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언니와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녀는 어떠한 긍정의 말도 부정으로 받아치는데 선수였다. 크고 작은 상처를 잔뜩 껴안고 끙끙 아파하는 일이 많았다. 스스로를 지독히 혐오한다 말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자기비난은 자신을 열렬하게 사랑한다는 말로도 들렸다.
늘 무언가를 희망하고, 아끼고, 꿈꾸는 그 마음이. 그것들을 이야기하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그 순간이. 자신의 생각을 또렷이 표현하는 그 태도가. 비록 그녀가 그 온도를 체감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내겐 활활 타오르는 생명의 불길을 목격하고 있는 듯 아름답기만 했다.
그녀는 좌절을 견딜 수 없을까 봐 두려워 한참 동안 외부의 탓을 했었노라고 고백했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에 수많은 가시들을 심고 한껏 부풀린 채로 지냈는지도 모른다. 비록 두려움과 친하게 지내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여린 속살을 보호하는 것에는 성공하였으므로 그때 그녀에겐 꼭 필요했던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그녀는 내가 등대처럼 자신을 비추어주었다 말하지만, 나를 밝혀준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면하기 싫은 과거의 나를 끝끝내 버릴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각자의 부끄러움을 안고 깊이 연결되었던 순간들이 있어서다. 그러니 어제 보았던 서로의 하찮음은 너그러이 보내주고, 오늘의 내 모습도 그러려니 놓아주는 것으로 하자.
충분히 울지 못한 상처들이 비로소 그녀 안에서 화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에는 여린 속살이 잘 버틸 수 있도록 가시 대신 친절한 말을 넉넉히 담아주기를. 한 발자국 앞으로 두 발자국 뒤로 가며 흔들리는 보잘것없는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