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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Feb 12. 2022

너라는 보물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삶이 명확히 흑백으로만 나눠진다면, 히어로 영화에서처럼 명백한 선악이 있다면, 우리의 기대처럼 히어로가 승리를 거머쥐고야 마는 결말이 있다면, 사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편안해질까?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이해할 수 없으면서,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기도 한, 모든 존재를 안아주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다.     



누구나 가진 ‘어찌할 수 없는 자기 앞의 현실’이 있다. 그 안에서 살아가자니 버겁고, 마구 박차고 나가기도 어렵다. 저마다의 욕구와 감정, 상황의 틈바구니에서 서로를 상처 주며 살게 된다. 의도하지 않으나 서로에게 조금씩 가해자이고 피해자가 된다.



자매들의 아버지는 다정하지만 약한 것을 외면할 수 없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어머니는 이를 견딜 수 없어 아이들을 버리고 나갔다. 첫째는 일찍 어른이 되어 자신이 받고 싶은 돌봄을 동생들에게 주었고, 심지어 타인을 돌보는 직업을 가졌으며, 유부남과 사랑을 한다. 둘째는 이상하게도 자신에게 해를 주는 상대임에도 사랑을 이어나간다. 셋째는 부모에 대해 거의 모르고 살며, 천진하지만 어쩐지 외로워 보인다. 조금씩 어딘가 부서진 채로 살아간다.     



이복동생인 막내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상황 속에서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얼어 있다. 아이는 태어나기로 선택한 적 없다. 그렇다고 있어야 할 곳도 마땅히 선택할 수 없다. 자신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부조리한 상황. 잘못한 것 없이 잘못한 아이는 마음의 집이 텅 비어있다. 자신이 거부당하지 않는 선을 지키며 살아나가는 것, 아이는 그걸 본능적으로 정확히 감지하고 있다. ‘괜찮은 척’ 하는 생존기술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간다.      



첫째는 이런 아이의 상태를 단박에 알아차리며, 함께 살아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아마도 막내에게서 첫째는 어린 날 버려진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크기를 재어볼 수 있다면, 첫째가 가장 아팠을 터.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로 인해 고스란히 짊어졌던 무거운 짐. 오래된 집을 지키려는 것도, 굳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막내를 모른 척할 수 없었던 것도, 그간 혼자 부모 역할을 하며 이겨내야 했던 첫째의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부모와 달리 나는 책임지며 살겠노라고, 반드시 그걸 해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막내와 함께 지내며 세 자매는 아버지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나눈다. 나에겐 그렇지 않았는데 너에겐 그랬구나. 난 낚시를 좋아했는데, 아버지도 그랬구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정함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를 바로 세울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또한, 각자가 가진 어머니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서걱거리는 상처가 조금은 달래지는 것도 같다. 이렇든 저렇든 부모를 일찍 잃었다는 것,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는 것은 동일하므로, 묘한 동질감과 연대감으로 서로를 어루만진다.     



잠든 막내의 모습을 보는 언니들 "여기에 점이 있네, 속눈썹이 기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내는 여전히 이 집에 있어도 되는 것인지, 언니들을 상처 주는 것은 아닌지 염려한다. 이런 아이의 마음을 간파하기라도 한 듯, 그간 언니들 곁에서 묵묵히 있어준 이웃 아주머니가 중요한 말을 전달한다.



아줌마는 너희 어머니 아버지가 부럽다.
너 같은 보물을, 이 세상에 남겼잖니.


세 자매들 곁에 있었던 어른, 막내에게도 손을 내민다



‘부모가 너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너 스스로 널 어떻게 여기는지는 잘 몰라도, 그런 것 상관없이 난 그냥 너의 존재가 참 아름다워’라는 말처럼 들린다. 함부로 어림잡아 말하지 않고, 억지로 위로하려 하지도 않는 존중이 담긴 말. 삶과 죽음의 언저리,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주머니의 눈빛은 진심의 무게를 더욱 깊게 만든다. 아이는 존재만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삶이었으므로, 단 한 번도 떠올린 적 없었을 것이다.      




네 자매는 물론이고 등장인물 모두에게, 세상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누군가를 통해 이 세상에 오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나를 ‘어찌 대했는지와 상관없이 나는 참 중요한 존재’라는 긍정. 아주머니의 말을 상기하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조금은 더 따뜻한 곳으로 느껴지리라.     





아마도 그 언젠가, 각자의 상황과 현실이 끼어들어 이들이 함께 지내는 것을 방해하겠지만, 그래도 안심이 된다. 같은 곳에 있지 않더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느끼며 살아갈 것을 선택할 것이므로.



여기가 네 집이야. 언제까지나.
응, 여기 있고 싶어. 언제까지나.




바닷마을 다이어리(Our Little Sister, 2015) / 영화 / 일본 / Hirokazu Kore-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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