㄷ다시 공유하거나, 논의 자리를 가지는 것이 나을 때가 많다.


2. 회의 전 아젠다 정리를 꼭 하자. 그 문서를 들고 회의에 들어가자.

- 나만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던 이야기들이 '우리 프로젝트'의 문제가 되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의사결정은 어려워, 그래서 훈련이 필요해

의사결정 자체는 어렵다. 결정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팀장이 있고 리더가 있는 게 아닐까. 이들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그런데 늘 프로젝트는, 기획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큼지막한 것만이 의사결정은 아니니까. '버튼을 여기에 달까? 화면의 요소는 5개로 한정하자. 노출되는 게시글 수는 10개가 좋겠어' 이 모든 게 의사결정의 과정들이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나 혼자 하는 일이라면 '아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요' 라고 말하면 되겠지만,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협업하는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소위 말빨과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처음에 이게 너무너무 어려웠다. 일단 내가 무언가 결정을 내리고, 확신을 가지면서 진행했다가도 누군가 '왜 이렇게 했어요?' 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머리가 하얘졌다. 내가 잘못 대답하면 어떡하지 하는 소심이의 마음이 스물스물 기어나왔기 때문이다. 내 의견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다. 정말 취향이나 감에 의존한 기획들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그런 걸 몇번(아니 아주 많이) 겪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대안책이 생겼다.

나는 언변이 좋거나, 논리로 점철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말로 승부하기 어려우니 애초에 '근거 자료를 더 꼼꼼하게' 만들었다. 질문이 들어올만한 예상 범위를 정하고, 초기에 기획할 때에도 내가 왜 이렇게 결정했는지를 계속 생각하면서 기획을 했다. 버튼은 왜 이 모양이어야 하는지, 레퍼런스는 있는지, 기존 사용자 지표는 어떠한지. 근거 자료로 내세울 수 있는 애들은 몽땅 찾아서 정리하려는 노력이 생겼다. 그 과정에서 내 머릿속에서도 정리가 되니 말하는 데에도 어렵지 않았고, 자료를 보여주면 상대방도 납득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렇게 통과할 수 있었다.

또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데 당당해지기로 했다. 단, 모르지만 "확인해서 꼭 알려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회의를 마치고 나서 자리에 와서 바로 찾아서 공유하기도 했다. 나도 사람인데, 모든 스펙을 다 머리에 담고 살 수는 없으니 다소(?) 뻔뻔해지기로 노력한 거다. 그리고 자리에 와서 확인 후에 공유하면, 말보다는 글로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정리된 내용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럴 수도 있어' 라는 생각 + 일단 정리하고 공유하기

일단 IT 서비스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너무 많다. 일례로 사람들이 정말 많이 사용하는 한 플랫폼 서비스를 맡았던 적이 있다. 수도 없이 VOC가 들어오고, 수정 요청이 들어와서 눈코뜰 새 없이 바빴던 서비스였다. 프로젝트별 일정이 정해져 있어도 나의 의사가 아닌 외부 요인으로 일정이 바뀌고 우선순위가 변경되어 과제를 조율하는 데만도 한세월이었다. 우선순위는 보통 내가 아닌 위에서 조율하고, 세부 일정은 실무자들 간 협업 후 리더에게 공유하는 과정을 거쳤으니 작업의 단계도 많았다. 이 단계를 거치고, 정리 할 생각을 하니 너무 스트레스였던 거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한 건 하나- 계획이 변경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일단 정리하고 공유하는 것이었다.

모든 과정과, 일정이 내 손 안에 있어야 하고, 바뀌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을 거라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였기 때문에 애초에 변경이 될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었다. 이렇게 되면 나의 모든 선택지에 '계획이 변경된다'도 있기 때문에, 급한 변경의 상황이 와도 크게 당황하지 않게 된다.  사실 한두번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이것도 또 바뀔 수 있겠지.. ㅎㅎㅎ.... 그리고 일정이나 스펙을 정리하고 공유할 때 같이 노티하는 거였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짐이 '우리의 짐' 이 되는 느낌이랄까. 부담감이 확 줄게 됐다.


그리고 이렇게 7년간 지내다 보니, 좀 더 유연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사실은 예전에는 '꼭 이래야만 해' 라며 나를 틀에 가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지금은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에 바뀌는 상황이 와도 덜 당황하게 됐다. 좀 더 J의 성향이 직업 덕분에 서서히 좋게 계발된 것 같아 뿌듯해진다.


수많은 사람 중의 나. 정답은 없어, 더 성장하고 발전하면 돼.






사실 ISFJ는 남을 도우면서 보람을 찾는 직업, 혹은 정해진 루틴이나 프로세스가 있는 직업을 찾으라고 많이들 추천한다. 간호사, 공무원, 선생님 .. 같은. 그걸 늘 볼때마다 나는 4차 산업 혁명의 최전선에 서있는 IT 서비스 기획자의 자리와는 많이 어긋나는 사람은 아닌가?하는 고민도 참 많았다. 특히나 리더의 자리와는 정말 먼, '서포터'에 가까운 포지션이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리딩한다는 자체가 굉장한 부담이 되기도 했다.

만약 누군가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나와 같은 고민을 그 어딘가에서 하고 있겠지. 그런데 사람이 참 대단한 동물인 것은, 그리고 다행인 동물인 것은 늘 상황에 맞게 적응하려 고민하면서 스스로를 다듬어 나간다는 것- 나만해도 12년간 변하지 않던 ISFJ는 꿋꿋하게 지키면서도, 나만의 강점을 발견하며 프로덕트 매니저의 틈새시장에서 잘 적응하고 있으니 말이다.. :)


얼마 전에도 회사 동료분께 이런 말을 했다.

"체계가 없는 조직도 괜찮아요. 이미 많이 해봤는걸요."


이런 말을 내가 하다니!

기질은 바뀌지 않아도, 그걸 기반으로 충분히 보완되고 다듬어질 미래의 나를 다독다독하며,

ISFJ 자아성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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