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새는 명원이 곁에 있을 때 잘 웃었다. 아마 명원 특유의 맑고 다정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명원은 누구에게나 살가웠고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말은 좀처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가끔 월성회 단원 중 누군가 무리하려는 낌새를 보이면 단호히 막거나 작전의 빈틈을 짚어낸 뒤 해결책을 제시하는 등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였다. 긍정과 결단력, 살가움과 단호함. 상충하는 자질처럼 보이지만 명원의 다정은 이러한 강인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함께 살아남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키워낸 다정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가시를 길러냈던 윤새와는 정반대의 성질이었으나 자석의 다른 극이 서로에게 이끌리듯 둘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러니 동료라는 게 꼭 모든 방면에서 완벽히 들어맞아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한 달 정도 안경원에 녹아드는 윤새를 지켜본 경식의 결론이었다. 명원이 우진을 은근히 꺼려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상성만 보면 명원과 우진이야말로 둘도 없는 죽마고우가 되어야 할 텐데 명원은 우진이 똥강아지마냥 달려오면 질색하며 뒤로 물러났다.
지금도 그렇다. 경식은 안경원의 미닫이문을 천천히 열고 들어가다가 웅크려 앉아 있는 우진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는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마련해 둔 의자를 붙잡고 몸을 지탱해 자빠지는 봉변을 겨우 면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위기에 벌렁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한마디 하기 위해 입을 여는데 우진이 두 손을 모으더니 다급하고 조용하게 싹싹 빌었다. 경식은 그가 그렇잖아도 큰 입을 과장스럽게 벙긋거리며 무어라 속삭이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잠시만’과 ‘조용‘과 ‘제발’ 정도는 알아들었다. 아이고, 우진아. 또 무슨 쪽을 당하려고 이러니. 경식은 헛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큰 작전 하나 끝났으니 그 정도 장단은 맞출 수 있었다.
우진이 공처럼 웅크린 자세를 풀며 천천히 일어났다. 진열대 쪽을 보니 정수리 하나가 삐죽 올라와 있었다. 위로 삐죽 솟아오른 잔머리가 연갈색으로 빛나는 것을 보아 명원이었다. 앞뒤로 달랑거리는 게 드디어 한풀 꺾인 날씨에 살 만해져 까무룩 졸고 있는 듯했다. 우진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살금살금 진열대로 다가갔다. 아이고, 우진아. 결말이 얼추 예상이 갔지만 경식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 방관했다.
우진은 진열대 앞에 서서 기습을 위해 두 팔을 번쩍 쳐들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대로 굳었다. 기세 좋게 잠입에는 성공했으나 막상 놀래키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모양이었다. 경식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용맹이는.”
“으아악!”
갑자기 튀어나온 명원의 목소리에 우진이 팔을 젖히며 뒤로 넘어갔다. 쿵 소리를 내며 엉덩방아를 찧은 우진이 울상을 지으며 경식을 올려다보았다. 경식이 초반부터 소리를 내는 바람에 명원이 눈치 챘다고 원망하는 얼굴이었다. 경식은 그의 맨들한 이마를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타박했다.
“아이고, 우진아. 명원이가 명색이 잠입 담당인데 너한테 당하겠니.”
“저, 저도 잠입이라면 여러 번…….”
“무슨 소리야. 용맹이는 어디 있냐고.”
명원이 눈을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우진은 한층 더 억울해진 얼굴로 명원을 쳐다보다 힘없이 답했다.
“장터 쪽으로 정찰 나갔어. 내가 저잣거리 소문이라도 잘 들어오라고 부탁해서.”
“그래? 의심 받을 일은 없지만 조심하라고 해.”
명원이 염려스러운 얼굴로 말하고는 우진이 넘어지는 충격으로 조금 흐트러진 진열대 속 안경집과 안경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전할게…….”
우진이 황망한 얼굴로 답했다. 명원은 그런 그를 흘깃 보더니 아무 말도 없었다. 안경원 문이 스르륵 열리고 윤새가 용맹이를 품에 안은 채 들어왔다. 명원이 반가워하며 벌떡 일어나 다가갔다.
“둘이 어디서 만났어요? 지금 용맹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옆 가게 바로 뒤에서. 거기 어린 꼬맹이 하나 있잖아. 걔가 귀엽다면서 용맹이 꼬리를 잡으려 하길래 위험해 보여서 데리고 왔어.”
“너 이 자식, 아무리 그래도 사람 물면 안 된다.”
우진이 윤새의 품에 배를 까고 편안하게 안겨 있는 용맹이에게 다가갔다. 그가 단호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자 용맹이는 흰자를 보이며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우진은 따끈한 배를 마구 쓰다듬는 것으로 잔소리를 대신했다.
“영원 씨는 어디 있어요? 고 선생님께서 나눠 먹으라고 약과 주셨는데.”
윤새가 소매를 뒤적거리더니 울룩불룩한 헝겊을 내밀었다. 경식은 그 헝겊에 흰 강아지 털이 붙어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지만 지적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몰라요?”
