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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May 01. 2022

행복은 작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것

영화 환상의 마로나




마로나는 ‘사랑과 뼈다귀 앞에서는 어떤 종이든 평등하다.’는 철학을 가진 잡종 엄마와 혈통 있는 아빠의 ‘눈먼 사랑’으로 태어났다. 인간의 유기로 인해 아홉, 아나, 사라, 마로나라는 이름으로 굴곡진 삶을 살게 된다.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인간 마놀, 다정하지만 연약한 인간 이스트밴, 늘 지쳐있는 싱글맘과 식구들. 그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마로나는 사랑, 따뜻함, 환희, 두려움, 슬픔, 행복을 경험한다.      



마놀, 이스트밴, 솔라주 가족들



마놀에게 아나는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버린 개로 기억될 것이고, 이스트밴에게 사라는 사랑해서 함께하고 싶어도 어찌할 수 없었던 씁쓸한 기억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이 개의 기억은 어떨까? 같은 공간에서 수많은 날들을 공유하며 지내왔음에도 서로의 마음을 모두 알 수가 없다.      




내 인간의 따뜻함, 마놀과 함께한 추억에서 잠드는 아나



매일 마지막인 것처럼 내 인간의 얼굴을 핥을 것, 언젠가 정말 마지막이 될 것이므로. 그에게 슬픈 냄새가 나는 건 싫었다. 그곳을 나왔다. 인간이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행복할 수 있도록.      



이스트밴과의 마지막 공놀이



그가 이별에 잘 대처하기를 바랄 뿐. 혼자 공놀이를 할 수 있을까? 그 생각만 했다. 공을 갖다 줄 사람이 없을 텐데.      



어떤 분이 생일을 맞은 누군가에게 ‘영원히 사랑한다’고 남긴 글을 본 적이 있다. 과거에는 ‘영원히’라는 말이 있을 수 없다고, 알 수 없는 미래가 펼쳐지는데 어찌 그 말을 함부로 쓰겠느냐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은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쓸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삶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있고, 순간순간을 그저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일 텐데.      



그러니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이 미래의 내 마음에 대한 어떤 맹세나 약속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충실한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마음의 감각이 어느 순간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랑했던 시간들은 필연적으로 각자에게 달리 기억되는 것이므로, 위안을 주고받았던 것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리라.      



아나이고 사라이자 마로나인 이 개는 자신의 행복이 인간들의 행복과 같으면서도 다르지만, 그 순간들이 충만하였으므로 괜찮다고, 내 인간들을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해줄 것만 같다.       

 


행복은 작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것. 우유 한 접시, 실컷 축인 혀, 낮잠, 뼈다귀 묻을 곳. 행복은 작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것, 손, 미소, 목소리, 마음.





환상의 마로나(Marona's Fantastic Tale, 2020) / 영화 / 루마니아, 프랑스, 벨기에 / Anca Dam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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