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란 게 어쩌면 그리 대단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길이라는 게 진정 존재한다 치더라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인생의 무얼 그리 좌지우지하겠냐는 말이다. 보이지도 않는 것이 어떻게 뛰어넘을 수 없고 거스를 수도 없는 벽이 되겠는가. 그저 눈앞에 날아오는 돌을 피하고 가끔 떨어지는 콩고물을 주워 먹으며 살면 된다.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도 바쁜 세상 아닌가. 그렇게 열둘의 윤새는 생각했다.
“그러고 돌아다니다 산도깨비가 잡아간다.”
그런데 마흔셋의 성천은 그 누구보다도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윤새는 만난 지 벌써 6년째인데도 그에게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여러 가지 있었다. 그는 하늘에 떠 있을 뿐인 별을 보고도 수십가지 점을 쳤으며 심지어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그날의 운세를 보고는 했다. 심지어 윤새를 산에서 주운 것조차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살아가다 보면 그처럼 되는 것인지 걱정스러운 날도 있었으나 윤새는 그의 운명론적인 태도를 싫어하지 않았다.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또 결론적으로 윤새 자신에게 거처를 가져다 준 고마운 태도라고 생각했다. 윤새는 거적대기를 걸친 채 장작더미를 얹은 지게를 짊어지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성천을 크게 불렀다.
“스승니임!”
“오냐, 왜.”
“산도깨비 잡아서 구워 먹어요, 우리.”
“그렇게 배가 고파? 아니, 윤새 너……. 내가 만들어 준 갓옷은 어쩌고 그리 춥게 있어?”
성천이 호탕하게 웃으며 장작을 내려놓다가 겉옷 하나 안 걸치고 있는 윤새를 보고 기겁하며 뛰어왔다. 보기 드물게 근심 어린 그의 얼굴이 재미있었다. 그가 자신의 목도리까지 풀어헤치며 뛰어오자 윤새는 뒤에 숨겼던 외투를 쏙 꺼내들며 웃었다. 살을 에는 추위가 시작되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며 성천이 서툰 솜씨로 만든 외투다. 부드러운 토끼털을 덧대어 잘 때 덮으면 바람이 들어도 따뜻했다.
“자, 여기 이렇게 가지고 나왔지요. 장작은 다 팼어요? 제가 도와준다니까…….”
“애가 무슨 장작을 패? 갓옷은 왜 안 입고 있어. 이렇게 따뜻한 재질의 갓옷은 임금님도 아껴서 입는 귀한 옷이라고. 마땅한 약도 없는데 고뿔 들면 어쩌려고 이렇게 나왔어?”
윤새는 토끼털에 파묻힌 채 또박또박 물어보았다.
“오늘 무슨 날인지 안 잊으셨죠?”
윤새는 성천의 말꼬리를 잘라먹고 기대에 찬 얼굴로 물어보았다. 성천은 곤란한 얼굴로 괜히 멀쩡한 지게를 만지작거리다 허리를 숙여 윤새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오늘 사격 연습 말이다. 혹시 내일로 미루어도 되겠니?”
이것으로 다섯 번째 미루어졌다. 윤새는 항의하려다 볼을 따뜻하게 쓸어오는 부드러운 갓옷을 만지작거렸다. 제법 간절해 보이는 성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알려주시면요.”
성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 번째로 예고 없이 연습을 미루었던 날 종일 말이 없었던 윤새를 경험한지라 상당히 다행스러운 모양이었다.
“총 쓸 일이 생겼어. 그리고 이따가 점심쯤에 손님이 오시거든.”
“아, 아주 멀리서 오신 귀한 분.”
반사적으로 나오는 대답에 성천이 놀란 듯 눈을 치켜뜨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아주 귀한 분이야.”
“그 분은 왜 저한테는 인사하러 오지 않아요?”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래. 그런 사람도 있는 거야.”
성천은 윤새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고 둘이 함께 지내는 작은 오두막으로 이끌며 가볍게 말했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윤새는 믿어 주기로 했다. 성천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늘 비밀스러운 사람이었으니까. 그가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의심되고 걱정스러운 일이다.
“자, 오늘은 내가 미안하니까 고기 먹자. 어때, 기분 좋지.”
하지만 성천은 윤새가 세상에서 가장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윤새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가끔 이상하고 소름이 끼치더라도 윤새의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차피 추운 오두막집 안에서 그나마 따뜻한 방의 가장 따뜻한 자리를 윤새에게 내어 주었다. 자신의 모자를 만드는 대신 윤새의 망토에 토끼털을 덧대어 주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어쩌면 과분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윤새는 뒤를 돌아보았다. 성천이 축 쳐진 눈썹으로 웃고 있었다. 성천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윤새는 그런 성천의 모습도 좋았다.
“고기는 됐어요. 그러니까 일찍 돌아와요.”
“이야……. 오늘은 내가 여러모로 놀라는 날이구나.”
성천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천히 말했다. 윤새는 뭐라고 쏘아붙이려다 자리를 뜨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성천이 부스럭거리며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등을 돌리고 앉아 괜히 이불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성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새야, 나 금방 돌아온다!”
