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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Apr 07. 2024

<금쪽 상담소> 보다 뼈 맞았습니다

유명인들의 고충을 비추어보며 스스로를 인식하다

무더위가 끝나가고 있던 2022년 8월의 끝자락. 기분이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고, 유독 더위에 취약한 나는 늘 여름이 되면 무기력감을 겪는다. 당시 맡았던 회사업무에 정-말 흥미를 못 느꼈던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나조차도 모르겠는 내 기분과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 꿰뚫고 싶은 마음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닿았는지, 자연스럽게 오은영 박사의 <금쪽 상담소> 클립 몇 개를 훑게 되었다. 한 번도 보지 않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박사님이 이야기하는 단어와 설명들 중 와닿는 것들이 꽤 많더라.




완벽주의 성향

80만큼 했으면 80인 건데, 자신이 세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0인 거예요.
"결과를 내지 못하면 난 남는 게 없어"
목표를 향한 과정에서 얻는 자긍심을 느끼기 쉽지 않은 성향입니다.


개그우먼 미자 편에서 완벽주의 성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학생 시절부터 느껴와서 익숙했던 성향이다. 다이어리를 삼분의 일도 쓰지 못한 채 1년에도 몇 권씩 바꾸던 중학생과 SNS 계정을 리셋하고 싶어 계ㅇ을 몇 개씩 새로 만들다 친구들에게 원성을 들었던 대학생은, 업무에서 좋은 성과를 내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다음엔 더더욱 완전하게 해 낼 것을 다짐하는 회사원으로 성장했다.


이 완벽주의 성향은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기질적으로 가지고 태어났을 수도 있고 정확한 원인을 콕 집어 찾을 수는 없겠지만, 어린 시절 몇 안 되는 기억 하나를 끄집어 내 보자면 중학생 시절 시험 성적표에 늘 연연했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90점 이상이 몇 과목씩 되는 좋은 점수를 받았던 날 당연히 엄마에게 칭찬받기를 기대했지만 '다음에는 더 잘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그 말에 분명히 실망했음에도 한편으로는 '맞아. 다음번엔 더 잘해야지' 하며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잘하지 못하는 날들도 많았으며, 그 때마다 느꼈던 좌절감의 반복이 완벽주의 성향을 더 굳혔을 수 있겠다. (최근 엄마와 이것을 소재로 대화를 나눴었다. 솔직히 그 순간에는 원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당시의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아이에게 완벽한 성과를 요구할 때에도 소아 무기력증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나중에 엄마가 된다면 따끔한 훈육과 함께 무조건적인 응원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다행히 회사에서는 애자일(Agile, 개발과 함께 즉시 피드백을 받아 유동적으로 개발하는 방식)한 업무를 추구하다 보니 처음부터 100점짜리를 만들려고 하기보다 60점짜리부터 만들고 나서 80점, 90점으로 만들어가는 훈련을 반복할 수 있었다. 업무 결과적으로는 크게 차이가 없는 선택의 기로에서 투머치한 고민을 했던 초년생 시절도 있었지만 그럴 때 상사는 '그냥 아무거나 선택하라'고 조언했고, 덕분에 다소 병적이던 완벽주의 성향이 많이 보완되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작은 부분까지 완벽하게 고쳐내고 또 깎아서 다듬어 내고 싶은 것이 나의 본질인 것을 알고 있다.


스스로를 칭찬해 주기 너무 어렵기만 한 완벽주의 성향이 '내가 성취감을 느끼는' 부분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의식적으로라도 내가 한 작은 성취들에 스스로 격려를 보내줘야겠다는 다짐을 <금쪽 상담소>를 보고 난 시점부터 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순간적인 정신승리처럼 보일지라도, 미련할 정도로 합리화를 못하는 인간인 나로서는 어느 정도의 합리화는 내 자존감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제는 점수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


착한 아이 증후군

권위적인 대상에게 부정적인 의견과 감정을 억압하고 지나치게 순종하는 증후군


이어서 개그우먼 미자 편에서는 착한 아이 증후군도 등장한다. (미자님을 잘 모르지만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위 자막을 보는 순간 회사에서의 내 모습을 한 문장으로 서술해 놓은 것 같아 너무 뜨끔했다. 이유 없이 수년간 나를 미워하고 뒷담 화하던 동료, 필터링 없는 워딩으로 내 치부를 슬쩍슬쩍 들추던 동료 등 다년간의 회사생활에서 나를 힘들게 하던 관계 속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빈도수가 잦아 나를 고민에 빠지게 했던 어려움은 바로 직속 상사에게 내가 느끼는 착한 아이와도 같은 감정이었다.


