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구름 Feb 06. 2022

애도가 필요해

영화 윤희에게




그냥 같이 있어, 꿈속에서...



이 영화는 윤희와 쥰이 어떤 사랑의 말을 나누었고, 어떤 험난한 과정을 겪었는지에 대해 집중하지 않는다. 적당한 여백을 두고 현재 이들이 경험하는 사랑과 그리움,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거의 벽에 자신을 놓아 둔 윤희



원치 않았지만, 원하기도 했던, 이별이라는 선택. 화석처럼 굳어버린 윤희는 거의 ‘살아있는 식물인간’이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대충 동여매어 어딘가에 적당히 던져둔 채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니, 타인의 존재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남편과 새봄은 깨지지 않는 벽 너머의 윤희를 바라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느껴왔을 것이다.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워 떠나버린 아빠와는 달리 윤희 곁에 남은 딸. 새봄은 문득 ‘엄마 윤희’가 아니라 ‘인간 윤희’가 궁금해진다. 아빠를 만나기 전 연애는 했는지, 아빠는 이미 새로운 애인이 생겼는데 엄마 는 연애를 안하는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말을 걸지만, 윤희는 그런 새봄에게 자신을 보여줄 리 없다.     



윤희에게.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너는 나를 잊었을 수도 있겠지. 벌써 20년이 지났으니까. 갑자기 너한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 봐.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쥰의 존재를 알아가는 새봄

  


그러던 어느 날, 새봄은 엄마에게 도착한 편지를 몰래 뜯어보며 엄마에게 매우 중요했던 어떤 순간들에 대해 눈치채게 되고, 결국 이를 다시 마주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재회하게 된 윤희와 쥰


지난 시간들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버텨온 윤희는 20년이란 시간을 ‘살았다’ 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흘려보내버렸다’ 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아픈 시간들로부터 멀리 도망치려 하였으나, 결국 그 아픔에 갇혀버렸던 윤희. 마비된 내면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그 아픔으로 깊게 들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마침내 윤희는 쥰에 대한, 쥰과 보냈던 날들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갖게 된 이후 비로소 생에 가장 충만했던 순간들을 진정으로 되찾게 된다. 아름다운 것만 사진으로 찍는다던 새봄은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순간,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긴장하는 순간들을 기쁘게 담아둔다. ‘살아있는 식물인간’이었던 윤희가 생생하게 다시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새 살이 돋아나기 시작한 윤희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새봄의 카메라가 더욱 바빠졌으면 좋겠다.



애도가 끝났다는 것은 슬픔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애도의 과정을 마친 우리는 이제 슬픔 속에서 다만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자기 돌봄, 타라 브랙 발췌

 


윤희에게(Moonlit Winter, 2019) / 영화 / 한국 / 임대형


매거진의 이전글 폴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