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소한 May 05. 2024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 갈아 끼우기

투자 공부를 시작하면서 새롭게 얻은 '현실 렌즈'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선택적 단기 아르바이트만 했었던 이십 대 초반을 지나, 월급이라는 걸 따박따박 받아보기 시작한 이십 대 중반. 그리고 연차에 맞게 어느 정도 모인 여윳돈으로 어릴 적 충분히 갖지 못해 한이 되었던 옷을 사 모으기 시작한 이십 대 후반. 그마저도 몇 년 하니 의미 없다 싶어 사치품은 모두 정리하고 재테크에 눈을 뜬 삼십 대 초반. 이제는 잠깐 기분을 좋게 해주는 작은 것들을 넘어 일상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는 내 집과 차를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들로 가득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생각의 흐름을 따르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시작된 투자공부


돈을 모으는 시작은 절약부터라고 하는데, 절약은 워낙 몸에 배어있어서 그런지 익숙함을 넘어 재미까지 있었다. 여러 개의 통장을 만들어 카테고리 별로 월급을 쪼개두고 적금과 예금만 반복하던 나. 개별종목 주식투자를 몇 번 해보기는 했지만 남들이 한다니까 해본다 관점이었지 똑똑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스타일은 아쉽게도 되지 못했다. 그나마 내 집 마련에는 관심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유튜브에서 관련 키워드로 몇 가지 채널을 즐겨보기 시작했고 그중 가장 결이 맞다고 생각되는 채널에서 운영하는 내 집마련 단기 특강을 들어보게 되었다.


한 달에 5~6개 정도의 강의만 들었을 뿐인데 한번 한 번이 흥미의 연속이었다. 단순히 큰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물론 큰돈을 벌면 좋긴 하겠다) 노후 준비 차원에서도 부동산 투자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폐부를 찌르는 것 같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야기들에는 자극을 받았으며, 그럼에도 부동산 투자를 한다면 이런 마인드여야 한다는 내용들이 새삼 인문학 강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특히 나처럼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인생을 배울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 3개월 뒤 큰 마음을 먹고 정규 강의를 신청했다.


집이든 차든 스마트키가 열어주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열쇠가 갖고싶네요


알찬 커리큘럼에 더해진 의욕까지


생각했던 것보다도 커리큘럼은 매우 알찼다. 물가와 금리 등 경제의 기본 원리에 대한 것은 물론 부동산 매수의 대략적인 기준과 매수과정의 A to Z를 배우기도 했다. 나름대로의 매수 기준이 생겼고 대출이라는 것은 무시무시한 것이라기보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수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집을 볼 때 어떤 부분들을 체크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가장 의미 있었던 과정은 나의 경제상황을 기반으로 대략적인 예산을 잡을 수 있게 된 것과 나름의 관심지역이 생긴 것이었다. 커스텀 된 나만의 리스트가 생기니 적기가 되면 바로 행동에 옮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신중, 또 신중!)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수강한 과정이라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에 부동산투자를 1도 모르는 부린이였지만 조활동에 있어 조장을 자원했고, 한 달 동안 다른 조원들을 도우며 공부했다. (모르는 만큼 열심히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작은 감투가 씌워진 환경을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알면 알수록 부동산에 대해 공부하는 게 진심으로 재미있었다. 머리로 배운 것들을 몸으로도 체득하고 싶었기에 임장(부동산 지역에 발품을 파는 활동)도 열심히 다녔고 3개월 동안 궁금했던 10개 지역을 부지런히 탐색하며 동네와 특정 아파트단지, 특정 매물까지 다양하게 살폈다.


