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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Sep 21. 2019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어? 해 보면 되지

가죽 가방을 직접 만들며, 꺼져가던 공예의 혼을 되살리다 2

실버부터 신설동까지

앞선 1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실버 가방에 대한 강한 열망 덕분인지, 원부자재를 갖추고 작업을 시작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퇴근 후 남는 여가 시간과 주말을 활용하여 가방을 제작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던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머릿속에서 구상한 작업 방식을 실제로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민 끝에 세상 만물 모든 것이 담긴 이 시대의 플랫폼 유튜브의 도움을 받아 천으로 된 프레임 파우치를 제작하는 영상을 찾았고, 작업방식만 그대로 가죽에 적용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0. 내가 만들 가방은?

시즌이 지나 참 구하기가 어려운 (아직도 구할 수가 없는!) 미닛뮤트의 실버 코인드백이다. 이 가방을 참고하여 가죽부터 부자재까지 모두 유사한 것으로 준비했다. 이 가방에 사용된 가죽은 매우 고급으로 예상되는데 내가 사용한 가죽은 연습용이라 저렴한 편에 속하는 양가죽이다. 부자재의 경우 니켈 소재의 사틴 처리된 것을 찾아 여러 부자재 가게에 발품을 팔았는데, 니켈 사틴의 프레임은 결국 구할 수가 없어 유일하게 은으로 대체한 부분이다.


1. 도안과 재단

상단 부분의 도안이다. 프레임 가로길이에 맞게 중심을 체크한 뒤 + 프레임을  열었을 때 오픈되는 공간을 감안해 대략적인 모양을 잡아주었다. 도안의 시작이면서 중심을 잡아주는 부분이기 때문에 나름 심혈을 기울여 진행했다. (도안 그리는 법은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인지라 유튜브를 보고 그대로 따라 진행했다)

가방의 세로 길이를 결정짓는 하단부 도안. 최하단 영역에서 접혀 들어갈 부분을 감안해 길이를 정했고 깔끔하게 오려 기본 준비를 마쳤다. 이후 만드는 과정에서 계속 느낀 것이지만 만들고 있는 가방이 내가 예상한 것보다 살짝 사이즈가 작았다. 재단 후에는 크기를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초반의 도안 작업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제 가죽 재단에 들어갈 차례! 일단 구입한 가죽을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앞면과 뒷면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 쌍의 가죽을 준비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죽의 질이 고른 부분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죽 본연의 상태를 최대한으로 살린 천연가죽의 특성상 일정 부분 고르지 않음이 있을 수밖에 없어서다. 얼룩이 있다거나 찍힘이나 긁힘이 있는 부분은 최대한 피하면서 가죽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죽 표면에 이상이 없다면 가죽을 뒤집어 도안을 고정한 뒤 재단선을 그린다. 동영상에서 자세한 가이드가 제시되지 않은 부분이라 1차 난관을 겪은 부분이긴 한데, 일단 사방으로 1c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재단선을 그렸다. (본격적으로 만들어가면서는 딱 1cm 간격이 적당하다 싶어 다행이었다) 제작의 용이성을 위해 실제 도안의 크기도 함께 표시해 주었는데, 실질적으로 바느질이 되어야 하는 부분을 계속 체크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었다. 도안 과정에서는 머릿속으로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위로 쓱쓱 재단해 준다. 베지터블 등의 견고한 소가죽은 아닌지라 집에 있던 일반 가위로 재단하기에도 충분했다. 깔끔하게 잘린 가죽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사진에는 없지만 안감으로 사용한 원단 역시 동일한 과정을 거쳐 같은 사이즈로 재단을 완료한 상태다.


2. 겉감과 안감 형태 잡기

이제 한 쌍의 가죽을 연결해 가방의 형태를 잡을 차례다. 가죽 겉면끼리 서로 맞닿도록 두 장을 겹쳐 놓은 뒤 가죽이 움직이지 않게 잘 고정한다. 그리고는 바늘구멍을 만드는 도구(치즐)를 이용해 가지런하게 구멍을 내준다. 치즐을 가죽 위에 올리고 망치로 탕탕탕 두드리면 치즐의 날이 가죽을 관통해 구멍이 생기는 방식이다. 망치를 사용해야 해서 매우 시끄러운 작업이지만 그래도 가지런히 줄을 잇는 구멍들을 보면 뭔가 마음도 같이 차분해지는 기분이 든다.

