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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Aug 25. 2019

여름마다 걸리는 병, 실버(silver) 증후군

실버(silver)의 강렬한 유혹, 꺼져가던 공예의 혼을 되살리다 ①

올여름 나를 설레게 했던 키워드를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실버(silver) 요.”


작년에 비해 살짝 늦게 찾아온 여름. 주된 관심사가 패션잡화이다 보니 계절이 바뀌면 가장 먼저 변화를 시도하는 부분은 스타일링이다. 큰 지출을 하기보다 적은 돈을 들여 ‘작지만 시원해 보이는’ 아이템으로 하나씩 바꿔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니 실버 컬러에 애정을 가지게 됐다. 샌들이나 슬리퍼로 인해 드러내게 되는 맨발에 살짜쿵 얹어준 부착형 페디큐어, 꾸민 듯 안 꾸민 듯 발목 위를 가볍게 장식해주는 심플한 장식의 발찌, 느낌이 필요했던 검지 손가락에 심플하게 둘러준 납작 반지 등. 사소하지만 큰 효율을 내는 실버 아이템을 때로는 의식적으로 또 언젠가는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실버, 보기만 해도 시원하잖아요? 여름엔 실버 !


하지만 내 스타일링의 끝은 항상 가방이 아니었던가! 애정 하는 가죽 가방 브랜드 ‘미닛뮤트’에서도 발 빠르게 시즌 컬러의 실버 미니백을 선보였다. 뜨거운 여름이 되자 어찌나 실버 컬러가 생각나고 메고 싶던지 모른다. 하지만 ‘여름=실버’는 이미 공식 같은 것이었는지 나만 눈독 들였던 아이템이 아니었다보다. 시즌 한정 리미티드 상품이라는 메리트로 인해 선견지명 있는 스타일링 고수분들이 바삐 데려가시어 진작에 품절된 지 오래였다. 중고마켓까지 기웃거려봤지만 ‘팔아요’ 글보다 ‘구해요’ 글만 잔뜩 올라와 있는 건 실화? 하루 종일 ‘실버’ 주문을 외다시피 하니 가져야겠다는 욕망은 더 강해져만 갔다.


너무 예쁜 스타일링인것 같아요. (출처 _ minitmute.com)


물건을 구하지 못해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즈음 나는 이미 ‘내가 한 번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흥미가 일어 가죽과 도구 등을 파는 웹사이트를 두어 개 정도 구경했는데 마침 그중 한 곳에서 빛깔과 두께, 크랙감이 적당한 합리적인 가격의 양가죽을 만날 수 있었다. ‘두께가 얇아 뒤집어 만드는 가방을 만들기 좋다’는 설명 문구 덕분에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구입을 결정했고 가방 안감으로 사용할 네이비 컬러의 옥스퍼드 원단도 함께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렇게 우연처럼 만나게 된 딱 맞는 가죽 덕분에 나의 공예 열정도 서서히 불을 지피게 되었다.


대략 이런 느낌의 부드러운 가죽이에요.


더위에 지쳐 있었던 8월 중순, 하루 연차를 내고 신설동을 방문했다. 지난 성수동 방문 당시 ‘부자재는 성수동보다 신설동에 많다’는 어떤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무작정 신설동 초행길을 결심한 것이다. 사전에 검색한 정보를 바탕으로 몇 가지 상점을 차례로 방문했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공구백화점’. 이름대로 가죽을 제외한 도구들, 부자재들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일단 실버 가죽에 어울리는 실부터 골랐다. 가죽을 정하면 짝꿍처럼 그에 적합한 실도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는 정확한 색감 체크가 어렵기 때문에 실의 경우는 굳이 발품을 파는 편이다) 마음에 드는 은빛 실을 선택하고 그 실에 맞는 바늘도 선택했다. 고르는 도중 사장님께 도움을 청하니 내가 가진 가죽에 적당한 실과 바늘을 함께 골라주셨다. (덥다고 시원한 요구르트도 내주신 사장님! 감사드려요 :D)


사장님이 함께 골라주신 실과, 유명한 존 제임스 바늘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영동금속'. 많은 블로그에서 부자재 구입을 위해 자주 찾는다고 언급했던 곳이다. 들어가니 정말 금속 부자재 천국이 따로 없다. 이곳에서 구해야 할 것은 'D자 모양 링(D링이라 부른다)'과 고리를 열어 걸 수 있는 '개고리'. 쇼윈도에서 원하는 디자인과 사이즈, 금속의 색상을 이야기하면 사장님께서 창고에서 가져다주시는 시스템. 내가 가지고 있는 가방과 가능한 똑같은 디자인으로 만들 예정이기 때문에 사이즈를 계속 비교하고 시뮬레이션하며 신중하게 선택했다. 한 번에 많은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사장님이 바쁘셔서 조금 아쉬웠지만 재방문 의사는 있다.


D링은 사용하지 않았고, 가방끈에 개고리만 달아주었어요.


마지막으로 구입해야 할 것은 가장 어렵게 구했던 '프레임'. 똑딱이라고도 부르는데 예전 동전지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의 가방 잠금장치다. 프레임으로 열고 닫는 가방과 파우치를 매우 애정 하는 편이라 거의 수집하다시피 모으고 있는데, 만들고자 하는 가방 역시 프레임 백이고 가방의 중추가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번 신설동에서 가장 잘 골라야 하는 부자재였다. 5개 이상의 상점을 돌았으나 파는 곳이 거의 없었고, 결국 첫 번째 방문했던 상점으로 돌아가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다른 곳도 프레임이 있었지만 불친절하고 가격도 꽤 있는 편이었는데, 구입한 곳은 내가 찾는 사이즈의 가장 적당한 프레임이 있었고 무엇보다 주인아주머니가 친절하셨다. 아쉬웠던 점은 찾고 있던 '니켈 사틴' 소재의 프레임은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의로 프레임만 실버 컬러로 대체하기로 했다.


구름 동동 날씨 좋은 날, 신설동으로 떠나던 차 안에서 -


이렇게 첫 번째 신설동 기행에서 두 번째 드래곤볼을 모두 모았다. 신설동을 직접 돌아다녀본 소감은 행복 그 자체. 성수동보다 상점가에서 느껴지는 빈티지한 느낌이 강해서 개인적으로 더 좋았던 것 같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게들과 다양한 모양의 글씨로 이루어진 옛날식 간판, 차갑고 무관심한 상인 분들도 계셨지만 친절하기 그지없는 인정 넘쳤던 사장님들. 작고 반짝반짝 빛나는 부자재를 구경하고 온 점도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아마 다음으로 부자재가 필요한 아이템을 직접 만들게 된다면 신설동에 다시 방문하겠지? 선선한 가을의 신설동은 어떨지 또 궁금하다.


이렇게 모아 온 부자재들로 최근에 작고 빛나는 미니백을 만들어 완성했다. 다음번에는 실제 가방 제작기를 글로 옮겨 담아 보도록 하겠다.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글쓰기 모임

'쓰담'과 함께하는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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