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식 3

by 강소하

키가 한 뼘하고도 반이나 더 컸을 즈음의 가을, 경식은 도경이 어딘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느꼈다. 쾌활하고 누구에게나 잘 웃어 주는 구김없는 성정은 여전했으나 무언가 단단한 것이 그 안에 자리잡은 듯했다. 내일에 관해서라면 시들해진 놀이를 어떤 방식으로 바꿀지라든가 어떤 전략으로 맞붙어야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 이길 수 있는지라든가. 그런 실없는 것들에 대한 계획만 세우던 친구가 사뭇 달라진 것을 경식만은 느낄 수 있었다. 그 안에 생겨난 단단한 것이 날카로운 가시인지 굳건한 기둥인지는 도경 자신만이 알 일이었다.

“경식아, 오늘은 산 못 오른다.”

평소처럼 바로 옆집에 사는 도경을 찾으러 경식이 신발을 구겨신고 나오자마자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옆을 보자 담에 기대어 선 도경이 보였다.

“왜. 몸이 안 좋아?”

“다른 놈들이 먼저 올라갔거든.”

“일본에서 온 거야?”

경식이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일본놈만 왔겠니. 조선 사람도 여럿 왔지. 잡수시라고 넘긴 놈이랑 좋다고 먹어치운 놈이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왔다.”

“이런 산에는 무엇 하러…….”

“공기가 맑고 아름답잖아. 부수어서 가지고 싶겠지. 조선의 강산이며 사람이며 다 돈으로 보는 놈들이잖아.”

도경이 목을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경식은 그 모습에서 다시 한 번 단단한 무언가를 느꼈다.

“경식아, 너 수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어?”

“글쎄, 물 수 자를 쓰지 않을까 싶은데.”

“네 말이 맞다. 물골에서 나온 이름이란다. 물이 가득한 골짜기라는 뜻이지.”

“바다도 없고 이름 있는 강도 없는데 무슨.”

톡 쏘는 경식의 대답에 도경이 와하하 웃었다.

“땅은 그대로인데 물이 다 사라진 거야. 아주 느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 위에 살고 있는 거야.”

도경은 아주 먼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흐릿하게 말했다. 경식은 마음이 답답해졌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경식아, 나는 우리들도 그렇게 되는 건가 싶어서 조금 무서워. 땅은 그대로인데…….”

쇠를 내리치는 소리가 산 위에서 들려왔다. 깡깡거리는 소리에 어깨를 움츠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경식과 달리 도경은 신경 쓰이지 않는 듯했다. 그는 경식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낮게 웃었다.

“어깨 피자. 그래도 이렇게 함께 서 있으니 된 거 아니겠어.”

내리치는 소리가 일순간 멈추었다. 도경은 그제서야 천천히 고개를 들고 산 쪽을 바라보았다. 그 고요한 눈빛이 꼭 폭풍 전 가라앉은 하늘을 닮아 있었다. 가만히 먼 곳을 쳐다보던 도경이 차마 말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경식을 돌아보았다. 새카맣기만 하던 눈동자가 다시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도경이 말했다.

“경식아, 내일은 다시 산에 가자.”



그날은 도경이 먼저 경식을 찾아왔다. 경식이 잠이 덜 깨 눈을 부비적거리며 무어라 말하려 하자 그는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조용히 시켰다. 평소의 아침보다 어깨도 으슬으슬하고 시야도 어두운 것이 무언가 이상했다. 눈곱을 문질러 떼고 시퍼런 하늘을 보고 나서야 경식은 도경의 손가락을 쳐내며 잔뜩 성이 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 너 이 시간에 사람을 깨워?”

“거 참, 오늘따라 왜 이렇게 떽떽거리냐. 산에 다시 가자고 했잖아. 시간 없다, 어서 가자.”

그렇게 타박하면서도 내심 양심이 찔렸는지 도경은 날카롭게 내리꽂히는 경식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그런 도경에게 짜증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가 이러는 데는 필히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경식은 생각했다. 그는 도경에 한해 관대해지는 면이 있었다. 경식은 헐렁한 겉옷을 대충 둘러입으며 고무신을 구겨신었다.

“조심해서 올라와. 이슬 때문인지 축축하다.”

도경은 거침없이 산을 올랐다. 곧 겨울로 접어들 모양인지 아침의 산은 평소보다 훨씬 쌀쌀했다. 경식이 겉옷을 싸매며 앞서 걸어가는 도경을 불렀다.

“야, 우리 왜 가는 거야?”

잔가지들을 헤치며 위로 올라가는 뒷모습은 숨만 헐떡거릴 뿐 대답이 없었다. 잠이 덜 깨서인지 도경의 달라진 모습이 와닿아서인지 그날따라 자꾸만 약이 올랐다. 경식은 도경을 잡아채기 위해 박차고 달려가려다 흙에 박힌 나무뿌리를 차마 보지 못하고 크게 휘청거렸다. 도경은 그제서야 되돌아와 손을 내밀었다. 경식은 그 손을 맞잡는 대신 옆에 있는 나무 기둥을 짚어 균형을 잡았다.

“사람을 꼭두새벽에 깨워서 산을 탈 거면 가는 이유라도 알려 줘야 할 거 아냐.”

도경이 미안해하는 얼굴로 웃었다. 그 모습에 경식의 마음은 또 금방 풀렸다.

“보는 게 빠를 것 같았어. 거의 다 왔다. 어서 가자.”

