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닝 Aug 01. 2020

저는 한 우물은 못 파요.

대신 열 개의 옹달샘을 파는 기획자가 될 거예요.


"띵동~ 4년 전 오늘의 글을 읽어보세요."


정말 오랜만에 페이스북 알림이 울렸다. 과거의 오늘, 나의 글이란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바야흐로 나의 4년차 시절. 나의 페이스북은 늘 업무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사실 당연한 게 아닐까.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가장 많은 고민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은.

대학 진학과 친구관계가 인생의 전부였던 학창시절 일기장엔 친구관계, 학업.. 등등의 내용이 빼곡했고, 대학 입학 후 진로를 설정할 즈음엔 무엇을 해야 할지,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진로를 위한 생각으로 가득했던 기억이 있다. 3년 전 지금도 마찬가지였겠지.  나는 어떤 기획자가 되어야 할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와 같은 이야기들.

그때부터였을까. 업무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여전히 아직도- 한아름 안고 살아가는 지금이다.



그런 나에게 얼마 전 질문이 하나 들어왔다.

"앞으로 어떤 기획자로 살고 싶나요?"

데이터 기획에서 검색, 지도, 프론트 서비스 기획.. 그리고 지금 광고 플랫폼까지. 내가 걸어온 기획의 길을 보면서 그분이 물어보신 말이었다. 그리고 이내 나는 대답했다.


"저는 한 우물은 못 파요.
대신 열 개의 옹달샘을 파서, 필요한 곳에 잘 쓰는 기획자가 되려고요."




우물 대신에 옹달샘을 만들면서


어릴 적부터 늘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떤 커리어패스를 쌓을 것인지 명확하게 정하고, 그에 맞게 실행해야 한다.' 그래서 한 업계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는 전문가가 되라는 말들에 공감하고 끄덕였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만 해도 이게 정답인 줄 알았다. 진득하니 한 우물을 파서 전문가가 되는 길이 최고의 성과라는 것.


하지만 막상 그 문장을 나에게 대입하려 하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커리어패스를 명확하게 집어내는 것부터 문제였다. 그래서 한 우물만 파는 것이 나에게 베스트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우물은 여러 개 있지만 어떤 우물이 나에게 제일 파기 좋은 우물이 될지는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다 해봤다. 처음엔 어디에 우물을 파면 좋을까부터 생각했다. 이 땅도 팠다가, 저 땅도 팠다가...  이곳 저곳을 쑤시다보니 구멍만 많이 생겼다. 그런데 구멍에 물이 고이니 옹달샘이 되는 것을 발견하는 새로움이 있었다. 깊이는 얕지만 여러군데를 파다 보니 잘 파는 노하우도 생겨 연못이 되기도 했다. 그걸 또 필요로 하는 데에 쓰는 법도 배웠다. 우물이 못 될 지언정 아무렴 어때. 물을 고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건 같은데.





제너럴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와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있었다, '제너럴리스트'. 한 분야에 뛰어난 지식은 없더라도 여러 분야에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는 '스페셜리스트'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 가지 분야에 깊이있는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그래서 나는 제너럴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여러가지를 얕게 하겠다는 다짐이 아니었다.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해올 수 있던 만큼, 이를 또다른 기획의 재료로 삼아 나아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유저의 불편함을 개선하고 더 편리하게 바꿔가겠다는 방향만 있을 뿐, 반드시 이 길로 가겠다는 집착은 내려놓기로 했다. 그러니 부담이 적어졌다. 무슨 일을 하든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물이든 옹달샘이든,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든 토끼든, 눈 비비고 일어나 물 마시러 올 수 있는 좋은 경험을 주는 것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 나의 신입시절 3 - 어떤 기획자로 살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