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새 13

by 강소하

누군가 달려온다. 윤새는 진열대 밑으로 조용히 손을 넣었다. 손을 더듬자 차가운 권총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권총을 빼내고 장전했다. 안경원의 판매 일을 보는 단원이 비상 상황에 사용할 수 있도록 경식이 진열대를 직접 개조하여 숨겨 둔 권총이었다. 평소에 안경원을 지켜보다 수상하게 여긴 누군가 온 걸까. 안경원에 대해 수상한 냄새를 맡은 일본인이나 친일 조선인은 모두 비명횡사했다고 명원이 일러 주었다. 옆에서 용맹이에게 밥을 주던 우진은 영원의 특기가 그런 자들을 비명횡사시키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우진은 그게 아주 멋있다고 덧붙였지만 명원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어쨌거나 윤새는 영원이 그 사람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황천길 너머로 보냈길 바랐다. 그래야만 7초, 아니 이제 6초 뒤에 문 손잡이에 손을 올릴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될 테니까. 5초, 3초, 1초.

납작한 모자를 눌러쓴 사내가 뛰어들어왔다. 안경원 안이 어두운 데다가 사내는 자신의 머리보다 한참 크고 헐렁한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키가 꽤 큰 것 같았으나 자세를 낮추고 있어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다. 윤새는 이미 문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사내는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문에 달라붙어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안경원 내부가 아니라 바깥을 먼저 경계하는 것으로 보아 월성회 관련자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윤새는 판단했다. 그럼에도 총을 내리지는 않았다.

사내는 계속 바깥을 살피고 있었다. 윤새는 그 사이에 몇 번이고 총을 고쳐잡았다. 총을 쥔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 지금 미래를 보아도 될까? 아니다, 미래를 파악하고 있을 때 저 사내가 뒤를 돌아 공격하면 대처가 굼떠질 것이다. 미래를 확정받고 편안을 찾고 싶은 본능을 따르기보다는 확실한 우위를 유지하는 편이 이성적이다. 모자를 쓴 사내는 좌우를 한 번 더 두리번거리며 살피더니 천천히 뒤를 돌았다.

“당신이 그 윤새 씨군요.”

“당신이 누군지부터 밝혀.”

“하늘소입니다. 지금 상황이 아주 급합니다.”

자신이 하늘소라고 주장하는 사내는 자신을 향한 총구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성큼 진열대 앞으로 다가왔다. 윤새는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그의 이마를 꿰뚫을 수 있도록 총을 다시 조준했다.

“단어를 말해.”

“단어?”

“어둠 속에서도 서로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정해 두었던 단어. 말해.”

사내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윤새를 쳐다보았다. 그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윤새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다시 고민하듯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단어 같은 거 없습니다. 그런 거 정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단어 하나로 제한 없는 신뢰를 허용하는 것 자체부터 이미 위험하다나.”

사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손가락을 튕겼다.

“진운이가 그렇게 말했죠.”

윤새는 안전장치 위에 손가락은 올려둔 채로 천천히 총을 내렸다. 사내는 안심한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모자를 벗었다. 윤새는 긴장을 풀지 않고 사내가 진열대 앞 손님용 의자에 풀썩 앉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창문으로 달빛이 새어들어오자 사내의 얼굴이 어렴풋하게나마 보였다. 윤새는 경식이 미리 알려주었던 그의 인상착의를 확인했다. 아주 큰 모자, 오른쪽 눈썹에 흉터, 정중하고 예의 바른 표정. 하늘소가 맞다.

“급한 상황이라는 게 뭡니까?”

“동지한테는 말을 높이시는군요. 그게 옳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 봉투로 확실히 증명하겠습니다.”

하늘소는 한여름인데도 얇은 회색 겉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겉옷의 깊숙한 곳에서 두꺼운 봉투를 빼 진열대 위에 올려놓았다. 자금이 담긴 봉투였다. 그는 윤새의 신뢰를 쌓기 위해서인지 봉투를 윤새에게 더욱 가까워지도록 스윽 밀었다.

“다음 차를 타야 하니 짧게 설명하겠습니다. 발각 당했습니다. 정보가 샌 건 아니고, 흥청망청 술 퍼먹고 골목을 배회하던 군인과 맞닥뜨렸습니다. 아예 작정하고 잠입한 놈들이었다면 우리도 미리 알아챘겠으나 이건 생각지도 못한 경우였으니…… 다행히도 앞에서 달리던 용맹이가 알아채 모두 들키지는 않았으나 그 뒤에 온 우진이가 들켰죠. 군인놈이 쓰잘데기없이 임무에는 투철한지 달리는 우진이를 보자마자 정신을 차리더군요. 아, 우진이는 무사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총을 쥔 윤새의 손에 땀이 차올랐다. 윤새는 총을 다른 손에 쥐고 축축해진 손을 무릎에 문질러 닦았다. 하늘소는 손목시계를 한 번 확인하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시하고 계속 기차역으로 달리기에는 소란이 커지겠다고 안 선생님께서 판단하셨습니다. 혹여나 들키면 제가 향하는 목적지도 함께 들킬 테니까요. 근처에 숨으면 위험하니 안경원에 가서 숨어 있다가 바로 다음 차를 타기로 했죠. 도착하면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총을 겨누고 있을 거라 말씀하시더군요.”

