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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Aug 22. 2021

옷을 만들어 입는 꿈, 꿔본 적 있나요?

옷의 마지막 정류장이 아닌 시작점을 가다

"아쉽지만, 수강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3년 전 이맘때 여름, 명동에 위치했던 의류 제작 아카데미 건물 3층.

한 달을 겨우 버틴 나는 수강포기를 신청하고 허무하게 걸어 나왔다.

'빠른 포기'.. 내 사전에서 찾기 힘든 단어지만 매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내 손까지 잡아먹을 듯한 매서운 기세의 공업용 미싱(재봉틀).

어떻게든 따라가려 열심히 질문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걱정스러운 눈빛과 한숨소리.

곡면으로 휘어있는 난생처음 본 모양의 자를 아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 세계는 아직 내가 적응할 수 없는 세상이구나, 하는 박탈감을 느꼈다.



그 열정을 고이 접어둔 지 2년이 지난 작년 가을 무렵.

미싱 클래스를 등록해 이것저것 만들었다는 친구의 말에, 명동에서 느꼈던 공포감도 떠올랐지만

역시나 '내 옷을 만들어 입고 싶어'라는 열망이 더 크게 불타올랐다. (역시 사람은 고쳐서 못쓰는 듯)




짧고 굵게 실패한 경험에서 배우다

옷을 만들기 위해선? 재봉틀을 다룰 줄 아는 것이 우선. 대단한 것을 만들겠다는 욕심은 잠깐 접어두었다.

미싱 왕초보 과정을 등록했고 에코백, 주방장갑, 파우치, 쿠션 커버 등 한 손에 잡히는 소품부터 만들었다.

다행히 재봉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가정용 재봉틀은 나를 아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삽질과 헛짓거리는 요령을 만든다

수전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제멋대로 삐뚤빼뚤 달려버린 지퍼는 볼 때마다 열기가 싫다.

아는 척하다가 기껏 박아놓은 실을 주르륵 뜯어 다시 박아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노루발(바늘이 오르내릴 때 원단을 눌러주는 부속품)을 반대로 끼워 바늘이 챙! 하고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시행착오 속에서 프릴을 만들 수 있었고, 인형을 완성했으며, 이거 파는 거예요?라는 기쁜 피드백도 들으며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울렁이는 지퍼를 보니 속이 울렁거리네요


이틀에 한 번 꼴로 재봉틀을 만졌습니다

10개 정도의 작은 소품을 이것저것 만들어 본 덕분에 지퍼를 예쁘게 다는 법을 터득했다.

유튜브에는 미싱으로 OOO 만들기 콘텐츠가 넘쳐났고, 만들 수 있는 것 역시 점점 늘었다.

그리고 여름의 중턱에서 친한 언니와 얘기하다 별생각 없이 다짐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여름이 가기 전에
여름옷은 꼭 하나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혼자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초보자도 쉽게 그릴 수 있는 패턴이고, 얇은 면소재를 홑겹으로 사용해도 되는

뷔스티에를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올여름 하나쯤 장만하고 싶었는데 못했기에!)

핏이 애매해 입지 않던 면 원피스를 분해해 원단화 시키고, 어깨끈, 단추 등 부자재를 구입했다.

단추를 다는 것도, 단추 구멍을 만드는 것도 모르는 인간이지만 하면서 배워가지 뭐.


종착점이 아닌 시작점으로 걸어가 보다

최근 2~3년 동안 남들에 비해 많은 옷을 사 입었고(다시 팔았고),

완성된 결과물을 소장하고 활용하는 것의 즐거움은 이미 넘칠 정도로 충분히 느꼈다.

이제는 그 옷의 종착점이 아닌 한 벌의 옷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체험하는 즐거움을 맛보려고 한다!


이 친구를 만들어보려 합니다


다음번 글을 쓰는 2주 뒤까지 한 벌을 완성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 끝엔 어떤 감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많이 궁금하고 두근거리네요!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글쓰기 모임

'쓰담'과 함께하는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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