윤새가 되묻자 용맹이가 갑자기 번쩍 뛰어내리더니 우진의 허벅지를 앞발로 벅벅 긁었다. 우진은 고개를 숙여 용맹이가 짖고 으르렁거리는 것을 듣고 잠시 뒤룩뒤룩 눈알을 굴리다 말했다.
“체술 연습하러 산이요.”
우진은 숨기는 게 있는 것처럼 말을 마치고 급히 윤새가 쥔 헝겊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진열대로 가 마구 접힌 헝겊을 정성스럽게 펴고 약과를 차곡차곡 탑처럼 쌓아올렸다. 저번과 똑같이 여섯 개였다.
“진운이는?”
경식이 약과 하나를 집으며 물었다.
“체술 연습하러…… 산이요.”
우진이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경식은 약과를 씹어 삼키며 탄식했다. 마지막 작전 때 죽을 가능성이 가장 낮은 역할을 맡았다는 것만으로 속이 상해 단원들 몰래 밤을 지새우던 진운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오래도록 감시했던 대상이자 아직 월성회에 제대로 입단하지도 않은 윤새가 그 작전에서 자신보다 큰 활약을 해 버렸으니 더욱 입이 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진운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경식이 작전 회의에서 설명했듯 진운이 나서기에는 비효율적인 상황이었을 뿐이다. 하늘과 날씨가 적절한 날이라면 경식 또한 진운에게 그가 바라는 가장 죽을 확률이 높은 역할을 맡길 생각이었다. 경식은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아꼈지만 그렇기에 그가 내리는 결론은 언제나 불가피하고 가장 이성적이었다.
“해 지기 전까지 산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분명히 해 두었는데.”
“용맹이한테 가 보라고 할까요?”
우진이 흔들리는 동공으로 경식을 쳐다보며 말했다. 경식은 고개를 저으며 우진의 복실거리는 뒷머리를 헝클였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밤인데 불안해서 어떻게 보내나.”
“그렇죠. 요즈음 남의 집 개 잡아가는 개장수도 있고.”
우진은 반박하려는 시도조차 않고 고개를 털레털레 저었다. 명원은 그의 빠른 수긍에 혀를 차며 약과에 묻은 흰 털을 떼고 입에 집어넣었다.
“내가 다녀오마. 어디 멀리 갔겠어? 늘 대련하던 데서 둘이 치고받고 싸우고 있겠지. 너희도 곧 해 떨어지니까 약과 다 먹으면 정리하고 위로 올라가라.”
경식은 약과 부스러기를 털며 일어나 안경원을 나섰다. 문을 닫는데 아직 절반쯤 먹은 약과를 쥐고 멀뚱히 쳐다보는 윤새와 눈이 마주쳤다. 윤새는 골치 아픈 일을 생각하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다 이내 고개를 휙 돌렸다. 경식은 그 당당함에 헛웃음을 지으며 바깥으로 나왔다.
어느새 저녁바람이 부쩍 차가워졌다. 나오자마자 볼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이 눅눅하지 않고 시원했다. 바람이 시원해졌다는 것은 곧 해가 일찍 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밤이 길어지는 것은 독립운동에 있어 장단점이 극명하다. 어둠은 담을 넘어다니며 이동하는 사람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탁월한 은신처다. 더군다나 빛과 그림자를 다룰 수 있는 명원과 영원이 있으니 어두운 밤과 월성회의 조합은 참기름과 나물의 조합만큼 탁월했다. 그러나 작전이 아닌 날에는 오히려 길어진 밤이 불편했다. 해가 진 어두운 밤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조선인은 경찰의 눈에 수상하기 짝이 없으니까. 하물며 산에서 은밀히 만나 대련하는 영원과 진운은 어떨까. 그래서 제대로 어두워지기 전에 영원과 진운을 찾으러 굳이 직접 나서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슬슬 집에 들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총부리를 들이대거나 윽박지르지 않아도 언젠가부터 모두가 어두워지면 자발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람의 발소리에 놀라 파드득 구석으로 도망가는 벌레들처럼. 경식은 주변을 살피며 오른쪽 모퉁이를 돌았다.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촘촘하게 늘어선 집들이 나타났다. 지붕의 색깔부터 크기까지 죄다 멋대로인 집들 안에는 하루 동안 겨우 먹고 살 돈으로 일주일을 나야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올라가는 길은 초가을에 느릿하게 걸어도 등줄기에 땀이 삐질 흐를 만큼 높디 높았다. 길의 끝에는 더 이상 산이라 불릴 수 없는 홀로산이 있었다. 경식이 안경원을 처음 열 때즈음에는 친구산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때는 어린아이들이 정찰을 나가겠다며 자기들끼리 놀러가도 말리는 어른 하나 없을 정도로 정답고 친근한 산이었다. 그 흔하다는 뱀이나 멧돼지조차 한 번 나오지 않아 조선인을 지켜주는 산신령이 산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안전한 곳이었다. 반갑게 맞아 주는 친구 같다고 해서 붙은 친구산이라는 별명 그대로 산의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대일본제국을 표방하는 자들 눈에 친구고 뭐고 있겠는가. 어느날 무더기의 군인들과 양복을 빼입은 일본인 남성 셋이 친구산으로 몰려왔다.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저들끼리 떠들며 뒷짐을 지고 친구산 앞을 잠시 서성거리다 떠났다. 바로 다음날부터 인부들이 몰려와 산을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경식은 한바탕 소동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상황을 살피기 위해 친구산으로 향했다. 지리가 바뀔 때마다 알아두는 것이 추후 작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착하니 소동은 없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조선인들이 조용했다. 팔을 걷어붙이고 단단한 나무 줄기를 잘라내는 사람도 조선인이요, 그 광경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하는 사람도 조선인이었다. 몇백 년 동안 자라왔을 나무들의 둔탁한 비명소리만이 메아리처럼 골목 구석구석을 울리고 있었다. 산신령을 찾고야 말겠다며 자주 산으로 정찰을 나가던 아이 하나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숨죽여 울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소리도 내지 않고.
