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새 12

by 강소하

업힌 윤새의 머리 위로 빗방울이 툭툭 소리를 내며 하나둘씩 떨어졌다.

“비 좀 멈춰…….”

윤새는 낯선 이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예끼, 구해 줬더니 머슴 취급이냐?”

코끝부터 진한 흙냄새가 올라왔다. 윤새는 힘없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비볐다. 그러다 아찔한 기분이 들어 너른 등 위로 다시 풀썩 엎어졌다. 힘이 빠져 주르륵 흘러내리는 작은 몸을 투박하고 큰 손이 받쳐들었다. 지칠 대로 지친 윤새는 어느새 오른쪽 볼이 눌린 채 힘없이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하늘에서 옅은 빗줄기가 계속 쏟아졌지만 무성한 나무들 덕에 둘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은 면하고 있었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윤새가 자꾸만 흘러내리자 단단한 팔이 윤새의 몸을 흔들며 고쳐 업었다. 눈을 하얗게 뒤집은 채로 간만의 잠에 취해 있던 윤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번쩍 눈을 떴다.

“내 등이 축축한 게 비 때문이냐, 침 때문이냐?”

낯선 이의 목소리가 물어왔다. 윤새는 대답 없이 눈을 끔벅거렸다. 시야가 아까보다 훨씬 맑아졌다.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던 피로와 몸을 떨리게 하던 추위가 훨씬 덜했다. 무엇보다 지금 배에 닿는 온기는 윤새가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이게 사람이랑 닿는 기분이구나. 사람의 온기는 이렇게 부드럽구나. 윤새는 잠이 덜 깬 얼굴로 멍하니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너밖에 없는데.”

낮은 목소리가 코앞에 있는 새카만 머리로부터 들려왔다. 윤새는 급히 축축한 입가를 문질러 닦았다.

“비 때문이야.”

“그래? 그런 것치고는 좀 뜨뜻하구나.”

“진짜야…….”

윤새는 지친 척 다시 너른 등 위에 늘어졌다. 믿을 구석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비 오는 산에 홀로 내버려지는 것보다는 가만히 업혀가는 것이 나았다.

“이름은.”

목소리가 다시 물어왔다.

“이, 이름은 왜?”

“이것 보게. 아까부터 귀인한테 자꾸만 불손한 태도를 보인단 말이지. 뭐, 상대의 이름을 물어보기 전에 통성명을 하는 게 예의니 내가 먼저 알려주마.”

새카만 머리통이 윤새 쪽으로 고개를 살짝 틀어 돌아보았다. 윤새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원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만을 보았다.

“나는 성천이다.”

윤새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성천의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겨우 보이는 옆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검고 숱 많은 눈썹, 산처럼 높게 솟아오른 동그란 코, 흐린 날에도 반짝거리는 눈. 장군을 닮았다.

“이제 네 차례다.”

목소리가 낮으니 더욱 장군 같았다.

“윤새.”

“날아가는 새, 아니면 세종대왕님 할 때 세.”

“날아가는 새.”

“성씨는?”

“없어. 아무도 나한테 안 줬어.”

“부모님은 아무도 안 계시고? 그동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지?”

“소름 끼치고, 밥만 축내는 쓸모없는 계집.”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데.”

“엄마랑 아빠에 대한 기억은 그게 다인걸.”

성천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고민하는 신음을 끄응 내더니 윤새를 다시 고쳐 업었다.

“너는 언제부터 여기에서 살아왔지? 이 산에 부모 없는 아이들이 숨어 산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같이 살았나?“

“내가 재미있게 굴 때는 끼워 줬어. 지금은 쫓겨났고.”

윤새의 콧잔등 위로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는 성천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너, 성씨를 가지고 싶어?”

“세상 사람들 다 가지고 사는 거라면 나도 가지고 싶어.”

“그러면 내 성씨를 줄까?”

“안 돼, 그건 가짜야.”

“왜?”

“성씨는 가족이 주는 거니까.”

“그건 누가 정했지?”

“다 그렇게 하는걸.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는 거야. 그렇게 이름이 두 글자나 세 글자가 되는 거야.”

네 글자 이름도 있었던가. 윤새가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글자수를 세어 보는데 성천이 웃음기 묻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네가 이 세상 사람들 다 만나 봤더냐?”

“만나야만 아는 건 아니잖아.”

“바다 너머에도 있고 하늘 건너서도 있는 게 세상이야. 하다못해 그 밖에는 우주가 있는데, 그 우주가 한 개인지는 어떻게 아나.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러고 사는지 윤새 네가 어떻게 알아. 이 산에서만 살았으면서.”

윤새는 말문이 막혔지만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렸다.

“가족이 아닌 사람도 줄 수 있는 거면…… 왜 아무도 나한테 주지 않았어?”

한동안 빗방울이 가지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성천은 열 걸음 더 걷고 나서야 대답했다.

“내가 주려고 그랬나 보지.”

“그건 누가…….”

“예끼, 싫으면 싫다고 말해라. 나도 그냥 무르련다. 세상천지에 나 하나만 가지고 있는 성이지만 그래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서 눈 딱 감고 주려 했건만–”

“바, 받을래.”

“그래?”

성천이 기다렸다는 듯 윤새의 말꼬리를 덥석 물었다.

“그러면 넌 이제부터 성윤새다.”

“정말 세상천지에 하나 맞아? 많이 들어 본 성씨 같은데…….”

“한자가 다르다, 한자가. 우리가 쓸 성은 별 성 자야."

성윤새. 윤새는 입 안에서 그 세 글자를 여러 번 굴려 보았다. 성, 윤새. 성윤새. 부드럽고 동글거리면서도 약하게 들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그럼 당신은 성성천이야?”

“뭐?”

성천이 우뚝 멈춰섰다. 그리고 갑자기 웃음보를 터트렸다. 무시 당하는 기분에 뚱해진 윤새의 입술이 앞으로 불퉁하게 튀어나왔다.

“내 이름은 한 글자야. ‘천’이 내 이름이다. 하늘 천 자를 쓰고 있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한자라고 윤새는 내심 생각했다. 그러나 먹처럼 짙은 눈썹과 반짝거리는 눈빛, 바다 너머 하늘 건너의 세상들에 대해 들려주던 목소리, 그리고 지금 윤새의 몸을 짊어진 너른 등……. 그래, 이런 사람이라면. 윤새는 이번에는 성천이라는 이름을 소리 없이 말해 보았다. 어울린다.

성천의 부스스한 머리칼 위에 빗방울이 맺혔다. 나무에 맺힌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윤새는 손바닥을 최대한 크게 펴서 성천의 머리를 가려 주었었다. 그의 손등 위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졌다. 성천이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눈을 치켜뜨자 보이는 조그마한 두 손에 그가 아까 보여 주었던 시원한 웃음을 지었다.

“고맙다, 성윤새.”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세상천지에 단 하나뿐이었던 星을 당신에게 준 건 누구냐고.

그 사람은 이 세상천지를 떠났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이 궁금하다.

당신에게 물어보지 못한 유일한 질문.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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