상사와 내가 함께 일해온 세월이 8년 이상으로 매우 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내가 그에게 느끼는 업무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토로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할 수 없었던 마음속 핑계가 몇 가지 있었다. 나를 평가하는 직속 상사이기에 '혹시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 사회 초년생 때부터 함께 해왔기에 현명하게 이야기를 전할 줄 몰랐던 어린 마음, (연차가 쌓이면서는) 이걸 이제 와서 이야기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체념 등. 그렇지만 가장 컸던 것은 내가 그런 말을 함으로써 상사가 느낄 감정적 고충까지 내 몫으로 가져와 마음을 쓰던 것이었다.


함께 일한 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상사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의 부하직원이자 나의 동료였던 A에게 간단한 업무를 요청했는데 A가 불쾌감을 드러냈고, 그것을 상사 본인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그때부터 그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직접적으로 하면 안 되겠다는 내 마음속에 울타리가 생겼던 것 같다. 나의 솔직한 마음이 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코끼리가 아기시절부터 울타리 속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훈련받으면, 울타리를 부수고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정도로 성장했더라도 여전히 울타리 속에서 탈출할 생각을 못한다는 일화처럼. 30대가 되어서야 내가 그 아기 코끼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마음의 극복은 이후 연재글에서 더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위에서 말한 나의 학생 시절 성적표 일화와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내가 착한 아이 증후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해 왔었지만, <금쪽 상담소>에서 자막으로 보여준 저 한 문장을 통해 그 생각이 정확히 맞는 것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사람은 때때로 참 미련하다. 저렇게 텍스트로 눈앞에 들이밀어줘야 그제서 인정하게 되니까 말이다. (아니면 본능적으로 이해하기 싫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10년째 계속되는 번아웃

-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미리 생각해 두어야 안전하다고 느낀다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무력감을 느낀다
- 약속한 일은 꼭 한다, 마음먹은 일은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유니크한 감성의 노래들로 확고한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가수 김윤아 편도 와닿는 게 참 많았다. 10대 시절 자우림의 노래를 들었을 때도, 이 가수는 남들과는 다른 범상치 않음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것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는 감정도 굉장히 묘하다. 김윤아 님은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며 무력감에 빠지는 것은 자신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어려움을 어린 시절에 겪은 사람들의 슬픈 흔적 같은 게 아닐까?


나 역시 병상에 계시던 아버지로 인해 죽음이 드리워진 집안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점이 비슷하다. 이제 막 10대를 시작하던 시절의 어린 나이였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부모님을 걱정시키지 않고 묵묵히 내가 할 일(공부)을 하고 학교 수업이 마치는 대로 일찍 집에 귀가해 간병하는 어머니를 돕는 것. 친구들과 용돈을 쓰며 놀거나, 이성 친구에게 순수한 관심을 갖는 것 등 그 나이대 너무 자연스러운 일들이 모두 사치라고 생각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나 역시 김윤아 님과 비슷하게 종종 번아웃을 겪는다. 무력감을 느끼는 빈도수가 줄고 우울감에 빠지는 깊이가 평균적으로 얕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번아웃 없이 지나갔던 해는 한 번도 없었을 거다. 에너지로 가득 찼을 때는 누구보다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일상을 활기 넘치게 살아가지만, 스스로가 세운 높은 기준과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험이 크고 작게 반복되다가 생명력이 거의 바닥나는 시점에 무력감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누군가와 한 약속은 말할 것도 없고 스스로와 한 약속까지 반드시, 그것도 잘해야겠다는 욕심에 짓눌리는 사람. 필요 이상의 과중한 책임감을 떠안고 살아가는 슬픈 사람들.


<금쪽 상담소> 김윤아 님 편을 보고 나서는 나의 어두웠던 과거가 성인이 된 지금의 나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다시 인지하게 되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고백하던 김윤아 님의 영상을 보고 난 뒤 며칠 후까지 씁쓸한 여운이 가시지를 않았으니 말이다. 꽁꽁 숨기고 싶었던 내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렇지만 지나친 감상에 빠져서 허우적대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를 건강하게 떨쳐내고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됐던 시점이 아닐까 싶다. 그 시절 금쪽 상담소의 클립들을 만날 수 있던 것은 지금으로서는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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