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지 말라'를 읽고
얼마 전 교보문고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읽고 싶은 책을 왕창 주문했다. (언제 읽지?ㅎㅎ) 추천받아 구매한 책들도 있고, 베스트셀러 순위에 있는 것들 중에서 맘에 드는 걸 고르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연말이라 그런지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도 트렌드를 전망하는 책들이 몇 권 집혔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지금 적어 내려갈 송길영의 '그냥 하지 말라'라는 책.
코로나라는 전례없는 현실을 겪으면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변화에 직면했고, 그것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겪어왔다. 체감하는 이들은 사회와 문화가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은 코로나는 '변화의 시기를 앞당기는' 촉매제가 된 것일 뿐 동일한 변화의 흐름 안에서의 움직임이라고도 한다. 일어나야 할 일이 조금 빨리 온 일일 뿐.
세상에는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변화의 방향이 합의되는 매커니즘이 있음을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예전에 우리가 본 그것은 미리 온 미래였던 셈입니다. (p.13)
미래가 삶에 깃드는 시점에도 시차가 있는 듯 합니다. 미래가 우리에게 와 있지만 이미 변화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분도 있고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중략)
아직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다른 이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라면,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나게 돼 있습니다. (p.15)
결국 내게 일어나는 변화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날로그를 떠올린다는 것도 결국엔 현재의 트렌드를 읽고 아날로그라는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책 내용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4장, 성장'에 대한 챕터를 보며 요약한 몇가지를 기록해본다.
1. 직업관의 변화가 구체화되고 있다. 직업/직장/커리어가 다른 형태가 되어가는 흐름이다. 직업은 사회적 역할과 하고 싶은 업을 절충한 것이고, 직장은 인간관계나 근무환경이 중요한 반면, 커리어는 개인적 목표와 훗날 쓸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하는 것으로 나뉘는 것 같다. 과거에는 이 셋이 동일했다면 지금은 분화되는 형태. 여기에 맞물려 개인에게 성장이 점점 중요한 이슈가 되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시장이나 경제성장과 같은 '집단의 성장'의 맥락이었다면 현재는 '개인의 자람'으로 포커스가 바뀌는 것이다.
2. 또 다른 관점에서는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은퇴 시기는 짧아진 시대다. 이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나의 직장에서의 생활이 내 삶을 모두 커버하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렇다면 이후 환경에 맞는 변화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그런데 직장 문제뿐만이 아니다. 기술 발달과 로봇의 등장은 인간이 해온 수많은 일들을 대체해가고 있다. 그러면 결국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기계에 맡기고 우리는 인간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3. ‘파는 것이 인간이다(다니엘 펑크)’
사람이 상품이 되는 시대에 단순 스펙은 경쟁력이 될 수 없다. 수많은 (인간)상품 중에서 남들과 차별화되게 팔 수 있는 나만의 능력을 발굴해야 한다. 내가 선택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의 '내 것'이 필요하다는 말. 이제는 과거 경영학을 기반으로 대기업들이 해온 ‘업무를 표준화하고, 구성원들은 그대로 그 일을 한다’라는 방식은 끝나고 있다. 더 창의적인 일을 하고 각자의 창의성이 시너지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일은 바뀌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4. 방법은 두 가지, 1) 플랫폼을 만들거나 (비즈니스를 만들거나) 2) 장인이 되는 것.
프로바이더가 되거나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이쪽이든 저쪽이든 1등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회사는,
5. 어정쩡한 중간이 기계에 대체되는 세상에서는 조직 또한 완성된 사람들이 모이는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재목을 키우는 게 아니라 이미 검증되고 완성된 사람들, 프로페셔널이 모인 상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여러 회사에서 공채가 아닌 직무로 채용하는 흐름으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
6. 이미 잘하는 사람들을 뽑는다면 매니지먼트도 감시가 아니라 구성원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될 거다. 훌륭한 이들은 스스로 관리하지, 남의 관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지 비전만 있으면 된다. 리더십은 그것을 찾는 작업일 뿐이고. 그러므로 회사는 개인을 설득할 때 연봉이나 단순히 회사의 손익 목표가 아니라 더 큰 의미를 가진, 동료로서 일할 수 있을 만큼의 종합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합의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도,
7. 가능성이 아니라 능력을 팔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증거가 필요하다. 나의 기록물은 곧 내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고,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가 될 것이다. 내가 했던 일들을 모두 기록하는 게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8. 더불어 요구되는 건 생각이 먼저라는 사실. 과거처럼 기술을 먼저 익혀야 하는 시대는 끝났다. 무엇을 할 것이며 누구에게 배울 것인지,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이 책의 메시지 ‘그냥 하지 말라(Don’t just do it)’ 과도 상통하는 말
9. 업의 관점에서는 ‘주체성’과 ‘전문성’이라는 두가지 덕목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느냐. 일의 주체가 곧 내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필수로 수반되는 것은 ‘진정성’에 관한 이야기.
10. 단순히 투명성이 절차적 적합성을 나타내는 말이라면 진정성은 주체가 추구하는 가치가 있는지, 그것을 위해 정해진 의무를 넘어 헌신하는지까지 올라간다. 투명성이 해야 하는 의무라면. 진정성은 그것을 넘어서는 헌신의 문제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일, 진짜로 원해서 헌신할 수 있는 일을 해야 전문성과 주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앞으로의 시대는 생각 없는 근면이 아닌 궁리하는 성실함이 필요합니다.
(중략)
자기 것을 만들고, 현행화를 통해 나의 능력과 사회성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결국 재사회화입니다. 재사회화는 깨어 있으려는 노력입니다. 과거의 기준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변화에 맞춰 혁신을 수용하는 자세가 우리를 과거가 아닌 현재에, 나아가 미래에 있게 할 것입니다. (p.281-2)
그간 데이터를 바라보며 켜켜이 쌓아올린 저자의 사회 현상에 대한 깊이있는 관찰, 그것으로 얻어낸 인사이트가 집약적으로 녹아있던 책
현재의 사회 트렌드와 문화가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짚어낸 것도 흥미롭게 읽었지만, 결국에 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라는 개인이 변화에 적응하고 생존해가기 위함에 달려있음이 인상적이었다
요 근래 커리어에 대한 고민, 앞으로 어떻게 나의 업을 바라봐야 할지 육춘기쯤?의 고민 앞에 서있었는데 조금이나마 바라보는 시각이 트인 것 같다. 능동적으로 변화에 대처하는 열린 자세와 끊임없이 사고하고 생각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어쩌면 뻔한) 결론이지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저자의 논리와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설득당했다고 봐야 할 것 같으니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