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소한 Apr 21. 2024

이상주의자 vs 현실주의자

꿈을 허황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나는 마냥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목표도 엄청 높은 사람이구나 싶다. 초등학생 시절, 장래희망을 그림으로 표현하던 작은 캔버스에는 늘 다른 직업이 담겼다. 화가, 의상 디자이너, 웹디자이너, 선생님 등등 미래에 그리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입시가 중요했던 고등학생 시절에는 당시 성적으로는 갈 수 없었던 대학들이 목표였다. 현실적으로 어려웠지만 매체를 통해 보이는 학교 이미지가 좋아 보였고 그 학교 캠퍼스를 거니는 로망이 있었던, 지나치게 단순한 이유였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부터는 예쁜 가방을 만들어내는 어떤 브랜드의 대표가 막연한 롤모델이 되었으며, 사회생활 경력이 10년에 가까워진 지금은 중년과 노년에 꿈꾸는 이상적으로 그리는 삶의 모습이 몇 가지 있다.


TMI이지만 나의 이상을 몇 개 공개하겠다.

- 인플루언서 등이 되어서 입어보고 싶은 옷이 있다면 모두 입어보면서 살고 싶다.

- 나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브랜드와 공간을 만들어, 세상에 하나뿐인 유니크한 제품들을 판매하고 싶다.

- 돈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시간이 직접적으로 투입되지 않아도 자산이 스스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자기 계발성 업무나 프로젝트만 하면서 여유로운 중년과 노년을 보내고 싶다. 한마디로 취미로 일하기!


'한 달에 1억씩 벌고 싶어' 같은 허황된 꿈도 자주 꾸는 나와는 다르게 매우 현실적인 성향의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 정말 이상 그 자체이기만 했던 목표들이 처음으로 나와 충돌하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에 응원을 보내주었지만, 그것들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많이 던져왔다. 예를 들면 인플루언서라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 구체적인 방식과 액수에 대해 알고 있는지? 그 목표를 위해 너는 무엇을 할 것인? 등. 멋져 보이는 결과적 이미지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물음에 바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것은 쉽지만 직접 아름다운 것이 된다는 것은


따끔한 충고를 접한 후 새롭게 도전한 것들이 없지는 않았다.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목표 아래 데일리룩을 포스팅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3개월 동안 고군분투 한 적도 있었고, 나만의 제품을 만들고 싶은 꿈을 소박하게나마 펼칠 기회가 생겨 지인의 온라인스토어에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 제품을 오픈하기도 했다. 과거 브런치에 쌓아두었던 패션 관련 글들을 계기로 패션 매거진 플랫폼에 반년 정도 글을 기고하는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도 없고 꾸준하게 이어지지 못하면서 끝물엔 부정적인 에너지만 남기 일쑤였다. 꿈꾸기를 좋아하는 내 성향이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에 빠져 있던 겨울, 유튜버 무빙워터 님이 스스로를 설명한 프로필 소개글을 접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이상주의자입니다.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삶보다는 이상적으로 꿈꾸고 도전하는 삶이 조금 더 제 삶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상주의자가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온갖 현실에 부딪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부딪힌 현실은 이미 과거보다 훨씬 더 이상에 가까워져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도 나 스스로를 '이상주의자'로 칭할 수 있었다. 분명 나와 같은 단어를 쓰고 있는데, 나의 것과는 다르게 그의 것에는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20만 유튜버라 그럴듯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예전부터 내가 하던 이상이란, 현실이라는 땅에 서 있다가 기대감으로 인해 두둥실 떠오르는 풍선의 모습에 가까웠다. 정확히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무턱대고 바람 따라 '떠다녀지는' 그림이었다.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목표가 지나치게 높아지기도 했으며, 그러다가 더 이상의 동력을 잃으면 바람이 빠져 푸스스-하고 내려와 버리는.


그렇지만 무빙워터의 이상은 조금 달라 보였다. 떠다니고 있는 건 똑같았지만 풍선보다는 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이라는 바닥에는 실이 감긴 실패가 돌아가고 있고,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다. 가끔 강한 바람이나 장애물 등을 만나면 주춤하거나 내려오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시 올라갈 수 있도록 실패를 감고 있다. 지독한 현실이라는 바닥을 철저하게 걷고, 뛰고 때로는 전력질주하면서 만들어내는 발자국 그 자체. 무빙워터는 이를 '단단한 성장'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았다. 현실에 기반해서 움직이고 있는지, 그리고 몇 년 이상씩 꾸준하게 지속하고 있는지가 그와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그러면서 이상과 현실이 반대급부에 해당되는 개념이 아니라, 동일한 선상에서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가야 하는 개념이라는 것 역시 깨달을 수 있었다.



요즘 운전에 재미를 붙여 열심히 시행착오 중인데, 가장 어려운 것이 역시 주차였다. 운전연수 마지막 시간에 선생님께 받았던 지적이 생각난다. "혹시 공식대로 한 번에 (주차공간에) 넣으려는 강박을 가지고 계신 건 아닌가요? 주차공간과 주변 환경, 상황이 매번 다르기 때문에 절대 한 번에 할 수는 없어요. 여러 번 앞으로 뺐다가 다시 들어갔다가를 반복하면서 여러 번 수정한다는 생각으로 하셔야 해요. 아니면 절대 잘할 수 없어요." 나 역시 이상을 위한 도전들을 한 번에 성공하려는 주차처럼 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패션 인스타그램, 핸드메이드 제품 판매, 패션 플랫폼 기고 등이 모두 실패라면 실패라고 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지만 결국 그것들을 하기 전보다는 한 발자국 더 나의 이상에 가까워졌다고 믿기로 했다.


이상이 환상이 되지 않기를

- 이상(理想) :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
- 환상(幻想) :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


이 글을 쓰기 위해 정리하면서 스스로 아주 큰 메시지를 얻었다. 행동을 통한 현실로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서 생각만, 고민만 하고 있는 이상은 오히려 환상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현실과 부딪혀야 비로소 실현 가능한 이상이 된다는 것을. 또한 '현실'이라는 글자를 뒤집으면 '실현'이 된다. (라임 대박) 현실에 머물러있지 않고 실현하는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울렸던 무빙워터의 명언을 전한다.

현실적으로 살아도 현실을 만나고, 이상적으로 살아도 현실을 만납니다.
어쨌든 같은 것을 만난다면 저는 이상을 추구하며 살겠습니다.
이전 02화 유료 심리검사로 나를 잘 알 수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