⟡
윤새는 갑작스럽게 몸을 덮쳐오는 한기에 퍼드득 눈을 떴다. 문이 열린 것인가. 정신이 덜 깨서 허우적거리며 이불을 걷는 윤새를 누군가 덥석 잡고 일으켰다. 윤새는 옷깃을 붙잡아오는 손을 반사적으로 내치며 소리를 질렀다. 손은 당황해서 허공을 배회하다 이불에 파묻힌 망토를 잡고 윤새에게 천천히 둘러주었다. 그제서야 숨을 고르고 천천히 눈을 뜨자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대고 있는 성천의 모습이 보였다. 윤새는 흔들리는 눈으로 성천 등 뒤의 열린 문을 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성천은 윤새가 조금 정신을 차리자마자 급히 오두막 바깥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는 윤새의 신발에 설피가 잘 붙어 있는지 재차 확인하고 숲의 방향으로 달렸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윤새의 손을 꽉 붙잡으며 말했다.
“우리 산 내려가는 연습했던 거 기억하지. 그때 하얀 끈 묶어 두었던 나무도. 지금 나랑 그 나무까지 달리는 거야. 거기서부터는 윤새 혼자 산을 내려가야 한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왜 나 혼자 가요? 스승님은 어디 가는데요? 귀한 손님은 어디 갔는데요……!”
“둘이서만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그래. 그런데 그 일이 좀 위험해.”
둘이 함께 살던 오두막은 어느새 멀어져 작은 점이 되어 있었다. 위험하다는 말을 듣자마자 급격히 어두워지는 윤새의 얼굴을 보고 성천이 다급히 덧붙였다.
“위험한데 빨리 끝나! 윤새 네가 내려가 있으면 금방 갈 거야.”
“이제 다른 곳에서 살아요? 산 밑에서?”
윤새는 성천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의 표정을 보고 싶었지만 함께 달리고 있는 속도가 너무 빨랐고 눈이 거세게 내려 눈을 제대로 뜰 수조차 없었다. 저 멀리 하얀 끈을 휘날리는 커다란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성천도 그것을 보았는지 윤새의 손을 꾹 쥐었다. 윤새는 마음이 다급해져 고개를 돌려 성천을 똑바로 쳐다보며 소리쳤다.
“다시 오는 거죠?”
성천이 윤새와 눈을 맞추었다. 그 눈동자는 열둘의 윤새가 헤아리기에는 지나치게 어렵고 복잡했다. 아무것도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어 윤새는 무엇보다도 그의 대답이 필요했다. 다시 재촉하려 숨을 들이키는 순간 발목에 딱딱한 것이 걸렸다.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던 윤새는 중심을 잃고 눈이 덮인 흙바닥 위로 세게 엎어졌다. 성천이 손을 꽉 붙잡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산비탈을 굴렀을 것이다. 성천이 급히 윤새의 팔 밑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윤새의 발목 깊숙한 곳에서부터 찌르는 통증이 느껴졌다. 이를 악물며 주저앉는 윤새의 모습에도 성천은 침착하게 윤새의 발목을 더듬으며 반응을 살폈다. 발목의 한 부분을 누르자 눈을 질끈 감고 어깨를 움찔거리는 윤새를 보고 성천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윤새를 들쳐업고 다시 나무까지 달렸다. 왜 이런 상황에서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오르는 걸까. 성천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윤새는 자신과 욱씬거리는 발목을 나무라고 싶었다. 흰 천이 묶인 나무에 다다르자 성천은 윤새를 부드럽게 내려놓았다.
“조금 접질린 거다. 이틀 정도 쉬기만 하면 금방 나을 거야. 괜찮다 윤새야, 괜찮다.”
윤새는 성천의 옷소매를 꽉 붙잡았다. 그는 한쪽 팔에 기다란 총을 매고 있었다. 사격 연습을 하고 싶다고 몇 번 조르기는 했지만 하나밖에 없는 귀한 총이었다. 성천과 그 귀한 손님이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한다는 사실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끼어들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도. 윤새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저 혼자 내려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꼭 돌아오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성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윤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분명 다시 만날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이것도 운명이라서?”
성천은 윤새에게 자신이 두르고 있는 목도리를 둘러 주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가리켰다. 둘이 오두막을 떠나 내달리는 동안 구름이 걷힌 하늘은 조금 깎인 달과 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들이 보일 정도로 아주 맑게 개어 있었다. 그렇게 맑은데도 눈발은 여전히 느릿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괴리를 보고 있으니 눈을 감았다 뜨면 꾸는 줄 몰랐던 꿈에서 깨어날 것만 같았다.
“자, 봐라. 눈이 내리는데도 저렇게 별이 많잖아. 저 별들이 알려준 거다.”
그렇게 말하던 성천의 환한 얼굴을 윤새는 영원히 잊고 싶지 않았다. 운명에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성천이 말하는 운명이라면 따르고 싶었다. 성천이 준 것들은 모두 따뜻하고 과분했으니까. 천천히 미소가 번지는 윤새의 얼굴을 성천이 손으로 감싸 주었다. 차갑고 쇠 냄새가 나는 손이었지만 윤새는 아직도 가끔 꿈에서 그 손길을 느끼고 그리워했다. 성천은 숙이고 있던 몸을 곧게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별이 그리 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