하늘소는 윤새가 손에 쥔 총을 가리키며 시원스레 웃었다.

“그 시커먼 총구를 보고 제가 안심했지 뭡니까.”

전혀 재미있지 않은 농이었지만 윤새는 예의를 지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로 오기 직전 상황은요.”

“조용히 처리해야 하니 쉽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다시 출발하기 전에 역까지의 동선이 안전한지도 다시 확인해야 할 테고요.”

하늘소는 다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건 나머지의 몫입니다. 우리는 믿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합시다.”

하늘소는 호주머니에서 꼬깃한 종이와 낡은 라이터를 꺼냈다. 그는 진열대의 유리판 위에 손바닥 두 개만한 종이를 펼쳤다. 작전 회의 때 경식이 동선을 그렸던 지도의 축소판이었다. 그는 찰칵 소리를 내며 라이터를 켜더니 손가락으로 붉은 선을 짚었다.

“2분 뒤 이 동선 그대로 갑시다.”

“회의 때 설명 받았던 동선이네요. 합류 지점은 변동 없습니까.”

“변동 가능성 있습니다,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동선대로만 가면 나머지가 와 있을 겁니다. 우리는 믿고 가기만 하면 됩니다.”

반복되는 형식의 답변에 윤새의 눈썹이 살짝 구겨졌다.

“아까부터 자꾸 믿으면 된다, 가면 된다…….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좀 더 철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늘소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안이 어두워 자세히 표정을 볼 수는 없었으나 윤새는 그의 심기보다는 작전의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동료에게 지나치게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상황이 바뀌는 건 순식간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늘소는 손목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는 것처럼 턱을 괴고 발을 두세 번 구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믿지만 의지하는 건 아니에요. 둘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새 씨 말대로 우리는 늘 철저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함께하는 상대에 따라 내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나, 얼마나 나와 이 작전을 맡겨야 하나……. 매번 고민합니다.”

하늘소는 문장이 끝날 때마다 바깥을 살폈다. 확인을 위해 지적은 했지만 윤새 또한 그가 무분별하게 사람을 신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여기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신중한 사람이었다. 안경원 안에 있는 사람보다 바깥에 있는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고, 그의 선택은 효율적이며 옳았다. 하늘소는 옷매무새를 추스르며 말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참 특이합니다. 믿었기에 살아남은 날이 있는가 하면 믿은 나머지 죽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하늘소는 손목시계를 톡톡 가리키며 씩 웃었다. 나갈 시간이 된 것이다.

“그래도 웬만하면 믿는 게 더 효율적이었습니다.”

윤새는 말을 마치고 먼저 안경원을 나가려는 하늘소의 어깨를 붙잡았다. 자신이 먼저 나가 보겠다는 신호를 손짓으로 주자 그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윤새는 그에게 등을 보인 채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천천히 떴을 때 보이는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까딱여 나간다는 신호를 보내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이쪽 지리 잘 알아요?”

안경원을 나와 곧장 골목 안쪽으로 향하며 윤새가 낮게 속삭였다.

“지도를 외웠어요.”

하늘소가 답했다. 도착하자마자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고 정희가 마련해 둔 은신처에 박혀 있었으니 사전 답사를 해 보았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발걸음은 윤새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잘 아는 것처럼 신속했다. 커다란 자금을 조달하는 임무를 맡는 수준의 인사라면 길을 모른다는 이유로 작전에 누가 될 리는 없겠으나 그렇더라도 지리에 능숙한 편이 나은 게 당연지사였다. 윤새는 계속 나아가자는 손짓을 하고는 그대로 직진하여 달려갔다.

쉬지 않고 계속 뛰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나타났다. 여름이 되면 아이들이 그늘에서 놀고 어른들은 늘어져 휴식을 취하는 마을의 명물이었다. 그리고 작전의 중간지점이기도 했다. 작전대로라면 곧 다른 단원들과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쪽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윤새는 멈추지 않고 달리며 하늘소를 향해 손목을 흔들어 보였다. 그는 권총을 쥐지 않은 손으로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가 접고, 다시 다섯 개를 펼쳤다. 25분이라는 뜻이겠거니 하고 윤새는 나무를 지나쳐 달렸다.

“잠시.”