입구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세 면을 바느질해 봉합해 주었다. 바느질을 오랜만에 하다 보니 첫 시작 부분마다 매끄럽지 않아 조금 애를 먹었는데 그래도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되짚어가며 해보니 다시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다. 구멍의 간격이 일정하기 때문에 솜씨나 힘 조절에 따라 봉제선이 삐뚤빼뚤할 염려가 없어 좋고, 하다 보면 잡념도 사라지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어 가죽공예에서 참으로 좋아하는 구간이다.

안감으로 사용하는 원단도 지금까지와 동일한 방식으로 바느질한다. 그리고 사진처럼 가방 하단의 모양을 잡아 수평이 맞도록 양 끝을 수직으로 바느질해 준다. 가방 하단부에 입체감이 생기면서 물건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다. 바느질되는 길이가 같아야 가방의 균형이 맞고, 이 길이에 따라 가방 하단부의 너비가 결정되기 때문에 꽤나 신경 써서 작업한 부분이다. 어차피 뒤집으면 보이지 않을 부분이라 바느질은 예쁘기보다는 튼튼하게 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가죽 겉감도 동일하게 하단부를 잡아준다. 얇고 부드러운 가죽이기는 했지만 겹쳐지는 부분은 꽤 두께감이 있어서 바느질하는데 꽤 손이 아팠다.

바느질선으로부터 1cm의 여유를 남겨두고 필요 없는 귀퉁이 부분은 과감하게 잘라준다. 싹둑싹둑 잘려나가는 느낌이 은근 쾌감 있었던 구간 ㅎㅎ

안감을 뒤집어주면 이런 모양이 된다. 점점 가방의 모양이 잡혀가고 있어서 신기해하는 중! +_+


3. 겉감과 안감 병합하

겉감 속에 안감을 쏙 넣어 이 둘을 고정할 차례다. 고정이 되면 전체 원단을 쏙 뒤집을 계획이다.

이미 바느질했던 옆선에 이어 양끝 모서리 부분을 마저 바느질해 주었다. 한쪽 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다 바느질했고, 다른 한쪽 면은 중간 부분을 비우고 바느질했다.

중간에 비운 부분을 벌려 뒤집으면 이렇게 짠! 본체가 나오게 된다. 내가 참고한 동영상은 천으로 만드는 버전이라 중간 부분을 조금 비웠는데, 비좁은 공간 사이로 가죽을 뒤집어 빼내느라 정말 많은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부드러운 가죽이라도 가죽은 가죽인 것을. 다음에 또 만들게 된다면 중간 부분의 여유를 많이 내고 뒤집어야 하겠다. 이렇게 어렵사리 가방 본체가 완성되었다.


4. 가방끈 만들기

별도의 체인을 사용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가방끈 역시 수제로 만들어야 한다. 가방끈의 길이를 결정하고 3cm 정도의 너비로 길게 재단한 뒤 본드를 붙여가며 1cm 두께의 끈 모양을 잡아간다.

이렇게 길게 길게 본드를 바르고, 말리고, 붙이는 과정을 반복한다. 본드는 아주 얇게 바르고 적당히 말린 뒤 붙여야 찰떡처럼 잘 붙는다는 예전 학원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 본드로 가죽을 붙이는 작업도 꽤나 재미있다.

또다시 등장한 치즐. 가방끈도 역시나 바느질을 해서 내구성을 키워야 한다. 세 겹의 가죽이 되었기 때문에 구멍을 뚫는 작업도 세 배의 힘이 들어간다. 처음에는 구멍이 너무 안 났었는데 하다 보니 또 요령이 생겨 몇 번의 망치질로도 구멍이 잘 나오더라. 역시 모든 것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

가지런하게 구멍이 난 가방끈의 모습 - 내 눈에는 너무 예뻐 보인다 ㅎㅎ

바느질을 하는 중간에도 찰칵 남겨준 과정 샷. 신설동 사장님이 함께 골라주신 은색 실이 가죽과 잘 어울린다.

