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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Nov 21. 2022

일기장 속 댓글 달기

사랑하는 마음을 어디에 놓아볼까




보라색 마스크로 무장한 중년의 여자가 올림픽 체조경기장을 어떻게 가야 하냐고 묻는다. 주변을 살펴보니 공기가 영 심상치 않다. 이 칸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자, 휴대폰 케이스, 스카프, 머리핀, 장갑까지 보라색 물건 하나쯤은 기본으로 걸치고 있다.



서로 처음 만난 사이임이 분명한데, 하하호호 누군가에 대한 사소한 것들을 공유하며 설렘이 그득하다. 아, 어떤 가수의 콘서트를 가는 길인가 보다. 저마다의 사랑이 한데 모여 새로운 우주 속에 연결되어 있는 연대감,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의 소리들이 스며있다.     

 


노을이나 하늘을 바라보듯, 나는 멀찍이 떨어져 풍경을 구경하는 관람객이 되어있다. 무언가를 아끼고 가꾸는 진한 마음이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 어디에 놓아두어야 할지 도무지 잘 모르겠는 요즘. 깊고 넓게 일렁이는 보랏빛 파도가 더없이 아름답고도 서럽게 닿아온다.      



- RE :  과거의 나에게


이때의 나는 모든 것들에 한없이 무관심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내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며 충분히 머물러 있다. 텅 비어있는 느낌, 허무함, 휘청거리는 순간들을 제대로 마주하며 나를 잘 살펴보고 있는 것 같다.    


  

목적 없이 걸어 다니던 오늘, 어느 살림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2년 전 우연히 지났을 때와는 또 달라진 모습. 이 집에 사는 이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건만, 어쩐지 충분히 만난 것만 같은 기분. 메이드 인 코리아 바람개비, 눈코입이 달린 장독대, 캐리비안의 해적이 두고 간 표주박, 알라딘의 요술램프로 재탄생한 세제 통, 연식이 오래된 먼지 묻은 씽씽카 화분걸이, 메기의 추억이라는 노랫말이 카세트테이프에서 들리는 것만 같은 공간.






이곳을 살뜰히 만들어왔을 순간들을 그려보니 다정한 마음이 순식간에 샘솟는다. 공기의 냄새가 말갛게 느껴진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보니 신선한 기쁨이 꿈틀거린다. 무언가를 아끼고 가꾸는마음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나는지는 요즘도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늘 도처에 존재하고 있다.




기꺼이, 약간의 마음을 열어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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