윤새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접어들기 전 손을 들어 하늘소를 멈춰 세웠다. 그는 시간을 흘깃 확인하고 다급하지만 정중한 눈빛으로 윤새를 쳐다보았다. 윤새는 눈을 톡톡 두드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권총을 고쳐잡았다. 순간 윤새의 마음에 날카로운 불신이 스쳤다. 성천의 죽음 이후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몇 초라도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은. 그러나 그 동시에 안경원에서 나누었던 하늘소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의지하는 것인가, 믿는 것인가. 무엇이 효율적인가.

윤새는 눈을 감았다. 검게 물든 시야에 희고 작은 점들이 별처럼 반짝이며 스쳐 지나갔다. 점들은 별똥별처럼 빠르게 사라져갔다. 시야가 완벽히 까맣게 물들자마자 그는 눈을 떴다. 윤새는 수상한 거동이 보이는 곳을 향해 곧바로 겨눌 수 있도록 장전된 권총을 양손으로 꽉 쥔 채 눈앞에 펼쳐진 미래를 훑었다. 동선상 처음으로 지나쳐야 하는 민가의 담벼락 위로 무언가 삐죽한 게 솟아올라 있었다. 윤새는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비어 있는 담벼락 위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하늘소도 총을 고쳐잡고 윤새가 겨누는 방향대로 총을 겨누었다.

속으로 열까지 세자 직전에 보았던 미래대로 삐죽한 것이 솟아올랐다. 윤새는 정확히 조준하기 위해 왼쪽 눈을 찌푸리며 알 수 없는 형체를 향해 다가갔다. 일 자로 꼿꼿하게 솟구쳐 있던 형체는 윤새가 몇 걸음 다가가자 힘이 탁 풀린 듯 흐물흐물해지더니 좌우로 살랑거렸다. 잠시만, 살랑인다고?

“...... 용맹이?”

용맹이가 신난 얼굴로 담벼락 위로 솟구쳐 올라왔다. 윤새는 저도 모르게 꿇어앉아 덮치다시피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용맹이를 끌어안았다. 용맹이는 헥헥거리며 윤새의 코를 핥고 그 다음에는 하늘소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았다. 이 정도 확인이면 되었다 싶었는지 용맹이는 둘을 돌아보며 낮게 ‘멍!’ 하는 소리를 내더니 원래 동선의 방향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윤새와 하늘소는 망설이지 않고 뒤따라 달렸다.

기차역 바로 옆에 위치한 골목길에 다다랐을 때 용맹이가 멈춰섰다. 윤새는 권총을 쥔 채 담벼락에 붙어 주변을 경계했다. 용맹이는 바닥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다 한 지점에 멈추고 다시 낮게 짖었다. 합류를 하는 것까지가 작전이었기에 윤새는 다른 단원들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언니, 여기예요.”

누군가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위쪽에서 내려와 윤새의 귓가를 스쳤다. 희미한 빛이 담쟁이 덩쿨처럼 담을 타고 내려오더니 윤새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위를 보니 명원이 은은하게 빛나는 얼굴로 웃으며 윤새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윤새는 명원의 입꼬리 끝에 얹힌 보조개를 보고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작전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명원은 윤새의 옆에 있는 하늘소에게도 장난스럽게 빛줄기를 보냈다. 하늘소는 어깨를 타고 내려오는 얇은 빛 가닥을 잡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본 명원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 밟고 올라가요.”

하늘소가 다리를 굽히고 자신의 허벅지를 발판으로 만들어 툭툭 치며 말했다.

“혼자 올라갈 수 있어요.”

“비밀 결사라면 다른 사람 밟고 담 넘는 연습을 해 두어야 해요. 자, 어서.”

윤새는 마지못해 하늘소의 허벅지를 밟고 담벼락 윗부분에 올라타 앉았다. 그가 어둠 속에서도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영원이 빛덩어리를 만들어 주변을 밝혀 주었다. 어디에 발을 올려야 안정적인지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환한 빛이었다. 위치를 발각당할 우려 없이 마음껏 비출 수 있는 것은 영원의 곁에서 그림자로 빛을 가리고 있는 명원 덕분이었다. 명원의 손끝에서 안개처럼 퍼져 나오는 그림자가 환하게 번져가는 동생의 빛이 멀리 새지는 못하도록 부드럽게 덮고 있었다. 그림자였구나. 윤새는 처음 목도하는 명원의 능력에 잠시 정신이 팔렸다가 하늘소가 끙끙거리는 소리에 잽싸게 담을 넘었다.

밑으로 뛰어내리자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경식이 보였다. 아무리 해가 졌다고 해도 한여름이니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젖혀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는 윤새를 쳐다보더니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시도했다.

“윤새야, 이래서 독립운동은 젊을 때 시작할수록 좋은 거다.”

