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구름 Jun 06. 2022

당연하지 않은 당연함으로

조금 더 가까이



시골에 편지가 도착했다는 우체국 알림이 왔다. 예고 없이 도착한 편지를 할아버지는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괜스레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동태를 살핀다. 할머니 통신에 의하면, 이런 걸 다 보냈냐며 할아버지가 무척 반가워했다고 하는데. 과연 할아버지가 답장을 쓰는 것에 응하실지, 예민해진 일상에 편지가 조금이나마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할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주일 뒤 우리가 시골에 놀러 갈 것이라는 소식을 접해 따로 답을 하지 않으셨다는 것. 그리고는 미안하다고 하신다. 미안하다니. 이런 말을 들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데. 나의 원대한 ‘심리적 돌봄 계획’은 이렇게 싱겁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사실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의 삶이 어찌 흘러왔는지,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손녀가 뜬금없이 쥐어드린 숙제 같은 편지라니.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이 맛있다고 여기는 불량식품을 어른의 선호와 무관하게 선물하는 것과 비슷하려나.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드리고 싶었지만, 실은 자주 찾아뵙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적 한계가 있기에 편지라는 수단을 선택하게 된 것이 내심 씁쓸하기도 했던 터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주파수가 잘 맞진 않았더라도 그 마음만큼은 충분히 전해졌을 것이리라.     



“만나서 재미있게 놀자!”     



어차피 일주일 후에 만날 것이니 일부러 답장은 주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왜 미안해하시냐고 뭐가 미안 하냐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할아버지는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함께 재미나게 놀자 하신다. 편지라는 수단으로 위안을 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할아버지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빠르고 자연스러운 것이구나.      



이러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오랜만에 엄마와 이모들, 동생, 시집간 사촌동생과 홍서방, 1살 된 조카, 외숙모, 이모부까지 시간 나는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꼬마 시절 함께 계곡 물놀이를 하던 그때 마냥, 다 같이 대규모 나들이를 가게 된 것. 꼬마들은 어느새 커서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덜 큰 아이들인 것처럼 이모와 외숙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그저 하하호호 걱정 없이 따라다니기만 했다. 날씨가 참 좋다는 둥, 꽃이 참 예쁘다는 둥, 저 불상에 시골집 놋그릇들이 한가득 들어간 것이라는 둥, 이 밥은 비싸기만 하고 맛은 영 없다는 둥 시시콜콜한 말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할아버지는 숙면과 함께 변도 편안히 보셨다는 소식이 모두에게 전파되었으며, 우린 서로 다행이라는 눈빛을 공유했다.      



용돈 몇 푼 송금한 후 연례행사처럼 전화를 걸어 우리랑 부모님은 잘 있다는 등의 안부를 전하면, 우야든동 모두 건강하게 지내라는 덕담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전화를 걸어 ‘오늘 밥은 무얼 먹었는지, 할머니만 부처님을 믿는지, 옛날에 우리 엄마에게 왜 그리 엄하셨는지, 꼬마 때 뭐하고 놀았는지’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더 서로에게 즐거운 것이겠구나.      



작년 여름, 외갓집에 갔을 때 할머니는 우리에게 “와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언뜻 들으면 그냥 고마움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그 순간 따끔거리며 아프게 닿아왔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고 좋았다’도 아니고, 암묵적 약속처럼 생일이나 명절 때 보자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을 내어 겨우 와준 이에게, 혹여나 부담 느낄까 싶어 다음은 기약하지 않는 세심한 인사. 우리가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그간의 내 무심함을 적나라하게 직면하는 순간. 나는 할머니에게 가족이 아니라, 그저 손님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바쁘고 힘들었다는 이유 따위는 아주 하찮고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서운함을 토로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아마도 당신들은 이 아이들이 저들도 사는 게 힘겹고 고되어 그러겠거니 했을 테지. 그러니 ‘이제 가면 언제 또 보겠나’ 싶은 마음은 꾹꾹 접어 넣어두고, 다음에 또 보자는 말 대신 와 주어서 고맙다는 말만 전하며 웃었을 것이다.      



우리도 그 언젠가 완전한 보호자로 사는 날이 오고야 말겠지만, 아직은 때가 오지 않았으니 지금을 충분히 누려도 되겠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얼굴을 보는 게 마땅한, 조금 더 당연한 존재가 되어보려 한다. 어릴 때 무슨 맛으로 먹나 했지만 지금은 좋아져 버린 콩국수도 해달라고 졸라 보고, 오래된 앨범을 보며 옛날이야기도 들려달라고 귀찮게 굴며 어른 아이로 마음껏 있어보아야겠다.    

  


할아버지, 할머니.

다음엔 우리 어디 놀러 갈까?




매거진의 이전글 28년 만에 답장을 쓰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