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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Feb 27. 2022

제가 너무 작은 것 같아서 두려워요

영화 키리쿠와 마녀




엄마에게 자신을 그만 꺼내 달라고 요청하는 특별한 아이. 엄마 뱃속에서 스스로 걸어 나온 키리쿠는 엄마를 통과하여 세상에 온 존재다. 그런데 막상 태어나서 마을을 살펴보니, 모든 것이 암울하다. 마녀라는 존재가 모든 샘을 말려버리고, 남자들을 먹어버렸단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은 아이들에게 마녀와 싸우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심지어 마녀에 대항하여 싸우러 가는 키리쿠의 삼촌조차도 “나도 죽겠지?” 라며 체념한다. 무력감이 가득한 마을의 무겁고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키리쿠는 생각한다. 마녀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마녀는 왜 마녀일까? 그러나 이에 대해 답을 주는 이는 없다. 모르는 것이 없다며 자부하는 어르신조차도 마녀는 마녀니까 나쁜 것이니, 귀찮게 굴지 말라며 차단한다.


     

키리쿠는 쉽게 순응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 안에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질문에 대답해줄 할아버지를 찾아가기로 한다. 키리쿠는 흔히 말하는 영웅 캐릭터이지만, 우리가 아는 영웅과는 다르다. 거미줄이 나오지도 않고 힘이 특별히 강하지도 않다. 달리기는 빠르지만, 갓 태어난 키 작은 아이일 뿐. 대부분 영웅들은 악당을 멋지게 물리치면 끝나건만, 키리쿠는 마녀를 무찌르러 가는 것이라기보다는 마녀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마녀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며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해 나간다.      



길을 잃은 거 같은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할아버지가 계신 곳도 나갈 길도 못 찾겠어.     



새로운 길을 앞에 두고 지쳐버린 키리쿠



언제까지 이렇게 길을 만들며 가야 하나. 처음엔 두렵지만 조금은 재미있는 것도 같았는데. 생각했던 것과 달리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은 험난하고 고되다. 나의 선택이 옳다고 확신하더라도,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이게 옳은 선택이었나 의구심을 품게 되는 우리의 모습과 꼭 닮았다.      



마침내 키리쿠는 여러 어려움을 뚫고 할아버지를 만나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녀는 사람들에게 공격받아 독이 든 가시가 등에 꽂혔고, 가시를 빼면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아픔을 겪을까 봐 늘 아픈 상태임에도 가시를 빼지 못하고 있다고. 결국은 마녀도 더 큰 고통이 두려워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  

    


이제 모든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문제를 해결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어쩐지 키리쿠는 스스로가 너무 작게 느껴지니 자신을 더 크게 만들어주면 안 되느냐고 묻는다. 할아버지는 그런 방법은 모르며, 오히려 키가 작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들을 상기시켜준다.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나 자신이었기에 할 수 있었던 것들이 무엇이 있나 떠올려보게 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친절하게 대해주라고 꼭 안아주는 것만 같다.      



할아버지? 다리 베고 누워도 될까요? 때로는 아무 도움 없이 혼자 싸우기가 너무 힘들어요.
제가 너무 작은 것 같아서 두려워요.      



키리쿠를 꼬옥 품어주는 할아버지




내가 너무 작은 것만 같은 이 거대한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무섭다고 말할 수 있다면. 모르는 것 투성이인 날들 속에서, 서로의 두려움을 한껏 담아줄 수 있다면. 우리도 키리쿠처럼 조금은 더,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새로 변장한 키리쿠




키리쿠와 마녀(Kirikou et la Sorcière, 2000) / 애니메이션 /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 Michel Oce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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