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식아, 같이 하자.”
그리 말하며 뻗어오는 손이 어찌나 고맙던지. 경식은 아직도 그 손에 대한 꿈을 꾸고는 했다. 그리운 나날의 기억들은 모두 고향인 수원에 있다. 경식은 퇴역한 군인인 아버지와 삯바느질을 하는 어머니의 밑에서 주먹만한 왜소아로 태어났다. 아주 추운 겨울날, 경식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를 손바닥 위에 처음 올린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세게 감싸면 작은 몸이 터질까 두려워 입김을 호오호오 불며 몸을 데워 주었다고 했다. 그 사랑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걸까. 겨울이 되고 시린 날씨가 찾아올 때면 경식은 누군가 따뜻한 바람을 불어 주고 있는 것처럼 배가 간질거렸다.
경식의 가족은 산 언저리에 살고 있었다. 풍수지리가 좋아 조선에 크게 이바지할 인물이 아주 많이 난다며 한때는 이름이 났던 산이었다. 어린 경식은 아주 조용하고 나서서 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아홉 먹은 그의 눈에는 뺀질거리고 꽥꽥거리며 뛰어다니는 마을 아이들에게서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경식의 아버지는 경식이 한창 클 나이가 되자 평소 다니던 심부름이나 잡일도 모자라다며 땅을 태워 조그마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경식은 절뚝이며 흙 묻은 손으로 땀을 닦는 아버지를 보고 저도 모르게 속상해서 훌쩍였다. 이리 살아 뭐 한단 말인가. 불태우고 비쩍 마른 곡식을 죽 쑤어먹고 다시 불태우고. 이리 살아서 뭐가 된단 말인가. 고작 아홉에 한 생각이었다.
아이답게 깊게 생각하지 않고 뛰어놀 친구들이 있었더라면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뜩이나 왜소아로 태어난 데다가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 아들이었던 경식은 비쩍 말라 툭 치기에도 미안해지는 덩치였다. 자신보다 약해 보이면 한 번이라도 건드려 보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본성일까. 짓궂은 아이들은 가끔 뒤에서 경식을 와락 밀치며 한바탕 웃고 도망갔다. 그럴 때마다 경식이 할 수 있는 일은 흙바닥 위에 자빠져 숨을 고르고 무표정한 얼굴로 일어나 그들의 흥미를 죽이는 것뿐이었다. 가끔 인원을 채우기 위해 놀이에 끼워 줄 때마저도 경식은 깍두기였고, 그와 같은 편이 된 아이들은 벌써 진 것처럼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는 흰 조약돌 사이에 낀 못생긴 돌덩이처럼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웬 가족이 경식의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 젊은 여자가 한 손으로는 아기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한 남자아이의 손을 잡은 채 경식네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바느질을 마무리하다 말고 뛰어나온 경식의 어머니가 영문을 몰라 맹한 얼굴로 셋을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이웃집에 살게 되어서 인사하러 왔어요.”
여자가 살갑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경식의 어머니는 얼떨결에 고개를 푹 숙였다가 낯선 이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경식의 뒷머리를 눌러 인사시켰다.
“아이구, 반가워요. 그런데…….”
경식의 어머니가 세 사람의 뒤를 스윽 훑었다가 다시 젊은 여자를 쳐다보았다. 지아비는 어디로 갔는지, 어떤 연유로 이 동네에 이사를 온 것인지, 생계는 어찌 유지할 생각인지. 궁금한 것이 산더미였으나 무엇을 물어보든 무례했기에 어머니는 대화를 이어가지도 끝맺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느 쪽도 먼저 등 돌리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 속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소년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경성에서 나랏일 하세요.”
소년은 아차 하는 얼굴로 덧붙였다.
“총 들고.”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 한순간에 해결되었다. 소년의 어머니가 입을 막을 새도 없이 소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여기에서 기다리기로 했어요.”
경식은 젊은 여자가 소년의 손을 꽉 쥐는 것을 보았다. 그 비밀스러운 모습이 이제 막 선명해지던 세 식구의 정체를 더욱 수렁 속으로 빠트렸다. 갑자기 확 조여오는 고통에 소년이 울상을 지으며 퍼뜩 고개를 들다 경식과 눈이 마주쳤다. 눈물이 찔끔 고인 갈빛 눈동자는 노을 지고 있는 하늘을 비추어 단호박색으로 반짝였다. 악의라고는 하나도 담아 본 적 없는 것처럼 맑고 차분한 눈이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경식은 아홉 살 인생 동안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짓을 했다.