임장 하며 찾아온 사고방식의 변화


낯선 나라에 여행온 외국인처럼 뜬금없는 스팟에서 사진을 찍어대는 스스로의 모습이 낯설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몸을 움직이는 것은 사고방식의 변화를 함께 가져왔다. 끝도 없는 경사로가 있는 단지에서 '신축이기는 하지만 경사가 너무 급해서 아이 키우는 집에서는 불안하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늘 산책만 하러 왔던 각종 개천 인근에서 쉬어가며 '역시 개천이 가까운 곳이 투자 관점에서도 가치가 높겠구나'를 몸소 체험하고. 4호선 이촌역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중고등학교와 아파트 단지를 보면서 '여기가 진정한 입지의 끝판왕이구나'하며 연신 엄지를 치켜세우는 등. 예전에는 관심도 없고 몰라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남들이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수하는 것이 개성과 매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부동산 투자에서만큼은 남들의 선호도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나뿐만 아니라 남 역시 살고 싶은 집을 매수해야 세를 주게 되어도 잘 나가기 때문이다. 신축 vs 구축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신축 아파트가 마냥 좋기는 하겠지만 신축을 살기 위해 입지를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경우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게 되었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의 연속에서 일상의 편의가 좌우될 수 있는 그런 경우들. 나도 아직 실행에 옮겨보지 못한 시점에서 왈가왈부하기는 당연히 어렵지만, 근미래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될지 궁금해진다.



감상적 기질의 사람이
현실적인 부동산 세계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조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숫자도 약하고 현실감도 부족하지만
열심히 해서 나만의 성과를 만들고 싶습니다.


강의 초반에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 정확히 1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난 지금의 나는 질문을 던졌던 그때의 나와 사뭇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 더 이상 마냥 감상적이지도 않으면서 어느 정도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으며, 숫자와 길눈에 약한 것은 여전하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보완하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다. 지금 와서 저 질문을 다시 읽어보며 드는 생각은 마냥 감상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부동산 투자에 한계를 짓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냥, 마음먹고 하면 된다. 부동산 투자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다. 다만 투자에 있어서는 감정적이기보다 팩트 기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빠르게 판단할 수는 있겠다. 자본주의에는 감정이 없으니 말이다.


사고의 변화에서 행동의 변화로


다른 동네를 구경 가는 기회가 생기면 예쁜 카페나 핫플레이스만 들렸었지만, 이제는 주민들 선호도가 높은 주요 아파트 단지를 루트에 포함시켜 본다. 길을 지나다 멋진 아파트단지를 보면 '부럽다, 난 언제 이런데 살아보나' 한탄만 했지만 이제는 네이버부동산 앱을 열어 가격을 알아보고 시세의 수준을 파악한다. 버스정류장의 위치, 배차간격 등으로 인해 교통이 조금이라도 불편한 지역에 가면 불평하기 바빴었지만 이 동네 주민 입장에서 출퇴근길을 상상해 보며 가정된 일상에 대입해 본다. 이렇게 1년 사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양쪽 눈에 감정 렌즈만 고수하던 내가, 한쪽 눈에는 현실 렌즈를 낀 오드아이가 된 것이다.


'내가 이런 시각도 가질 수 있어?' 마인드는 나에게 아주 큰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내가 아는 한 가지 방식으로만 우직하고 때로는 바보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던 인생에서 몇 가지 재미있는 갈래길을 추가로 발견한 느낌이라고 할까? 관심사의 영역이 기존과는 아예 다른 반대급부 방향으로 확장됨에 따라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주제도 아주 다양해졌고, 새로 관심을 가지게 되는 타입의 사람도 늘어났다. 현실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친구들의 지나가는 한 마디에 귀가 솔깃해지는걸 보면 말이다. (재밌게도 예전에는 그들의 한마디에 상처만 입었었다) 과거의 내가 생각했을 때는 안 맞을 것 같았던 타입의 사람과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란 굉장히 신나는 것이다.




사람이 나이를 하나씩 먹고 성장하면서 많은 것들이 알아서 변화하게 된다. 스타일도 바뀌고 음악 취향도 바뀌고 입맛도 바뀌고 심지어는 주변에 사람까지 바뀐다. 나 역시 예전에는 맛을 모르던 두릅이나 달래, 미나리를 즐기게 되었으며 (고기보다 미나리를 더 많이 먹는다) 시도해보지 않았던 타이트하고 페미닌 한 옷들을 한 두 개씩 사 모으기도 한다. 그때그때 나의 관심사와 상황에 맞게 친하게 지내는 그룹도 계속 바뀌고 있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작은 것이라도 괜찮으니 과감하게 무언가를 변화시켜보면 어떨까? 나에게 아주 잘 맞는 것들이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걸 보면 세상이란 참 가능성으로 가득한 흥미로운 곳이다.


예쁘고 근사하고 흠 없는 것만이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시선에 애정이 담기자
아름다운 것 투성이였다.
이화정, <아름다움 수집일기> 중



이전 04화 내 가치관, 방구석에서 간단하게 찾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