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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Mar 13. 2022

소원과의 관계 맺기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아이들의 환경은 곧 부모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린 아이들의 삶은 대개 부모들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어떤 것을 포기할지, 어디에 조금 더 기대할지 가늠하는 것을 배우며 성장해간다.     



부모님 이혼 후, 6개월. 엄마와 형아가 함께 외갓집으로, 아빠와 동생이 함께 나뉘어 살아가게 되었다.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펼쳐지는 일상에 형아는 열심히 저항하고, 동생은 열심히 적응한다.      





왜 하필 화산 근처에서 사는 거예요? 재가 막 떨어지는데. 정말 이해가 안 돼요.
분화는 산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지. 가끔 에너지를 발산해야지.
너무 넘치잖아요.
그래도 말이야. 빌딩이 많이 늘었잖니.      



형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사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화산과 흩날리는 재에 대한 반응은 곧 아이의 마음 날씨이면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사실은 화산 근처에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화산이 들끓고 재가 날려 혼란스러운 것이다. 정말이지, 지금 가족의 모습을 절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동생은 내 말에 시큰둥하고, 엄마는 어느새 직장을 구해버렸는데, 설마 아빠까지 애인이 생긴 건 아니겠지?      



동생은 시종일관 밝게 지내보려 노력한다. 엄마 아빠의 싸움을 더 이상 보지 않아 좋지만, 엄마가 보고 싶긴 하다. 근데 혹시 아빠 닮은 나를 엄마가 미워하면 어쩌나? 그렇다면 엄마가 좋아하는 콩을 심어서 나중에 보내줘야겠다. 어차피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 괜찮겠지. 예전에 비해 수영 레벨도 높아졌고, 못 먹던 양배추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웃는 아이의 모습은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일상을 잘 꾸려나가고자 하는 안간힘을 보여준다.      



아빠 닮은 자신을 안 좋아할거라 염려한 아이
"재밌게 지내고 있는 척 하고 있지만, 엄마 아빠가 헤어져서 여러 가지 걸 참고 있는 거야. 아빠도 견뎌야 할 때는 견디도록 해"


소원을 빌기 위해 형아와 동생의 친구들이 모인 자리. 아이들은 다 함께 저마다의 소원을 원 없이 내질러본다. 그중 어떤 것은 너무 사소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이미 결말을 알면서도 빌어보고, 어떤 것은 몇 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지만, 뭐 어떤가? 결과가 무엇이든 그래도 한 번 빌어볼 수는 있지 않겠는가.



소원에는 죄가 없다. 그저 나의 소원이 어떤 것인지, 실현 가능하다면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영 안 되는 것이라면 이로 인한 좌절을 어떻게 소화시킬지, 그래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기로 결정할지를 살펴보면 되는 것일테니. 아이들의 여행은 소원과 나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고민해보는 시간이었으리라.      



소원을 말해보는 시간 이후, 다시 교차로에 선 아이들


여전히 화산과 흩날리는 재들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지만, 이것을 받아들이는 아이의 마음과 태도가 달라진 것 같다. 반복해서 닦아내다 보면, 지겨운 화산재로부터 해방되길 바라는 심정이 다시 부글거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화산을 껴안고 살아가 보기로 선택한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아이들의 용기가 더없이 아름답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가늠해보는 화산재 척도에 완벽 적응한 아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I Wish, 2011) / 영화 / 일본 / Hirokazu Kore-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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