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기획자가 되었나 3탄
<안녕, 나의 신입시절 1-3편>
안녕, 나의 신입시절 1 - 평범한 회사원은 싫어서 https://brunch.co.kr/@sasap12/1
안녕, 나의 신입시절 2 - 선택의 갈림길 속에서 https://brunch.co.kr/@sasap12/2
안녕, 나의 신입시절 3 - 어떤 기획자로 살래? https://brunch.co.kr/@sasap12/3
이직을 결심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이러했다. A라는 기능을 구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각종 VOC를 통해 수없이 요청을 받아온 기능이었기에, 이는 사용자들에겐 편리함을 가져다 줄 수 있음에 분명했다. 신이 나서 기획을 하고 서비스 릴리즈까지 마친 어느 날. 본부장님실에 들어갔다 나오신 팀장님께 호출을 받았다. 해당 기능을 '롤백'하라는 것. 오픈도 했고, 홍보까지 한 기능을 롤백이라니? 당황스럽고 영문을 몰라 어쩔수 없어 하던 차에 대답을 들었다.
당시 내가 맡고 있던 페이지에서는 광고 상품도 같이 엮여 노출되고 있었다. 클라이언트들의 서비스 홍보 수단으로서 제공하는 영역이다. (쉬운 예시로 배달의 민족 서비스 내, 각 메뉴 카테고리 상단에 붙는 광고 형태와 비슷한 구조이다.) 다만 내가 출시한 기능은 사용자에게는 편리함을 줄 수 있지만 클라이언트들에게는 자사 광고가 상대적으로 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항의 등의 위험 부담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허탈하고 실망스러웠다. 극단적으로는 편리함이 돈에 밀린 느낌이었다. 특히나 이건 몇 회의 노출을 보장하는 형태의 광고도 아닌데 이렇게 결정되는 것이 맞나? 머리로는 '회사는 돈을 버는 곳이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자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 우리 서비스의 클라이언트는 일반 고객뿐만 아니라 기업 고객들도 있어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향에서 고민하는 것이 맞긴 하지만, 당시에는 고작 몇 푼과 서비스 가치를 맞바꾼 느낌이어서 허탈함이 더했던 것 같다.) "온전히 서비스만 생각할 수 있는 곳으로 갈 거야." 그렇게 이직을 결심했다.
실행은 어렵다. 이직 결심은 했지만, 그것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직무의 스펙트럼이 좁아 그나마 맞는 몇 개의 회사에 이력서를 냈고 그 중 1/3은 서류를 통과해서 면접을 봤다. 다만 거기서부터 문제의 시작이었다. 이력서 항목에 대한 답변은 어렵지 않게 적어 냈고 업무 연관성이 있어 면접을 보긴 했지만, 내가 해온 일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이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총 경력은 3년이 조금 넘은 데다 온전히 서비스 기획만 한 경험은 채 2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젝트 경험을 설명하는 데에는 어떤 한계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이 과정을 통해 포트폴리오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준비하랴 일하랴 하며 6개월 정도가 지났다. 지칠 법도 하지만 거의 일주일에 두세 번은 가고 싶은 회사'들'의 채용사이트를 돌면서 방문하면서 공고를 확인했고, 괜찮은 직무가 있으면 이력서를 넣었다. 엔씨소프트, 카카오, SK텔레콤, 롯데홈쇼핑, 신세계, 라인플러스, 네이버... 정말 다양한 회사에 지원하며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디벨롭해 나갔다. 그렇게 또 6개월이 지나고, 그토록 가고 싶던 한 회사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벌써 4년이나 지난 지금,
이렇게 난 기획자가 됐다.
이직을 준비하던 어느 날을 기억한다. 백화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어느 한 몸이 불편하신 남자분이 탑승을 하셨다. 눈이 불편하신 분이어서, 버스에 타자마자 맨 앞자리에 바로 앉으신 탓에 나도 모르게 힐끔힐끔 계속 그분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이 갑자기 핸드폰을 들고선 "00한테 전화좀 걸어줘" 라며 말을 하시는 것이다. (기억에 명확하지 않지만 시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러고는 이내 상대방과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서비스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인종/계층/나이/상황과 상관없이 그 누군가에게 편리함을 줄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런 서비스를 만들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7년차의 서비스 기획자로 살아가면서, 내 커리어 중 가장 값진 시간은 이때였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수없이 쓰고 붙고 떨어지고 또 낙담하고를 반복하면서 나의 문제점을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어떤 기획자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수립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직을 하고 나서도 당연히 내가 원하는 이상적이고 엄청난 일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비록 매출을 내는 곳은 아니어도, 서비스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조직으로 옮기기는 했지만) 회사 규모만 커졌을 뿐 하는 일은 비슷했고, 내가 대단한 사람으로 성장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오픈을 앞두고 새벽 4-5시까지 지속된 크런치모드를 겪을 때에도, 번아웃의 시기를 지나는 중에도 여전히 기획자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게 했던 건 편리함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는 어떤 뿌듯함과 성취감 그 사이의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서비스를 만들자."
기획자로서의 내 비전이다. 수없이 짜증내고 불평하는 순간이 와도,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게 될 순간이 와도, 나는 이 비전을 따라서 계속 걸어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