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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Mar 26. 2024

장기 기증자 기사를 보는 마음

고사목과 장기 기증자의 상관관계




겨울과 가을, 같은 나무의 다른 모습



옆집 나무들이 계절의 옷을 몇 번이고 갈아입어도, 어떤 나무는 늘 한결같다. 죽은 채 서 있는 기분이란 무엇일까. 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그냥 언제까지나 이대로 함께 섞여 있고 싶을까. <나무의 죽음> 저자는 생명 활동이 끝나 죽은 채 서 있는 나무(고사목)에 대해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언뜻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보이지만, 우뚝 솟아 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보면 또 나름 어울리는 것도 같다.    


  

고사목을 보고 있자면, 장기 기증자의 기사들이 떠오른다. 갑작스레 맞이한 죽음에 너무도 황망하지만 그이는 평소 사람들을 배려하고 친절한 성격이었으니, 장기 기증 역시 선선히 응했을 것이라는 내용. 평소 즐기던 취미는 무엇인지, 가정을 꾸렸는지, 자녀가 몇 살인지, 어떤 일을 하며 지냈는지도 상세히 알려준다. 기사의 말미에는 고인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해사한 사진 몇 장이 이어진다. 남은 이들이 이 좁은 지면에 겨우 눌러 담았을, 고맙고도 미안한 사랑의 마음이 묻어난다. 그러면 나는 드르륵 내리던 마우스 스크롤을 멈추고, 그이의 미소에 잠시 머물며 생각한다. 잘은 모르지만, 귀여운 사람이었네요. 반가웠어요.     



그간 만나왔던 바람과 햇살에 안녕을 고한다. 남아있는 양분을 닥닥 긁어주며 ‘죽음 이후의 삶’을 통과하는 나무처럼, 말갛게 웃는 낯선 얼굴들도 누군가의 심장이나 눈으로 이 세상과 관계를 맺으며 천천히 스러져가리라.    



오후 5시. 마지막 볕의 기운을 한가득 등에 얹고 그림자를 만들며 느릿느릿 걸어간다. 놀이터의 아이들이 공을 차며 웃는 소리, 바퀴벌레 때문에 걱정이라는 엄마들의 수다 소리, 노래학원에서 개최한 ‘어르신 노래자랑 대회’의 구성진 트로트 가락이 쿵쾅거리며 울린다. 농도가 더욱 옅어진 볕이 마침내 땅으로 떨어진다. 남아있는 온기로 이 사소하기 그지없는 세상을 한껏 감싸 안는다.




하루가 무심하게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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