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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Jul 11. 2021

5색 색연필로 내 감정 분석하는 방법

+ 들쑥날쑥한 내 감정과 친해지는 것은 덤


Photo by Tim Marshall on Unsplash


하루에도 수백 번씩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라는데?



라고 하지만 어릴 적의 나는 스스로를 조금 심하다 생각했다.

짧은 사이 오르내리는 감정의 파도가 큰 편으로

가끔은 가까운 사람들도 내게 지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수요일엔 뭐든 할 수 있을 것 들떠 있다가

목요일부턴 땅굴 파고 들어가 몇 달씩 처져 있는.

풍파를 겪으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아지기는 했어도

언제 몰아칠지 모를 소용돌이를 간직한 채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Photo by Hybrid on Unsplash


그러던  전쯤, 발랄하고 유쾌한 감성의 지인 인스타그램에 재미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일주일 간 요일별로 감정을 기록할 수 있는 표가 그려진 그림이었고

나도 해보고 싶단 생각에 안 쓰는 노트를 찾아 따라 해 보았다.


별생각 없이 시작했기에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지만

매일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의 의미를 인지하게 됐고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2020년의 시작, 올해는 내 마음을
제대로 알아보고 싶어 졌다.


회사 일. 주변과의 관계. 개인적인 고민들과 각종 상념 속에서

진폭과 빈도수는 확연히 줄었지만 내 감정은 여전히 들쑥날쑥했고 나는 그때마다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확인해 보자.


한 해가 시작되던 첫날, 먼슬리(Monthly)로만 구성된 다이어리를 구입하고

집에 있던 15색 색연필 중 다섯 가지를 골라 가장 손이 잘 닿는 연필꽂이에 꽂아두었다.


아직도 쓰고 있는 색연필

 

파랑 : 오늘은 정말이지 최고의 날이야!

하늘 : 신나고 기분 좋은 하루였어!

연두 : 그럭저럭 별일 없이 지나갔네.

황토 : 심란하고 울적한 날이야.

빨강 : 다시는 오늘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


다섯 개의 감정으로 세분화하여 나만의 감정 범주를 만들었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오늘 날짜에 색을 칠하며 감정 기록 시작했다.


6월 10일과 17일은 감정이 수정된 날


복잡다단한 하루의 감정을 하나로 결정하는 것이 어려워 망설일 때도 있었다.

색을 칠한 뒤 '아냐, 오늘은 이 색이야' 하고 다른 색을 덮어 무슨 감정이었는지 알기 어려운 날도 있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속에 오늘 하루 내 감정을 나름대로 평균 내어 색을 칠하게 되었고

기분 속에 매몰되어있기만 했던 내가 어느 정도 감정을 객관화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정성적 분석 | Qualitative Analysis


단순히 색만 칠한 지 두어 달이 되어갈 무렵.

보통(연두색)이 아닌 비교적 확실한 감정은 이유를 간단히 적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면 왜 좋았는지, 한없이 우울한 날이라면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 지를 함께 적은 것이다.



시간이 지나 감정별로 키워드를 묶어보니 나의 기분이 패턴화 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기분이 좋고, 반대로 어떤 일이 있을 때 기분이 나빠지는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매달 키워드는 비슷하게 반복됐고 나중엔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가 드러날 정도가 되었다.


이 달의 Best & Worst Day , 나를 기쁘게 하는 키워드 분석



정량적 분석 | Quantitative Analysis


한 달을 다 채우면 수고했다는 의미로 각 기분의 숫자를 결산했다.

비교 수치가 생기는 둘째 달부터는 전월 대비 감정의 개수 변화를 재미로 카운트해 보기도 했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수치화한 것이기 때문에 추이는 여전히 들쑥날쑥했지만

그 달의 나의 상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달은 힘든 일이 많았네, 이번 달은 지난달 대비 진짜 좋았던 기억이 많았네.

이렇게 나의 일주일, 한 달, 길게는 1년을 반추하고 정의해 볼 수도 있다.




일 년을 꽉 채워 실천하고 얻은 결론들


365일 빠짐없이 색을 칠하고 다이어리를 덮었을 때.

그때는 아직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매일 하던 감정 체크가 루틴이 되어 단지 작은 소일거리가 끝난 느낌..?


하지만 반년 정도가 지나 오늘의 글을 준비하고

지난 다이어리를 열어보며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가장 큰 수확으로 좌절감을 극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감정이 계속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인하니

'지금은 내리락이니 곧 오르락이 찾아오겠지' 하고 조급해하지 않게 되었다.

바닥처럼 느껴지는 그 기분을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는 내가 된 것이다.


감정의 진폭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불안도 더 이상 막연한 불안이 아니게 되었다.

어린 시절,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받아들이세요,라고 주구장창 말하던

혜민스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종종 폭주했던 나는

수년이 지나서야 그 말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Photo by Almos Bechtold on Unsplash


무엇보다 기쁜 일을 더 감사히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기쁜 날(파란색)은 작년 기준 단 7일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찐 텐션을 자랑했던 찐 파랑의 날의 나는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자.


오래간만에 엄마와 하루를 보내며 효도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운전을 배우며 처음으로 긍정적인 경험을 했을 때
회사 사람들과 정말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을 때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친구들과 폭풍 수다를 떨었을 때
남자 친구와 소소하지만 충만한 데이트를 했을 때


대단하고 화려했던 이벤트는 하나도 없었다.

내가 성장하고 있다고 느낄 때, 소중한 사람들과 충실한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오롯이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소중한 순간을 쌓아간다면

찐 파랑의 날들 역시 내 의지로 충분히 만들어 갈 수 있생각한다.


Photo by Paico Oficial on Unsplash


나는 올해도 같은 방법으로 감정을 체크하고 있는데,

 달 씩만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을 1년으로 확장하여 더 넓은 시각으로 감정을 바라보고 있다.

주차별 감정 패턴이 선명하게 보이고 분기별로 감정을 체크할 수도 있어 나름 업그레이드된 방법이다.


체크하다 보면 황토색과 하늘색이 점차 줄어들고 연두색인 보통날이 많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 기분이 회색분자처럼 평준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감정에 너무 이유를 붙이는 것은 아닐까? 싶기지만

이 방법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은 확실하기에 지속해 보기로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지금 혹시 바닥의 상태라면

바닥의 무드(mood)를 느끼고 그 바닥의 바이브(vibe)를 기록할 준비를 해보자.

기록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박차고 오를 힘이 분명히 생길 거니까!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글쓰기 모임

'쓰담'과 함께하는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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