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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Mar 06. 2022

우린 할머니가 같아

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




단순히 삼촌 집에서 며칠 놀고 오는 거라면 마냥 신나기만 할 텐데. 엄마랑 아빠도 없이 친척 집에서 아예 살게 되다니. 이 영화는 프리다의 엄마가 사망한 이후, 삼촌네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새로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주변 인물들의 감정과 생각은 아이의 시선이 반영된 화면을 보며 추측만 해볼 뿐이다.      



낯선 시골 동네. 가끔 보긴 했지만, 어쩐지 서먹한 삼촌네 식구들. 그들이 뭐라 한 적도, 소외시키지도, 못되게 굴지도 않건만, 아이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 이방인처럼 끼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예쁜 새끼!" 하며 아나를 안아주는 삼촌, 요리하는 외숙모
춤을 추는 가족들을 바라보는 프리다



그들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인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아이는 깊은 박탈감을 느끼며 좌절한다. 이 복잡한 마음을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 왜 이렇게 허전하지? 이렇게 쓸쓸함이 밀려올 때는 엄마와 만나고 싶어 진다. ‘엄마가 없어도 있다고 생각하라’는 할머니의 말처럼, 기도문을 외우거나 엄마에게 줄 선물을 두고 온다.      



"엄마에게 드릴 선물이에요. 좋아하실 거예요. 엄마가 오시면 주세요."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삼촌네 가족들에게 계속 심통이 난다. 가려워서 그냥 긁은 것뿐인데,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도울 수 없다는 단호한 외숙모. 할아버지는 늘 신발 끈을 묶어줬는데 외숙모는 스스로 하라며 안 묶어준다. 좀 묶어주면 안 되나? 서럽다. 혼자 있고 싶은데 자꾸 귀찮게 해서 동생을 멀리 두고 왔을 뿐인데, 못된 아이 취급을 받다니. 억울하다. 난 수영을 잘할 수 있다고 자랑했을 뿐인데, 그런 날 따라하다 살짝 미끄러진 동생을 죽이려 하냐고 혼내는 삼촌. 난 그런 거 아닌데, 내 맘도 몰라주고. 모두가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가족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다가도, 설명할 길 없는 오해들이 쌓일 때마다 프리다는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끼며 위축된다. 가족들에게 마음을 내어주면서도 확신할 수 없어 흔들리는 상태이므로, 어른들의 말이 아이에게는 단순히 훈육과 가르침이라기보다는 존재가 거절당해 저 멀리 내팽개쳐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서러웠던 이 아이가 자기 집에 가겠다며 한바탕 난리가 난 이후, 어른들은 프리다가 그간 홀로 외로웠음을 알아채며 진정으로 안아주게 된다. 아이는 사실 의식주의 해결과 행동에 대한 훈육 이전에, 알 수 없는 혼돈 속에서 말없이 토닥여주는 세심한 손길, 따스하게 바라보는 눈빛이 간절히 필요했을 뿐.

      


우리 집으로 가겠다고 나서는 프리다, 그런 아이를 꼭 안아주는 외숙모



존재가 충분히 수용받으니, 그간 꺼내지 못했던 궁금증과 두려움들이 자연스레 쏟아져 나온다. 엄마는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마지막 모습은 어땠는지, 내 이야기는 했는지. 외숙모는 병 같은 것에 걸리지 않고 나와 쭉 함께 살아갈 것인지. 혼란스럽게 뒤범벅되어 이어지던 날들이 지나가고, 아이는 드디어 가족의 틀 안으로 안전하게 안착하게 된다.      



프리다의 모습을 바라보는 가족들



어느샌가 삼촌과 외숙모의 말은 ‘예쁜 우리 새끼’가 아니라 '아이 예쁘다'라는 말로 바뀌어 있다. 아나를 향해 무심코 내뱉은 사랑의 말이 프리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 아니면, 프리다에 대한 애정이 쌓여 저절로 나오게 된 말일까. 침대에서 뛰며 깔깔거리는 아이들, 그만하라고 ‘이놈’을 외치며 몸놀이를 하는 삼촌, 그들을 바라보는 외숙모. 이질감 없이 섞여 있는 일상적인 순간. 프리다는 급작스레 눈물이 터진다. 이제 이곳에 있어도 되겠다는 안도감이었을까. 아니면, 부모는 다르지만 ‘할머니가 같은’ 이들과 이제야 진정으로 연결되었다는 충만함이었을까. 마침내 우는 이 아이의 모습이 서럽게 닿아오지만, 어쩐지 후련해 보인다.



마침내 울음이 터지는 프리다




프리다의 그해 여름(Summer 1993, 2018) / 영화 / 스페인 / Carla S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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