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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Jul 31. 2022

일기장 속 마음챙김

나를 완벽하게 사랑한다는 것


파워 워킹을 한다. 발이 밀리는 느낌, 양말이 닿지 않는 뒤꿈치가 따가운 느낌, 후끈한 온도, 물기 한가득 품어 눅눅한 습도, 바닥의 딱딱함, 다리 위에서 마주하는 비릿한 하천의 냄새, 계단을 오를 때 허벅지의 움찔거림,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땀. 이 순간에 오롯이 있어본다. 움직이는 내 몸으로 들어오는 감각 자극들 속에 나를 놓아둔다.
- 나의 심리적 환기를 위한 마음챙김 연습 시간   



할 수 없거나 나와 무관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단발머리, 치아 교정, 시력 교정, 나만의 공간 꾸미기, 그림 그리기, 꾸준히 글쓰기’와 같은 것들.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닌데. 어느 날부터인가 불쑥 그것들 중 일부가 나에게 다가온다. 언젠가 하리라 굳게 다짐했다거나 염두에 두었던 목표도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어느새 하고 있다.      



나다운 것, 나답게 살자는 것이 강조되는 요즘. 숱한 드라마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나다운 게 뭔데?’라는 대사처럼, 진정 나다운 것은 무엇인지 도무지 어려워 알 수가 없다. 나답다는 것은 무엇이고, 나답지 않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내가 아는 나, 남이 아는 나, 공적인 나, 사적인 나, 10대의 나, 20대의 나, 30대의 나, 어제의 나, 오늘의 나, 앞으로 만나게 될 여러 시공간 속의 나. 하나 둘 따져보면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내 모습들이 얼마나 협소하고 사소한 것들이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내 삶 속에서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것 목록’과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것 목록’을 정리해서 작성해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것 목록이 초라할 정도로 훨씬 작다. 불확실성이라는 것은 통제해야 할 대상이자 막막함과 불안, 두려움을 주는 것이었는데. 때로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 미래에 어떤 것들을 만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나를 살리는 힘이 되기도 했다. 그 거대한 불확실성이 다가오도록 조금 곁을 내어주니, 또 다른 어떤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고 느낀다.              



6월 18일, 그림책 만들기 클래스 첫날. 관심이 가던 것을 시도하는 것이었음에도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새하얀 도화지를 보니 ‘답답하다’ ‘어떻게 하지’ ‘내가 할 수 있을까’와 같은 내면의 목소리들이 올라오며 괜스레 위축이 된다. 내 돈으로 날 위해 해보려고 하는 것인데 이렇게까지 작아지는 마음은 도대체 무엇인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낯선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나의 심적 태도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거나 학창 시절 이후 첫 미술이기에 그럴 수도 있고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 순간이 바로 나에 대한 친절이 필요한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목소리를 깨운다. 내 친구가 나와 같은 상태라면, 무슨 말을 해줄까? ‘관심 있던 것이라도 처음엔 불편함을 줄 수 있지’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도 있어’ ‘처음에만 그렇고 해 보면 또 다를 수도 있지’ ‘아니면 말면 되지’ ‘괜찮아, 뭐 어때’ 등의 말들을 해줄 것이다. 친구에게 친절한 말을 해주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 기꺼이 그 말들을 돌려준다.



난 지금 좀 불편해. 아니, 사실은 내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불편함들이 일어나고 있어. 그 무엇도 부정하지 않고 수용하되, 매몰되기 전에 살짝 빠져나온다. 갑작스런 비를 피해 들어간 지붕 아래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듯이, 그렇게 꿈틀거리는 불편함들을 지켜보며 친절한 말로 잘 흘러가도록 해준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 돌본다는 것은 내 안의 부정적 목소리까지도 판단하지 않고 담아주는 것. 도망가거나 싸우거나 혹은 애써 모른 척하지 않고, 그냥 호기심 어린 관심을 가져주는 것.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세심히 바라보며 친구에게 말하듯 나에게 친절함을 주는 것이라 한다. 그러니 앞으로는 내 안의 모든 것들을 함부로 단정 짓거나 차단하지 않고, 나를 더 ‘완벽하게’ 사랑해보리라.     



그 무엇도 부정하지 마라. (중략) 우리는 스스로를 비난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랑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바로 주의(관심)다. (중략) ‘완벽하다’는 ‘제대로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완벽하다’는 것은 ‘무조건적인’이라는 의미다.
- 자기 돌봄, 타라 브랙 발췌



*이 글은 서적 <자기 돌봄>의 개념적 내용을 바탕으로, 마음챙김&자기돌봄을 연습하고 적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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