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니기리같이 동글동글한 삼각형 잎이 흙을 뚫고 뾱! 등장한 건 씨앗을 심은 지 1~2주 지난날이었다. '생각했던 모양이랑 다르네' 싶었던 그 아이는 떡잎(씨앗에서 가장 처음으로 나온 잎)이었고, 시간이 지나고 그 자리에서 본잎이 나오면서 내가 알고 있는 그 모양의 허브가 정체를 드러낸다. 잎 가운데가 볼록하여 광택이 돌면서도 향긋한 친구. 오늘은 나의 첫 반려 식물인 바질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
바질의 떡잎과 본잎의 모습. 이젠 떡잎만 봐도 바질인지 알 수 있다!
작년 봄, 남자 친구의 추천으로 바질을 키워보기로 한 나. 실패의 쓴 맛을 덜기 위해 단돈 2,000원이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다이소 식물 키트를 골랐다. 플라스틱 화분 속 적은 흙에서 싹이 나는 것도 신기했는데, 계속 올라오는 새순의 크기가 커지며 어엿한 허브의 모습이 되는 것이 마치 내가 식물을 굉장히 잘 키우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줘서 참 뿌듯했었다. 수확한 열댓 개의 바질 잎으로 우리는 소소한 카프레제를 즐겼고, 자급자족의 뿌듯함을 선물했던 작은 바질 세 줄기는 계절이 선선해지면서 점점 잊혔다.
인생 첫 수확한 바질이 카프레제가 된 모습. tmi이지만 치즈는 편의점에서 파는 스트링 치즈다.
한 해가 지나고 다시 뜨거운 여름이 찾아왔다. 글쓰기 모임에서 같이 글을 쓰는 김파카 작가님은 식물 에세이를 출간하셨고(브런치 북 대상 수상의 그 작품!) 왠지 결이 잘 맞을 것 같은 느낌 좋은 그 책을 쭉쭉 읽어 내려갔다. 식물을 관찰하며 얻었던 일상의 작은 통찰이 마음을 울렸고, 식물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내용도 알찼기에 중간을 읽는 즈음에는 이미 마음으로 키우는 식물이 하나쯤 생긴 기분이었다. 마침 올여름 최고의 음료로 소개할 수 있는 '토마토 바질 에이드'에 푹 빠져있었던 터라, 잊고 있었던 나의 향긋한 친구 바질을 다시 심게 되었다.
"식물이 잘 크고 있다면 나 또한 잘 크고 있다는 겁니다"
생각 없이 씨앗을 마구잡이로 뿌린 탓에, 한 구역에서 여러 줄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며 아차 싶었지만 그래도 책에서 배운 대로 이것저것 신경 쓰며 찐한 관심을 보내 주었다.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화분 밑구멍도 손 봐주고, 햇빛이 적다면 바람이라도 잘 통해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화단으로 자리를 옮겨주었다. 겹쳐서 자라는 바질들은 뿌리를 들어 조심스레 다시 심고 흙 속 영양분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해주니 기대에 부응하듯 바질들은 그저 열심히 잎을 내주었다. 가까이 다가가 청량하게 톡 쏘는 허브향을 맡으면 그 날의 스트레스는 그걸로 아웃.
무럭무럭 잘 자라는 바질. 초보자도 쉽게 키울 수 있는 친절한 허브다!
하지만 탐스러운 허브를 탐하는 것은 인간인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화초로 무성한 화단 속 벌레들이 바질 잎을 야금야금 먹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유기농이라는 반증이지'하며 괜찮은 척 하지만, 반 이상 먹혀 형체를 알 수 없는 잎을 정리하며 허탈감을 느낀 뒤부터는 빠르게 수확해 토마토 바질 에이드를 즐기는 노련함도 생겼다. 최근엔 거세게 내리는 장맛비에서 대피시켜 주지 못한 찰나에 화분이 초토화된 적도 있다. 잎이 흙바닥에 닿을 만큼 처지고, 쓰러지고, 흐물해진 바질의 줄기를 다시 다져주며 미안해하는 내 모습을 보며 주변에서는 '프로 농사꾼 다 됐다'며 재밌어한다.
아직도 올해 처음 맛 본 토마토바질에이드의 신선한 충격이 잊혀지질 않는다...
토마토 바질 에이드, 나도 만들어 보고 싶다면?
1. 대추토마토는 꼭지 부분을 잘라내고 아주 살짝 데쳐 껍질을 벗겨 준비한다. (데치면 껍질이 술술 벗겨진다)
2. 보관 용기를 열탕 소독하고 물기를 제거한 뒤, 대추토마토와 설탕을 1:1 비율로 넣어 깔아준다.
3. 바질, 레몬즙, 오레가노를 취향껏 넣고 2와 3을 반복해 켜켜이 쌓는다. 하루동안 실온에 보관한 뒤 이후는 냉장 보관한다.
5. 쫄깃해진 토마토 과육과 생바질을 함께 씹어 즐겨본다. 달달하고 상쾌한 맛이 더위를 확 날려줄 것이다!
더욱 풍미를 더하기 위해 오레가노도 챱챱 뿌려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함을 묻히는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정말 행복해진다. 앞으로의 날들이 기대되고 잘 살고 싶어 진다.
김파카 작가님의 책에서 참 좋았던 구절이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 구절이라 조금 우스울 수도 있지만 나는 지난 두 달간 바질과 함께 울고 웃으며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떠서,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단으로 나가 컨디션을 체크하며 정성을 들이는 일과는 생명의 성장에서 오는 뿌듯함과 함께 내 마음의 평정심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다. 비록 장마철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만나 함께 고생하고 있지만, 이런 어려움 마저도 행복을 위한 밑거름이라고 생각될 만큼 나도 바질도 단단하고 끈끈해진다. 한해살이 풀인 바질이 잎을 내며 애쓰는 그날까지 나도 조금 더 기운차게 살아보겠다. 그리고 이번에 얻은 에너지를 통해 더 많은 반려 식물들과 함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지속적으로 키워보겠다.
p.s. 작은 식물이 나보다 커다람을 몸소체험할 계기를 만들어주신 김파카 작가님께 소소한 감사를 더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