“안녕.”
먼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 것이다. 저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인사에 경식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을 뻔했다. 그런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소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니가 빠져 허술해 보이는 미소였다.
“안녕!”
⟡
“경식아, 너는 왜 놀이에 끼질 않아?”
소년의 이름은 박도경이었다. 도경의 앞니가 빠진 자리에 새 이가 완벽하게 자라날 때쯤 그는 마을의 모든 아이들과 얼굴을 트고 골목대장까지 맡고 있었다. 내심 도경과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누었다는 사실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경식은 그럴 일이 아닌데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단둘이 산 정상에 오른 날에도 그의 질문에 괜히 뜸을 들였다.
“너는 눈치가 없어? 나는 끼지 않는 게 아니고 튕겨나가는 거다.”
경식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도경은 어디 말 잘했다는 듯이 커다란 바위에서 풀쩍 내려와 고개를 까딱였다.
“튕겨나가?”
“그래. 나는 쓸 만하지 않으니까.”
“놀이에 쓸 만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재미있으려고 하는 거지.”
“뭐 이런 데서 꼬투리를 잡어? 내가 끼면 재미가 없는 거지. 나도 그런 놈들한테 알랑방구 낄 생각 없다.”
“그러면 내가 같이 하자면 할래?”
“뭐?”
도경이 손을 탁탁 털며 찌뿌둥한 허리를 폈다.
“저 밑에서 지금 편 갈라서 술래잡기 할 건데, 깍두기 말고 제대로 껴서 해라.”
“뭐어?”
“왜 자꾸 뭐뭐야. 나는 너 안 봐준다.”
도경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경식을 쳐다보다 앞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경식은 능숙하게 산비탈길을 뛰어내려가는 친구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 급히 뒤따라 달렸다. 나무와 덤불들이 초록색 덩어리로 뭉쳐서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모든 게 범벅이 된 시야에서 유일하게 선명한 것은 함께 달리고 있는 도경의 뒷모습이었다. 경식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그 모습을 오래 기억하리라 생각했다.
정신없이 산을 뛰어내려가자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방금까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경식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야, 걔는 잘 뛰지도 못하는데 왜 데려왔어?”
산 입구로 뛰어내려오는 둘을 보며 진철이 소리쳤다. 도경은 능청스럽게 잘 듣지 못한 척 어깨를 으쓱이며 경식을 가리켰다.
“뭐, 경식이?”
“그래, 걔는 만년 깍두기야.”
도경은 밤송이 같은 진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고 호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인마, 경식이는 나랑 매일 아침마다 저 정상 바위까지 산을 탄 놈이야. 못 뛸 리가 있겠어?”
억지를 부릴 줄 알았던 것과 달리 진철은 의외로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팔짱을 끼고 얼굴을 찌푸리는 것으로 보아 달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경식은 도경의 어깨 너머로 경식이 술래잡기에 끼는 데 수긍하는 진철을 보며 내심 놀랐다. 도경이 커다란 손바닥으로 박수를 짝짝 쳤다.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들었다. 한 아이가 도경의 뒤에 서 있는 경식을 보더니 옆으로 물러서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경식은 머뭇거리다 그 빈 자리에 들어가 섰다.
“자아, 이제 편 가르자. 진철아, 나와라.”
도경과 진철이 아이들이 둥글게 서서 만든 원 한가운데에 마주보고 섰다. 둘은 결연한 얼굴로 오른팔을 뒤로 한껏 뺀 다음 외쳤다.
“가위바위보!”
도경이 가위, 진철이 보자기였다. 진철이 탄식하고 도경은 소리를 지르며 발을 굴렀다. 아이들은 도경이 가장 먼저 같은 편으로 지목할 사람을 잠자코 기다렸다. 모두 아닌 척했지만 도경과 같은 편을 하고 싶어했다. 심지어 상대편 대장이 된 진철조차도 도경과 맞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아쉬워할 정도였으니까. 도경에게 붙으면 이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는 처음 마을에 들어와 경식과 인사할 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도경이 가늘게 눈을 뜨고 원을 휘이 둘러보았다. 들리는 건 바람소리뿐인데도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북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땅만 쳐다보고 있던 경식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시원하게 접혀 웃는 눈이 경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경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경식아, 같이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