“나무들이 우리를 미워할까요?”
아이는 퉁퉁 부은 얼굴로 속삭였다. 그토록 조용했으니 분명 모두가 들었을 텐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먹먹한 침묵 속에서 또 다른 나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느릿하게 오랫동안 자라온 산을 깎아내리겠다는 결정은 아주 빠르고 짧게 진행되었다. 경식은 그게 참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 결정에 대한 철회조차 한순간에 이루어졌으니까. 양복을 입고 있었던 세 명의 일본인들은 절토 공사를 시작하고 일주일 조금 넘게 지난 어느날 밤, 어쩌면 저번의 그 산보다는 저저번에 봤던 다른 산을 깎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다음날 친구산에서 나무를 베던 인부들에게 즉각 작업 장소를 옮길 것을 명령했다. 속전속결이었다. 그렇게 친구산은 절반만 사라진 흉한 모습으로 그곳에 남았다. 산이라 불릴 수 없는 산이 되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친구산에 오르지 않았다. 나무가 뒤덮어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랐던 예전의 울창한 모습보다도 모든 게 사라져 아무것도 남지 않은 모습이 더 기이하고 두려웠다. 사실 그것보다도 벗이자 놀이터가 되어 주었던 나무들이 죽어가는 광경을 목도하고 방관했던 무력함이 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푸르던 이끼와 나무들이 사라지고 주황빛 진흙과 끊겨나간 뿌리들만 남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게 제 탓이 된 것처럼 아리고 쓰렸으니까. 그렇게 아무도 찾지 않아 혼자 남은 산은 홀로산이 되었다.
그런 산에 지금 경식이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성큼성큼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꼬질꼬질한 남자아이 하나가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그를 관찰하듯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경식은 의심을 풀기 위해 아이와 눈을 맞추며 눈썹을 들썩였다. 화들짝 놀라며 들어가는 모습으로 보아 역효과가 난 모양이었다. 어린아이에게 호감을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의 첫인상을 후하게 평가해 준 유일한 어린아이는 일곱 살 시절의 윤새 하나뿐이었다. 정작 스물셋의 윤새는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지만.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쯤 경식은 홀로산 입구에 도착했다. 해는 어느새 절반만 모습을 내놓은 채 하늘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신발이 더러워지는 것은 개의치 않고 흙더미를 밟으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제대로 딛을 곳 없이 말라붙은 진흙과 잡초들만 남아 있는 땅이어서 두 팔을 휘두르며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 딱 중간까지 왔다 싶을 정도로 올랐을 때 오른발로 딛은 진흙더미가 힘없이 와르르 무너졌다. 경식은 ‘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팔을 둥그렇게 휘저어 뭐라도 잡을 것을 찾았다. 그러나 나무가 다 깎여나간 산에는 지푸라기 하나 없었다.
“여기까지 오시고 그래요.”
누군가 경식의 팔을 꽉 붙잡고 등을 받쳐 주었다. 뒤돌아보니 영원이 잘못 걸렸다는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며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진운이 곧 떨어질 불호령을 기다리듯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대련을 하다가 격해졌는지 둘은 모두 입가에 작은 피딱지를 매달고 있었다. 경식은 팔을 흔들어 영원을 털어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안경원으로 돌아오는 게 원칙 아니었나? 저번 작전이 차질없이 흘러가서 들뜬 건 이해한다만 그래서 더더욱 종로구 단속이 심해진 건 모르나? 그렇게 치고받고 싸우는 게 좋으냐?”
영원과 진운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못은 아는 모양이었다. 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었기에 경식은 그대로 뒤를 돌아 홀로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용히 자박거리며 따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얼마나 화가 난 건지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경식은 진심 어린 반성 때문이 아니라 다음 작전 때 투입되지 못할까 봐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 그렇겠지. 그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바삐 걸음을 재촉했다.
“싸우지 않았습니다.”
진운은 이 말을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기침처럼 했다. 그 다급하고 불안한 문장이 마치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경식은 말없이 돌아보았다.
“오늘은 지키는 연습을 했습니다.”
진운이 덧붙였다.
“옆에서 싸울 수 없다면 뒤에서 지켜주어야지요.”
그는 고개를 들고 경식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같이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