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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Dec 11. 2022

흔들려도 되는 편안함으로

호랑이님이 보우하사




2022년의 첫날, 꿈을 꾸었다. 나보다 몇 배나 큰 호랑이가 갑자기 다가와 나를 꽉 안는 것이다. 공포감과 동시에 이상하게 안도감이 스쳤다. 동생은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쇠사슬에 묶인 호랑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꿈을 꾸었다며, 혹시 할머니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 있었다. 내 꿈을 듣더니 그 호랑이도 혹시 친할머니가 아닐까 반 농담을 하며 올해는 잘 풀릴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나누었었다.     



다년간 프리랜서로 일하다 코로나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져 풀타임으로 이직을 했다. 일복은 타고난 것인지, 여러 날을 일개미로 종종거리던 시간들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어렸을 때 교육받았던 성실과 책임감을 무기로 일하니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며 생존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생활의 영역을 가꾸어 나가는 것은 늘 숙제였다. 이 어려운 주제를 풀 수 있길 바라는 심정으로 매일 아침 지하철에 오르며 ‘오늘도 열심히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지 말며, 나의 저녁시간을 남겨두자’는 말을 다짐처럼 중얼거려보곤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줄 아는 것이 나의 장점이라 여겼었는데, 어느 순간 견디는 힘이 늘어난 고무줄처럼 헐거워져 있었다. 사소한 좌절에도 쉬이 바스락거리며 덜컥 겁이 나고 위축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였더라,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싶었더라? 생존의 홍수 속에 매몰되지 않으려 애써왔던 날들을 견디고 겨우 숨통이 트이니, 오히려 맥이 풀리며 나를 돌보는 것이 까마득하게 귀찮아졌다. 아, 나에게도 소진이 온 것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괜찮은 생활을 꾸려가기에 충분치 않았다. 나에게 소홀히 하지 말자 마음먹은 것만으로는 누적된 좌절을 소화시키기 버거웠다. 이건 분명, 단순한 소진의 문제가 아니었다. 더 이상 나의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며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어떤 환경에 나를 두어야 나의 기능과 잠재력을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꼭 맞는 환경을 찾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가?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곰이 ‘지연 착상’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름에 짝짓기를 한 이후, 가을철 영양상태가 좋아지면 동면할 때쯤 착상이 된다나.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인가. 그 어떤 것보다 신비하고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최적의 시기에 생명의 씨앗을 틔우도록 설계되어있다니. 곰아, 넌 정말로 좋겠구나.      



상반기 내내 될 듯 말 듯 이직에 실패했다.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분명 알고는 있지만, 새로운 환경을 찾고자 하는 상황 속에서 반복되는 낙방은 나를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자기 의심의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소화시키고 있던 어느 날, 내가 원했던 환경과 유사한 일터가 거짓말같이 다가왔다. 여러 면에서 내가 바라던 조건이 최적화된 곳이었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동안은 없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이런 자리가 나에게 다가오다니. 그간의 고민과 좌절, 무력감들이 시시해져 버렸다.     



이부자리에 누워 동생과 호랑이 꿈에 대한 수다를 떤다. 혹시, 거짓말처럼 풀리는 이 상황들이 호랑이 조상님의 도움은 아니었을지. 그러나 웬걸, 알고 보니 할머니는 호랑이띠가 아니라 쥐띠였다고 한다. 에이, 뭐야. 너무 싱겁다. 동생이 갑자기 어느 개그맨의 경상도 사투리를 흉내 내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걱정 말그래이, 다 잘 될 거래이.



하하호호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비집고 나온다. 쓰디쓴 맛만 가득한 현실에 조상님 덕이라도 보고 싶었건만.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간절했던 것도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그런 것이라고 믿고 한줄기 위안을 삼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내가 바로 그 호랑이 띠가 아니던가. 내 안에 있던 커다란 내가 작아져 있는 나를 안아준 셈 치기로 하자.      



반려 식물로 들여놓았지만, 구석에 방치해두었던 나의 생선뼈 선인장이 몸소 가르쳐준 것을 되새겨본다. 지난겨울, 성장세가 없어서 혹시 죽은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을 했었는데, 봄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새순이 돋아났다. 아마도 사나운 겨울에 저 나름대로 적응하느라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기다려왔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처럼, 지연 착상을 하는 곰처럼, 너도 역시 그런 것이구나. 무자비하게 흔드는 칼바람 속에서 때를 기다리며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특한 나날들을 보낸 것이다. 역시, 이건 분명 선인장 탓이 아니라, 추운 겨울 탓이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이보다 더 현명히 대처하는 방법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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