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전할 건가요, 돈만 버실 건가요?
최근에 당한 “핵” 어이없는 경험이 이 글을 쓰는 강한 동기가 되었다. 며칠 전 대학로에 연극 보러 갔다가 생각 없이 응모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한 뷰티 브랜드의 기초 케어를 서비스받는 기회가 있었다. 여기까지 읽으면 그런 것도 있겠구나 하겠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는 R 뷰티 브랜드의 다단계 판매전략이었다는 것을 나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이 만행은 몇 년 전부터 이어져오고 있으며 최대 수백만 원의 제품 강매가 한 번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다단계임을 알게 되었으니 이를 소재로 자세한 글을 쓸 수는 없게 되었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잘못된 전략을 가진 브랜드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내 브랜드를 가지다’라는 말은 일상적이 아닌 뉴스 기사에서나 접할 수 있는 문장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건너 건너 지인만 수소문해봐도 대표, 사장님이 한 두 명은 있을 만큼 친숙하게까지 느껴진다. 요즘의 핫 키워드인 인플루언서나 1인 마켓, 세포 마켓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사업이라는 개념은 지속 확장되고 있고 공간의 제약이나 초기 비용 같은 진입장벽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나 역시도 앞서 썼던 글들을 통해 간편하게 사고파는 시대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었다.
그만큼 요즘 세상엔 ‘브랜드’라고 칭해지는 것들이 하루에도 수십수백 개씩 쏟아져 나온다.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얻고 나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여겨지는 브랜드들은 한없이 감성적이거나 감각적으로 보이지만, 또 그만큼 매력 없고 허울뿐인 브랜드(라고 칭하고 싶지도 않다) 들을 보다 보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물론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브랜드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밝힌다. 오늘 글을 통해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그래도 브랜드라면 지켜줬으면 하는 아주 소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일상을 지내며 누군가를 설득하는 글을 써야 하는 상황에 종종 놓이게 된다. 기획과 같이 정리된 문서로 업무를 하는 직종이라면 당연히 논리적인 서류를 내 주 무기로 하게 될 것이고 판매를 이끌어내기 위한 글이라면 더더욱 상세하고 객관적이면서도 감각적인 글쓰기가 필요할 것이다. 전자상거래도 마찬가지다. 워낙 판매채널이 작게 쪼개져 각 잡고 글 쓰는 일이 줄어든다고는 하더라도 SNS를 통해 상품을 소개하는 짤막한 글이나 홍보 문구 역시도 어쨌거나 글쓰기의 일환이다.
평소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상품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글을 많이 접한다. 작가 수준의 필력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최소한의 기대도 미치지 못하는 컨텐츠들도 종종 보인다. 한글이나 영문의 맞춤법 오류부터 너무 길어서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당최 모르겠는 마법의 문장들까지. 고객과 대면하는 비용을 줄이면서 사진과 글로서 고객의 마음을 붙잡고 싶다면 그것이 SNS 포스팅 등의 짧은 글이라 해도 최소한의 성의와 정성을 보여줬으면 한다.
이미 자신의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물음이 조금 웃기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정말 상품을 판매하고 브랜드를 오래 유지하고 싶은 것인지 의문이 드는 판매자도 종종 있다. 돈이 걸린 일이니 많이 판매하고 싶은 욕심은 당연히 가지고 있을 거라 치자.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 때 판매자가 상품 준비나 제작에 열정이 느껴지냐는 물음이 던져진다면 확연히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내게는 인스타를 통해 피드를 받아보고 있는 자체 제작 상품 판매자 A와 B가 있다. A는 소소한 일상에서 제품이 함께하는 모습, 잘 가꿔진 배경 속에서 각 잡고 촬영되는 제품의 모습 등 제품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소비자에게 부지런히 어필한다. 그 사진과 글 속에는 판매자가 제품을 생각하고 타겟팅하고 가꾸어내는 애정 어린 시선이 분명 담겨있다. 판매자 B 역시도 분명히 어느 정도의 팔로워와 감성적인 산출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인스타 피드에 제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친 자신의 모습을 표시해 버렸다. 지칠 때도 있지만 즐겁다의 뉘앙스도 아니고 그냥 제품 준비가 힘들게 느껴지는 솔직한 피드를 받아보는 순간 ‘이런 포스팅을 굳이 해야 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그 판매자에 대한 신뢰가 살짝 무너져 내렸다. 나에게는 ‘이 판매자는 자신이 만든 제품에 과연 얼마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물음과 동일한 선상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나 사람이고 개인이 가진 고유한 성향이 있겠지만 그 포스팅 자체는 제품과 브랜드의 매력을 깎으면 깎았지 더 플러스시킬 힘은 없어 보였다. ‘브랜드와 연계된 포스팅에 아주 조금의 부정적인 감정은 절대 힘을 낼 수 없구나’를 이 계기로 알 수 있었다. 그 멘트는 자신의 친밀한 지인끼리 나눴으면 좋았을 안주거리였을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어울리지 않는 포스팅이었다.
내가 여러 글에 걸쳐서 '브랜드 파워는 곧 사람에게서 나온다'라고 지치지 않고 주장하는 것은 지금 하려는 이야기에서 가장 강력하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바로 판매자의 공감능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판매자가 자신의 브랜드를 얼마나 오래 건강하게 지속하고 싶은지에 대한 부분이 고객과 교감하는 자세에서 눈에 띄게 표출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제품 포스팅에는 보통 서로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문의를 할 때가 많은데, 그것에 하나하나 대응하는 것은 굳이 내가 경험하지 않고 바라만 보아도 매우 피곤하게 느껴진다. 판매자 A와 B를 다시 한번 소환해 보자. A는 반복되는 단순 문의에 고객과의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충실하게 팩트에 답변만 한다. 설령 그것이 고객의 부정적인 피드백일지라도 말이다. 그 문장에서는 어떠한 감정이나 사견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정보 전달의 힘만 가지고 있다. 하지만 B의 댓글에서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댓글 달기 좀 귀찮고 짜증스럽다는 감정이. 그런 답글을 보면 나는 그 판매자와 어떠한 소통도 하고 싶지 않아 진다. 판매자 B는 조금 귀찮은 댓글에 답변해 판매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연결고리 하나를 놓친 셈이다. 최근 판매자 B의 제품을 하나 구입했는데, 주문을 하고 실제로 상품을 확인할 때까지 굉장히 우려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내가 이 판매자의 고객이 되었을 때 정당한 서비스를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내가 가진 필요 없는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중고장터의 매력에 빠져, 판매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구매자가 되어보기도 하는 역할놀이(?)를 즐기고 있다. 중고장터만 경험해봐도 세상엔 다양한 스타일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가격을 흥정하고 구매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펼치는 묘미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판매자이든 구매자이든 상쾌한 거래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거래가 완료되었을 때 친밀한 말 한마디라도 더해주는 판매자, 약속한 방식으로 깔끔하게 금액을 지불하고 판매자에게 알려주는 구매자. 이런 사소한 디테일 하나에 사람은 마음이 좋아질 수 있다. 하물며 많은 사람들을 한 번에 상대하는 브랜드라면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상품과 전략의 다양성은 존재할 수 있어도 서로가 기본은 지킬 수 있는 인간적인 거래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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