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가 지지하는 투명성과 오너십, <규칙 없음>을 읽고
<규칙 없음>이라는 책은 넷플릭스 조직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을 읽는 중이라고 주위에 이야기했을 때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공감하는 반응 반, 아래처럼 부정적인 반응 반.
"좋아 보이죠? 그거 우리나라 현실이랑은 안 맞아요. 말도 안되는 이야기예요."
"거기 그만큼 치열해. 대우해주는 만큼 엄청 잘 자르고요."
나는 극호에 속했는데 그 이유는 책에서 이야기하는 넷플릭스의 인재 밀도, 그에 따른 연봉과 대우, 혹은 자유로움에 대한 동경같은 건 아니었다. 부정적인 반응을 던진 이들의 의견도 물론 공감이 갔고. 다만 스스로 극호라고 말할 수 있던 이유는 넷플릭스의 조직문화의 기저에 깔린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그 사고방식을 '신뢰'라는 키워드로 압축하고 싶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넷플릭스의 '선샤이닝(sunshining)' 으로 보인다. 밝은 햇볕에 온몸을 드러내듯,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공개하려고 하는 넷플릭스만의 문화를 일컫는 단어다. 저자이자 넷플릭스 공동 창업자인 헤이스팅스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공유하게 하여 투명성을 일상화하는 것이 리더의 몫이다. 중요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리더부터 정보를 공개하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그렇게 할 것이다. 넷플릭스에서는 이것을 '선샤이닝(sunshining)' 이라고 부른다. (p.199)
정보를 무조건 다 공개하는 것이 정말 합당한 것인가? 유출됐을 때의 리스크도 있는데 정말 필요한가?라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저자도 '투명성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라는 말로 우려의 목소리에 일부 동의한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이 리스크조차 신뢰라는 키워드로 덮어버린다. 직원들이 스스로 넷플릭스의 '일부'라고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보 공개를 통해 직원이 회사를 신뢰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길 바란다. 그것이 넷플릭스가 투명성을 유지하고 직원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공개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지향하는 투명성의 본질은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준다는 정도의 차원에서 나오는 게 아닌 것 같다. 투명성의 또다른 이점은 직원 개개인에게 오너십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업무의 능률을 높이는 데 있었다.
내 목표는 직원들이 자신을 회사의 주인으로 여김으로써 회사의 성공을 위해 자기가 짊어져야 할 책임의 크기를 늘리는 것이었다. 막상 회사의 기밀을 공개하고 나니, 기대하지도 않았던 성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고위 중역들만 접할 수 있던 정보를 말단 직원에게도 알려주면, 그들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여 일을 더욱 능률적으로 하게 된다.
(중략)
대부분의 회사가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고위 매니저들은 재무 혹은 전략 관련 정보를 숨김으로써 직원들이 능력과 지능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는다. 직원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을 거론하는 기업은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권한을 실제로 증가시킨다는 건 몽상에 불과하다. 실제로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줄 만큼의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p.206)
몇몇 스타트업, PM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이런 말이 자주 나온다. '제품의 비전은 회사의 비전에 align되어야 한다.' 제품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회사의 성장을 서포트하는 쪽으로 발전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품 관리자들은 회사의 비전이 뭔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놓치지 않고 상위 리더십과 싱크를 지속적으로 맞춰 나가야 한다. 권력 혹은 모종의 이유에 의해 정보가 숨겨지는 순간, 구성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게 된다.
일전에 내가 몸담았던 조직에서는 좋은 문화가 하나 있었다. 입사자들을 1주 혹은 2주 단위로 모아서 회사의 비전과 로드맵에 대해서 대표님이 직접 알려주는 세션이었다. 처음에는 으레 하는 과정이겠거니.. 따분하겠다는 편견을 가지고 앉았다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고 나온 경험이 있었다. 해야 할 '아이템'의 나열이 아니었다. 회사가 지금까지 어떻게 성장해 왔으며 비전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갈 것인지를 구성원에게 알려주는 자리였다. 이를 시작으로 이후에 전달되는 정보는 디테일한 수준까지 공개되어 있었고, 구글독스에서 검색만 하면 누구든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대외비였다.) 이렇게 상위 리더들의 생각과 큰 그림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서비스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이 보였다. 큰 그림에 대한 이해가 앞서니 자연스레 오너십도 생겼다. 내가 겪은 긍정적인 경험은 넷플릭스의 리더가 이야기하는 투명성에 더욱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이처럼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리더가 회사의 목표와 전략에 대해 구성원을 붙잡고 하나하나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구성원들은 자연스레 '맥락 하에서' 회사의 방향을 이해하게 되고, 이것은 곧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의견이 잘 일치된다는 것을 반증한다.
결국 이렇게 촘촘히 쌓아올린 문화는 결국 의사결정 구조와 권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넷플릭스에서는 흔히들 우리가 보게 되는 피라미드식 의사결정을 볼 수 없다. 정보에 밝은 이가 의사결정권자가 되는 거다.
인재 밀도가 높고 1차 목표가 혁신인 느슨한 결합 조직이라면, 통제 위주의 전통적 방법은 효과적인 선택이 아니다. 감시나 절차를 통해 오류를 최소화하려고 하기보다, 맥락을 정확히 짚어주고 상사와 팀원이 북극성을 보며 의견을 조율하면서 정보에 밝은 주장에게 결정한 자유를 주도록 힘써야 한다. (p.401)
신뢰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굳게 믿고 의지함'이라는 뜻이란다. 나에게 신뢰란 의심하지 않는 것, 상대에게 맡길 수 있는 것. 그러고 나서 불안해하지 않는 마음가짐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부를 믿고 맡겨도 마음이 편한 상태. 그러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은? 그만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가깝고 믿을 만한 사이, 대신 그 조건은 쌍방이어야만 한다.
넷플릭스는 이렇게 무겁고 고귀한 신뢰라는 단어를 직원들에게 아낌없이 던진다. 그만큼 직원들도 넷플릭스의 신뢰를 잘 받아낼 정도의 최고의 인재들이다. 나의 조직은 내게 아낌없이 신뢰를 보내고 있는가? 그리고 조직에서 나는 그런 인재로 임하고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