바느질이 끝난 가방끈의 모습 - 정말 긴 시간을 들여 바느질을 했다. 하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


5. 프레임 부착하기

프레임 안에 본드를 요령껏 발라준 뒤 가죽을 사이로 밀어 넣어 부착하는 방식이다. 가죽용 본드가 아닌 다용도 본드를 다이소에서 따로 구입해 사용했다. 이 좁은 간격 사이에 본드를 칠해야 하기 때문에 본드 주입구도 최대한 가느다란 것으로 선택! 본드를 바른 뒤 역시나 바로 붙이지 않고 어느 정도 마른 뒤 가죽을 끼워준다.

잘 부착한 뒤에 찍은 사진.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두 번 정도를 다시 뜯어냈다가 붙이고를 반복했다. 일단 생각보다 가죽과 프레임이 잘 붙지 않았고, 중심을 맞추어 가죽을 위치시키는 것이 어려웠다. 재단을 나름 정확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만드는 과정에서 그렇지 않음이 발견될 때 느껴지는 허탈감이란 (...) 가죽을 당기고 조절하면서 계속 시도해보니 결국은 잘 부착할 수 있었다. 가방을 만드는 과정 중 제일 어려운 구간이었다.


6. 가방끈에 고리 연결하기

고리를 만드는 부분은 따로 과정 샷을 촬영하지 못했다. 만들어둔 가방끈에 개고리를 통과시킨 뒤 고리 모양을 만들어 가방끈끼리 부착해주고 여분 가죽으로 마감을 해주는 공정이다. 미닛뮤트 가방끈을 관찰하고 그 모양대로 그대로 따라 했다.


7. 완성!

프레임에 달린 고리에 개고리를 연결해주면 - 가방 완성이다! 프레임 부착하는 구간에서 난관이 많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잘 붙어있어 다행이다 :) 여닫이도 잘되는 모습을 보니 참 신기하다. 내가 이걸 만들었다니!

만든 가방끈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서 매듭을 한 번 지어 가방끈 길이를 조절해 주었다. 하지만 원하는 길이로 맞추다 보면 매듭 부분도 길어져서 맸을때 항상 대롱대롱 튀어나오는 매듭 끈. 역시나 재단의 과정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하며 ㅠㅠ

완성된 가방의 하단부 모습. 바느질은 튼튼하게 잘 된 것 같은데 바닥이 힘없이 딱 잡아주지 못해서 아쉬운 감이 있다. 미닛뮤트 가방 같은 경우 힘 있는 하단부를 위해 가죽을 한 번 더 덧대 주었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 과정은 스킵했다. 작은 가방이지만 디테일을 더하는 것은 참 쉽지가 않다.


8. 마음껏 즐기기

완성된 가방을 여름날의 여행에 함께해 보았다.

반짝반짝한 카페의 예쁜 식기와도 잘 어울렸던 실버 미니백 :)

다른 실버 소가죽으로 만든 카드케이스도 살짝 함께! (카드케이스 디자인도 미닛뮤트를 참고했다)




다소 충동적으로 시작한 실버 미니백 만들기. 은색 가죽으로 된 가방이 너무나 가지고 싶어서 한여름에 호기롭게 시작된 나만의 프로젝트였다. 이제는 여름이 끝나기도 했고, 이 가방을 만들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은 탓인지 이제는 실버에 대한 열망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제작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능력이며 기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내 일상에서 오래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행복하고. 한 여름만큼 뜨거웠던 가죽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며 (ㅎㅎ) 좋은 가죽을 구해 더 멋진 퀄리티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열정이 언젠가 다시 타오르기를 바란다.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글쓰기 모임

'쓰담'과 함께하는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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