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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Apr 14. 2024

유료 심리검사로 나를 잘 알 수 있을까?

기질/성격평가도구인 TCI/MMPI 검사로 알아보는 나

<금쪽 상담소> 속에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는 유명인들을 통해 나의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 진단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답답한 내 감정이 말끔하게 풀릴리는 없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유료 심리 검사를 한 뒤 전문가와 상담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집 근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작은 센터가 있었고, 온라인으로 예약과 결제를 동시에 마친 뒤 상담일을 기다렸다.


센터에 방문하기 전에 TCI와 MMPI, 문장완성 등 총 3가지 심리검사를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문장완성 검사의 경우 따로 결과지가 나온다기보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내용을 참고하시는 듯싶었고 나머지 2가지 검사에 대해서만 글을 작성해 보려고 한다. TCI 검사의 경우 140문항으로 이루어져 있고 MMPI 검사의 경우 성인/청소년 대상에 따라 4가지 타입으로 다시 나뉘는데, 나의 경우에는 567 문항이라는 가장 많은 문항수에 응답하는 MMPI-2 검사를 진행했다.


TCI
사고방식 / 감정양식 / 행동패턴 / 대인관계 양상을 기반으로 개인의 기질과 성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심리검사. 심리상담을 받기 전, 상담사가 내담자의 성격과 기질을 파악하기 위해 자주 활용된다.


MMPI
개인의 성격 특성 및 정신병리적 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성격검사 중 하나. 임상척도를 통한 심리적 부적응을 탐지하고 해석해 주는 구조로 되어있어 나의 약점을 탐지하고 개선하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하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기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나의 TCI 검사결과


(참고) TCI는 크게 기질과 성격으로 나뉘고, 다시 세부적인 하위 항목으로 나뉜다. 기질과 성격을 쉽게 구분하자면 전자는 선천적으로나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향성이나 특성이며, 후자는 주로 살아가면서의 경험과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는 부분으로 기질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기질) 사회적 민감성 : 높음


<금쪽 상담소> 개그우먼 미자 편에서 '초민감자'라는 개념이 나온다. 지나친 공감 능력 때문에 같은 사건을 겪어도 감정적으로 더 많이 괴로워하는 사람이라고. 나에게 몰두하는 에너지에 주변에 집중하는 에너지까지 배로 쓰기 때문에 남들보다 쉽게 지칠 수 있다고 했다.


나 역시 20대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었다. 가령 20-30명이 모여서 회식하는 자리에서는, 내가 앉은 테이블 외에 다른 테이블에서 하는 이야기들까지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수와 비슷하게 내 머리에서 레이더가 쭉- 올라와서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재미있는 날도 있었지만 대체로 기가 많이 빨려서 집에 갔던 것 같다.


현재는 아주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1:1 만남을 선호하고, 4명 이상 모이는 자리를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다. 내 앞에 앉은 한 명에게만 집중해서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 사회적 민감성이 높다라는 결과를 들었을 때 나의 이런 모습들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기질) 위험회피 : 매우 높음


TCI 검사에서 스스로 가장 아쉽게 받아들였던 피드백이다. 검사 당시(2022년)에는 크게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올해(2024년) 1분기에 나 스스로에 대해서 매우 진지하게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 가장 개선하고 싶은 항목이다. 예기불안(현실적인 위험이나 위기가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계속해서 불안을 느끼는 것),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멈추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4%만이 실질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한다. 이 말을 책에서 접하고 난 뒤부터 내가 처리할 수 있는 4%에만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세이노의 가르침>에서도 '몇 줄 안 되는 문제에 대해 10분 안에 해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라'고 한다. 근데 걱정을 사서 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10분을 고무줄처럼 질질 늘려 하루를, 한 달을, 1년을 망쳐버린다는 말이 너무 세게 와닿았다. (시간은 그렇게 효율적으로 쓰고 싶어 하면서 다 걱정하는데 쓰고 있었다니! 싶어 허탈해졌다)


그래서 올 한 해는 '해보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못하고 있던 것들을 굳이 해보는' 해로 컨셉을 잡았다. 오롯이 혼자 긴 시간을 보내보는 독립 시뮬레이션, 운전대를 잡고 도로 위에 나서기, 다소 공격적인 투자하기, 회사 한 달 쉬기 등등. 모두 머리로 걱정만 하다가 미뤄온 것들이다. 두 가지는 이미 실천하고 있고 나머지 두 가지는 2분기 내로 실천할 예정이다. 하나씩 해 나가면서 드는 순간적인 두려움들이 아직도 많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헤쳐나가고 있는 그 자체가 뿌듯하고 만족스럽다. (자아효능감이 쑤-욱 높아지는 느낌!)


성장과정 속 경험과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의 '성격'


(성격) 자기 초월 : 매우 낮음


결과지를 받아 들고 일단 '자기 초월'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해서 찾아보았다. 

자신을 우주만물과 자연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고, 이들과 일체감을 느끼는 능력.
이러한 의식 속에서 자신과 타자의 구분이 줄어들어, 개인으로서의 자신의 중요성 또한 줄어든다.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나를 내려놓는 것. 삶의 만족도와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자기 초월 척도가 높은 사람은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충만감을 느끼기에 꾸밈이 없고, 따라서 일상에서 크게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삶의 여유가 있을 테니 참을성 또한 높을 수 있다. 반면 자기 초월 척도가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눈앞의 목표나 결과에 집중하는 편으로 참을성이 상대적으로 없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쉽지 않고 자의식이 강하며 가능한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할 수도 있다.


