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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닝 Feb 03. 2022

기획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성실함이 주는 힘과 위로



‘꾸준히’라는 말을 좋아한다. 꾸준하다는 것은 성실함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고, ‘성실하다’는 것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은 성실함은 낭비일지도 모른다고. 요즘의 시대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은 명확히 방향을 정하고 거기에 맞춰 빠르게 전진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마냥 들이붓는 성실함은 어쩌면 미련한 것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꾸준히 성실함’의 힘을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설사 방향이 잘못 잡혔더라도 그러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그 성실함으로 다른 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확신한다.


이번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다. 달리기라는 큰 줄기를 가지고 무라카미 하루키 개인의 생각, 소설가로서의 인생, 삶의 중심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어서 흥미롭게 보았다. 무엇보다 하루키 소설은 몇몇 권 제목밖에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만으로 하루키라는 사람을 다 알아버린 것 같은 친근함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굳이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내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에 그도 동일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든든한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소설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그는 세 가지를 답한다고 했다. (p.121-126)

첫 번째는 재능, 두 번째는 집중력, 마지막으로는 지속력.


첫 번째, 재능. 재능은 두말할 나위 없이 소설가로서의 전제 조건에 해당하지만, 소유자가 더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그래서 문제다. (그리고 엄청난 재능을 가진 이는 소수이고)


두 번째, 집중력. 하루키는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 붓는 능력. 그것이 없으면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힘을 유효하게 쓰면 재능의 부족이나 쏠림 현상을 어느정도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 지속력. 집중하는 것이 그저 가만히 깊게 숨을 참는 작업이라면 숨을 지속한다는 것은 호흡의 요령을 터득해가는 작업으로 그는 비유한다. 그리고 집중력과 지속력은 노력에 따라 후천적 획득도, 자질의 향상도 가능하다는 것이 재능과 비교해서 크게 다른 점이다.


재능이 풍부한 작가는 사실 소설을 계속 써내려가는 일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로 인해 여러 난관을 쉽게 극복할 수도 있다. 반면 재능이 풍부하지 않은 작가는 젊을 때부터 어떻게든 근력을 쌓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훈련에 의해서 집중력을 기르면서 어떻게든 '견뎌 나가'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러다 우연히 자신 속에 감춰져 있던 진짜 재능과 만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행운이라고 불릴 만한 정도의 일이다. 스스로 근력을 쌓아가는 과정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결과인 셈이다. 어찌 됐든 그 절대량의 부족분을 어떤 방법으로, 어떤 방향에서 자신을 보강해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것이 결국 작가의 개성이 되고 특징이 된다고 하루키는 말한다.





나는 그가 말한 이 세 가지 역량이 비단 소설가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독자로서도 소설가에게만 한정되는 역량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도, 혹은 또 누군가의 일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획의 일도 이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9년째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보면 한두 군데의 엄청난 재능 -통찰력과 분석력, 창의력, 프레젠테이션 능력 등등- 을 가진 동료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들은 태생부터 엄청난 스탯(stat)을 가지고 찐 기획자로 태어난 것 같다. 사고의 방식과 흐름이 정돈됐다거나, 문제의 본질을 찾고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거나, 아니면 정말 앞을 내다보는 능력을 타고 났다거나.


하지만 나처럼 평범 중의 평범한 사람은 끊임없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어처럼) 근력을 쌓아야 한다. 트렌드도 보고, 서비스 공부도 하고, 업무적 역량도 그냥 하면서 기르는 것이다. 그저 도리가 없으니 하나씩 밟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하다 보면 미약하지만 성장에 의한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결과물을 밟아 가다 보면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도 든다. 설사 방향이 틀어진다 해도 점들은 연결되고 또다른 가치와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나마 감사한 건 소설가와는 다르게 이 업계에서는 팀과 동료가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동료를 만나면 그 어깨 위에 앉아서 업과 서비스를 바라보는 눈도 기를 수 있다. 나만의 근력을 기르면 이 것과 다른 역량을 가진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재능이 있진 않더라도 집중력과 지속력으로 메울 수 있는 영역의 일이라니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꾸준히, 성실히 그냥 하려고 한다. 누군가 미련하다고 할지라도 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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