분명 웃기지도 않은데 윤새의 입에서는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픽 새어나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안도의 감각이었다. 작전에서만큼은 진지하던 경식이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제대로 마음이 놓였다. 월성회 사람들에게 정이 붙었다는 사실은 스스로 인정한 지 오래였다. 그들이 베푸는 살가운 친절이 윤새의 두 눈 때문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돌아갈 곳이 있는 삶이 달콤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곁에 함께 누워 잠드는 것. 내일 눈을 뜨면 같은 천장이 보일 것을 아는 것. 같은 사람과 매일 아침 같은 인사를 주고받는 것. 잠깐의 미래를 봐 주고 가끔 그들이 정해 준 대로 달리는 게 그 평온의 대가라면 이건 남는 장사였다.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건 그저 그들이 주는 정이 좋아서 덩달아 정을 붙여버린 마음을 인정하기 싫어 윤새가 만들어낸 설명일지도 몰랐다.

하늘소가 탁 소리를 내며 땅에 착지했다. 꽤 무게가 나가는 몸일 텐데도 가볍게 착지하는 모습으로 보아 낙법을 익힌 모양이었다. 경식이 작전 회의 때 말했던 대로 체술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늘소는 손목시계를 다시 확인하더니 양 손바닥을 쫘악 펼쳐 보이며 말했다.

“10분 남았습니다.”

이마에 땀방울을 매단 채로 경식이 일어났다. 그는 아무 지시도 내리지 않았지만 명원과 영원은 그가 몸을 일으켜 세우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골목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우진은 쭈그려 앉아 용맹이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속닥이며 정면을 가리켰다. 그는 자신이 가리킨 방향대로 맹렬히 달려가는 용맹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왼편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경식은 흩어지는 단원들을 보다가 하늘소와 윤새 쪽으로 다가왔다.

“어이, 하늘소. 여기 윤새랑 통성명은 했나?”

“아, 안 선생님.”

하늘소는 헐렁한 모자를 벗으며 끄덕였다.

“친절히 장전된 권총으로 맞아 주셨습니다.”

하늘소는 뒤에 서 있는 윤새를 보며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남태우입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그는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윤새는 그의 손을 맞잡아 작게 흔들었다.

“성윤새입니다.”

윤새의 말을 들은 하늘소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는 손을 놓는 것도 잊은 채 조금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성씨는 지금 처음 듣네요. 성윤새였군요.”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나랑도 악수하고 가게나.”

경식도 하늘소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였다.

“마지막인 게 차라리 낫지 않겠습니까.”

하늘소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가볍게 대꾸했다.

“안 되지, 그래서는 안 되지.”

경식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하늘소의 어깨를 탁탁 쳤다. 하늘소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말없이 달려야 할 시간이었다.

“윤새야, 너는 진운이와 함께 뒤에서 따라와라. 지금 홀로 돌아가면 더 위험하다.”

그제야 윤새는 진운이 그동안 부재했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뒤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온통 시커먼 옷을 입은 진운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얼굴의 반절이 검은 천에 덮여 있어 눈만 동동 떠다니는 것 같았다. 경식은 윤새의 곁에 다가가 서는 그를 확인하고 자신의 동선대로 앞서 향했다.

윤새도 경식을 따라 땅을 박찼다. 어둠 속에서 네 명이 골목길을 달려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경식이 선두에서 하늘소의 앞을 지켰고 윤새와 진운은 하늘소의 뒤를 지키고 있었다. 윤새는 진운에게 간단한 눈인사라도 건네는 친절을 베풀어 볼까 하였으나 그는 앞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달렸다.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어둠 속 적을 찾는 듯 간간히 눈썹 사이가 구겨졌다. 아니, 무언가 거슬리는 건가. 표정이 보이지 않아 알 수 없었다.

“성윤새 씨.”

하늘소가 조용한 목소리로 불러왔다. 앞에 달리고 있던 경식은 잠깐 뒤를 돌아보나 싶더니 이내 속도를 유지하며 달렸다.

“우리 다시 봅시다.”

윤새가 숨을 고르고 입을 열기도 전에 다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고마웠어요.”

윤새는 마지막 말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하늘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셋은 골목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오밀조밀하게 모인 하숙들, 담 위로 삐죽 솟아오른 나무, 누군가의 집이 시야에서 빠르게 스쳐갔다. 옆을 보자 달리는 진운과 시선이 부딪혔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윤새는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소는 겉옷의 안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달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지금 그가 손에 쥐고 있어야만 안심되는 것은 권총이 아니라 단 하나의 봉투라는 것을.

골목의 끝이 코앞에 다가왔다. 윤새는 하늘소의 마지막 말에 대답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알 수 없는 정답을 찾아내려 애쓰는 것보다는 그 편이 효율적이니까. 대신 눈을 감았다.

그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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