개념적으로 접근했을 때 명확하지 않았던 부분이 사람의 경향성으로 비교해 보니 확 이해된다. 저 설명에 따르면 현재의 나는 자기 초월 척도가 낮은 편이 맞다. 이 부분은 작년(2023년)부터 인지하고 있긴 했는데,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뾰족한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일단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좋게 봐주려는 연습부터 하고 있다. 지나치게 높거나 멀리 있는 목표를 세우는 것도 지양하고 있고. 불확실한 것을 수용하고 현재를 즐기는 내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봐야겠다!




나의 MMPI 검사결과


MMPI 검사결과의 경우, TCI에는 존재하는 백분율 점수가 없어서 높고 낮음을 자가진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점선으로 표시된 기준선을 초과하는 것들(평균치보다 높다고 예상되는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공격성의 억제

갈등 상황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게 너무 어려웠던 내 특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내가 가진 권리가 명확한 상황(내가 소비자라던지)에서는 손해 본 것이 있다면 당당하게 시정요구도 할 줄 알기에, 싫은 소리나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단지 가족/애인/가까운 동료 등 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정당한' 공격성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결론이다. 아직 무섭지만 이제는 돌파해야 할 때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했고, 하나씩 돌파해 가고 있다.


수줍음/자의식

TCI에 이어 자의식은 MMPI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나왔다.


일반적인 건강염려

이 결과는 보자마자 인정했다. 확실히 건강에 대한 염려가 남들보다 많은 편이다. 기질적인 것도 있겠지만 어릴 적 아프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는지 나를 포함한 가까운 사람들이 아픈 게 너무 싫다. 감기기운이 조금만 있어도 바로 약국으로 향하고, 약국약이 들지 않는다 싶으면 바로 병원 진료를 예약한다. 건강검진에서 치료나 추가 검사가 필요한 항목이 식별되면 거의 바로 예약해서 상태를 체크한다. 조금이라도 병을 키우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이긴 한데, 너무 과한 예기불안으로 이어지지 않게 잘 밸런스를 맞춰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가족 내 소외

MMPI 검사 결과에서 가장 충격적인 항목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의 글에서 다루고 싶다.


여유로운 호수와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조급함

모든 결과 중 가장 높게 측정된 항목이다. 나의 기본적인 행동양식 중 하나를 꼽으라면 무조건 빨리빨리다. 업무에 있어서는 데드라인 2~3일 전에 무조건 끝내놓아야 하고(이건 좋은 점이 더 많긴 하다), 약속시간이나 탑승시간 등 정해진 시간이 있다면 무조건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좋게 말하면 부지런하긴 한데, 이런 성향 때문에 스스로 피곤한 적도 많았고 너무 급하게 처리한 일을 나중에 다시 수행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금쪽 상담소> 배우 이아현 편에서 오은영 박사의 말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이건 부지런함이 아닌 조급함입니다. 혹시 (이아현 씨는) 참았던 경험이 많지 않았던 건 아닌가요?" 이 말을 듣는데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조급함이 참아버릇하지 못한 성장과정과 연결될 수 있구나' 싶어서였다. 호기심에 넘쳐서 새로운 취미나 학습을 시작했다가 한 달도 안 돼 안 맞는다 생각이 들면 금방 포기하고, 환불하고, 중단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빠른 손절이 답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지만 대부분 모든 것에 빨리 질려하는 경향성이 있는 스스로에 고민 포인트가 있었기에 켜켜이 쌓여왔던 나의 많은 손절들이 조급함을 더 키웠던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생각이 많아졌다.


나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인 조급함, 그중에서도 빠르게 포기하는 부분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지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일단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보고 있다. 나와 조금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일상에 여유가 묻어있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서 대화하려고 한다. 그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보고 느끼고, 이렇게도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구나 하면서 필요한 부분은 습득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급하게 가려는 스스로를 다독이는 연습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천천히 해도 돼. 아직 충분해."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이렇게 TCI/MMPI 검사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에 있는 항목들을 쭉 정리해 보았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피드백이라고 생각하면 빠르게 납득하고 개선하려는 성향이 강해서인지, 다소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퇴고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일부 항목들은 반대급부로 긍정적일 수도 있는 성향들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위험회피, 낮은 자기 초월감만큼은 꼭 개선하고 싶다)


요즘은 무료 심리검사들이 워낙 다양하게 나오는지라, 유료 심리검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최근에 재미로 했던 온라인 성격검사가 나도 그렇고 주변 지인들도 생각보다 매우 잘 맞아서 놀랐던 적이 있다) 전문가와의 상담이 차별점이라면 차별점인데, 상담 전문가와의 만남 횟수도 중요하고 (아무래도 한 번의 대화로 그 사람을 모두 알 수는 없으니) 인간적인 코드가 잘 맞으면 상담의 결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기에 무조건적으로 추천하지는 않는 편이다. (나의 경우 심리 유튜브를 하도 보고 가서 그런지 특별하게 얻은 인사이트도 없었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성격을 진단하면서 나름의 체계가 잡힌 검사들이다 보니, 나에 대해서 더 깊게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봐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리 전문용어를 기반으로 하는 냉철한 피드백과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쓴 대중적인 피드백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는 하기 때문이다. 나를 더 면밀하게 알 수 있었던 검사였고, 앞으로 어떤 것들에 중점을 맞춰서 살아가면 좋을지 다짐도 할 수 있게 된 좋은 계기였다. 2024년이 끝나있을 즈음에는 반복적으로 도전하면서 얻은 자양분을 바탕으로 보다 깊게 뿌리내린 사람이 되어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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