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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Jun 01. 2022

우야든동 건강하게 지내고오

'착하지'라는 마법 같은 말



나는 착하다는 말을 싫어한다. ‘큰 딸은 살림밑천이야, 이 아이는 속을 썩인 적이 한 번도 없어.’ 엄마가 악의 없이 내뱉었던 착하다는 말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지 못하게 했고, 때때로 나 자신을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어른이 되어가며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느라 정작 나의 마음을 돌보지 못하는 경향이 높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같은 모습들은 결국 타인을 가해자로 나를 피해자로 만들고 관계를 해치게 할 뿐임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은 나의 욕구와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감추거나 희생시키지 않겠노라고 다독이며 나를 성장시켜왔다.      



'공부 열심히 하는 착한 어린이가 되고, 성실하게 잘 자라주기를, 동생을 잘 보살피기를,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부처님께 기도한다'는 할머니의 편지를 30여년만에 꺼내 읽어 보았다. ‘할머니, 착하게 산다고 해서 행운이 오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성실하게 산다는 것이 내 마음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 무장해제가 되며 그냥 순순히 들어주고만 싶다.


 

착하다는 것은 뭘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 친절하게 대하는 것? 착하게 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어른들은 그렇게 착하다는 말을 마구 내어놓는 것인지. 엄마와 할머니, 그 외 무수한 어른들에게 성장하면서 들어왔던 ‘착하다’는 말. 그 말이 나를 규정짓고 상자 속에 가두었던 적도 있지만, 할머니가 하는 착하다는 말은 이상하게도 나에게 주는 축복의 말처럼 느껴진다.      



착한 어린이였던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조금 덜 착한 어른인 지금의 내가, 내 방식대로 할머니의 말을 소화시켜본다. 훌륭한 사람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착하게 굴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착한 마음을 보내는 것. 그렇게 나와 세상을 착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할머니는 습관성 인사로, 또 아낌없이 말해줄 테지.     



아이고 이쁘다, 착하다.
우야든동 건강하게 지내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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