둘은 다시 산을 올랐다. 산의 정상에 다다르자 도경이 잠시 멈추라는 의미로 손을 들었다. 그는 발소리를 죽이고 누군가 있는지 살피듯 나무 기둥 뒤에 붙어 좌우를 휘휘 둘러보았다. 인기척은커녕 산짐승이나 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도경은 몇 번이나 더 둘러보며 확인한 다음 경식에게 올라와도 괜찮다고 손짓했다. 그를 따라 조심스럽게 올라간 경식의 눈앞에 언제나 한결같았던 풍경이 펼쳐졌다. 커다란 정상 바위, 바위 옆을 지키고 있는 구부러진 은행나무, 도경의 뒷모습…….

“이거 봐라, 경식아.”

도경이 가리킨 곳은 정상 바위 밑의 흙바닥이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찌푸리고 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을씨년스럽게 박혀 있는 커다란 대못이 하나 보였다. 그 대못은 아주 컸으나 바위의 그늘에 가린 부분에 교묘히 박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웠다. 정상 바위의 밑에 난데없이 푹 꽂혀 있는 모습이 산을 칼로 찌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신보다 한참 작은 대못에 불과한데도 그 대못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어제 온 놈들이 꽂아 놓고 간 게 틀림없어.”

도경이 발끝으로 대못을 툭툭 치며 말했다. 경식은 누가 볼까 걱정되어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아 제지했다. 도경은 분해 보였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경식은 그가 주먹에 말아쥔 것이 무엇인지 보려고 했으나 도경은 손을 뒤로 숨기며 안에 든 것을 보여 주지 않았다.

“너 오늘따라 왜 이래?”

참다못한 경식이 바락 짜증을 내자 도경은 답지않게 강아지가 주인 눈치를 보듯 곁눈질을 했다. 어디 말이나 해 보라는 의미로 가만히 쳐다보자 가까이 오라 손짓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주먹을 폈다. 경식은 그가 필사적으로 숨기던 것의 정체를 보고 얼이 빠져 툭 뱉었다.

“이빨……?”

“얌마, 누가 사람 이를 이빨이라 하냐?”

“어서 뭔지나 설명해.”

도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맛을 쩝 다셨다. 그는 발끝으로 대못이 박힌 곳 바로 앞의 흙을 벅벅 파더니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경식도 마지못해 함께 앉자 그는 씨익 웃더니 손에 쥔 새하얀 이를 작은 구멍 안에 쏙 넣었다. 얼핏 보니 어금니처럼 컸다. 손바닥으로 흙을 모아 덮고 그 위에 다시 바스라진 나뭇잎을 올리는 정성을 경식은 지켜보기만 했다.

“저놈들이 우리 산에 대못을 박았는데 어찌 가만 있어? 사람 뼈는 아주 오래 남는다더라. 여기 묻어두면 오래오래 남아서 저 대못을 물리치고 이 산을 지켜줄 거야.”

경식은 도경의 이가 파묻힌 자리와 그 바로 뒤에 우뚝 선 흉물스러운 대못을 번갈아 보았다.

“이러려고 까치한테 안 던져 준 거야?”

“처음 빠진 이는 아버지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

도경은 흙을 덮어 불룩해진 땅을 손바닥으로 탁탁 누르듯 쳤다. 군대 해산에 대한 소문이 돌던 무렵 도경의 어머니는 도경의 손을 잡고 경성으로 향했다. 경식의 어머니가 위험하다고, 소식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려 보았지만 도경의 어머니는 단호했다. 일주일 뒤 수원으로 돌아온 도경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경식은 그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얼굴도 표정도 말투도 변한 것 하나 없는데, 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되었지.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아.”

도경이 말했다.

“왜?”

경식은 툭 뱉어 놓고 뜸을 들인 뒤 물어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언제나 시원스러운 도경이 모호하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지킬 게 경성에 남았으니까.”

그렇게 천천히 말하는 도경에게서 경식은 다시 한 번 친구의 변화를 깊숙히 느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 안에 단단한 심지가 생겨난 사람.

그러나 그날 이후에도 그는 도경이 아버지 이야기를 담담히 꺼낼 때면 어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불안해졌다. 도경은 그가 원하는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친구였다. 여유, 용기, 발을 잘 쓰는 것, 꼿꼿한 자세……. 경식은 그 사실을 시샘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경이 그렇게 따르고 우러러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삶에서 어렵게 찾은 이정표가 무너지지 않기를 원했다. 따라갈 수 있는 존재를 원했다.

그러나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결국 도경 또한 자신의 옆집에 사는 또래 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마는 것이었다. 신나게 뛰어놀다가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샐쭉해진 표정으로 잠시 망설이다 집으로 달려가는 그런 아이. 친구이니 이 모든 건 당연한 일일 텐데 왜 새삼스러워졌을까. 처음 만난 날 맞잡았던 손이 지나치게 든든했던 탓이다. 그리 생각하며 경식은 도경의 등을 손바닥으로 턱턱 두드렸다. 도경이 흙 묻은 손등으로 코를 문지르며 씨익 웃었다.

“경식아.”

“응.”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다.”

무엇이? 네 이를 묻은 것? 아니면 네 이를 간직한 것?

“그래, 그러자.”

“경식아.”

도경아.

“듣고 있어.”

“너 왜 오늘따라 착하니?”

“.......”


유난히 그리운 그 아침.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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