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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Dec 12. 2020

코로나 시대, 마음 근육도 운동이 필요해

누구보다 지친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한 글

일상처럼 굴러가던 타이어에 아주 강한 브레이크가 잡혀 꼼짝할 수 없었던 올해. 마스크를 쓰지 않은 과거를 마주할 때면 어색함을 넘어 두려운 감정까지 드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10개월째 살고 있다. 넷플릭스 속 재밌는 콘텐츠를 정주행하고 나중으로 미뤄둔 책을 꺼내 한 장씩 넘겨보지만 그걸로는 결코 보상될 수가 없기에.


'삭제되어버린 한 해',
'잊고 싶은 한 해'가
2020년의 이름표가 되어버렸다.



나 역시 이 글을 준비한 초반에는 '코로나로 인해 내가 잃었던 것들'에만 매몰되어있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나까지 그렇게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정말 올 한 해는 잊어야 마땅한 한 해일까?' 막연히 고민하다 일기장과 사진첩을 뒤적이며 한 해를 정리해 보았다. 놀랍게도 내 생활은 이전보다 나아진 부분도 있었다.


일상 속에 잠식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돌이켜본 한 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1. 프로사부작러, 집안 정리에 소질이 있는걸?


나는 꼼꼼한 성격이지만 집안 살림에는 1도 관심 없는 무심한 인간이었다. 거의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집안을 돌보게 되었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내 방을 시작으로 화장실, 거실, 부엌, 안방 등 모든 공간들을 샅샅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필요 없는 물건은 과감하게 버리고, 남은 물건은 찾기 쉽고 보기 좋게 정리하며 쓸고 닦았다.


여름부터 관심과 사랑받고 잘 자란 식물들도 집안으로 데려와 거처를 마련해 주니, 각자의 위치에서 생명력과 싱그러움을 뽐내며 인테리어 용으로도 더없이 훌륭한 친구들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기 전, 식물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물을 주거나 방향을 바꿔주는 작은 일들은 오히려 나를 더 기쁘게 하는 기분 좋은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수년을 매일같이 지냈던 공간이지만 내 손길로 정리된 공간들은 나에게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같은 성격을 띤 물건들은 함께 자리 잡았고,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아닌 것은 어떤 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집이라는 공간의 작은 것까지 꿰뚫고 나름의 체계 속에서 관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지내기에 더 나은 공간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작은 확신을 주었다.


#2. 나 같은 사람도 재밌게 운동할 수 있구나


꾸역꾸역 버티듯이 다니던 요가학원이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후 나의 차선책은 바로 닌텐도 링 피트였다. 오빠와 새언니가 이미 수개월째 즐겨하고 있는 게임식 운동을 1일 체험판으로 즐겨볼 수 있었고, 멋진 그래픽에 감탄하며 한 시간 남짓 따라 하니 상당량의 운동이 끝나 있었다. (심지어 그것은 매우 재미있었다)



유저 맞춤형 운동, 게임 형식으로 즐거운 부분 등 링 피트의 인기 요소는 다양하지만 내가 꼽는 최고의 이유는 운동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지속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다. 요가학원에 다니던 시절처럼 운동하기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 눈치를 보거나, 헝클어진 머리나 운동복의 스타일을 신경 쓰거나, 땀에 젖은 채로 환복 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올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내가 편한 시간에 매트를 깔고 오롯이 운동하면 되었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적당한 욕심이 생기니 습관 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일상에서 운동효과를 높일 수 있는 간단한 습관(수시로 배에 힘주고 있기)을 실천하게 됐고, 단백질 보충을 위해 섭취하는 달걀의 다양한 레시피(완벽한 반숙 계란, 부드러운 완숙 계란)도 익혔다. 몸에 부담스럽지 않은 한 끼를 연구하다 평소에도 좋아했던 각종 야채(애호박, 버섯, 양파 등)를 구워서 즐기는 취미도 생겼다.


애호박과 토마토를 구워 먹은 날
어째 코로나 이후로 그 이전보다
더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인생 첫 스키장, 제대로 해 본 첫 캠핑에서 새소리에 눈뜨던 순간, 수년을 별러온 운전면허 취득, 안 갔으면 억울했을뻔한 제주여행, 고대하던 미싱 클래스 시작(지금은 잠시 홀딩..), 그리고 너무나도 감사한 재택근무 환경"


11월 이후 부정적으로만 치닿는 상황들에 휩싸여 내가 잊고 있었던 2020년의 소중한 기억들이다. 마음이라는 게 근육 같아서 생각하는 쪽으로 굳어진다는 글귀를 보았다. 지독한 상황 속에서 모두가 힘든 시간이지만 그래도 마음의 근육을 조금 다른 쪽으로 움직이려는 운동을 해본다면 소중한 기억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의 이 글은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다독이기 위한 글이 맞다)


먹방 유투버의 기분을 살짝 느껴봤던 2시간

며칠 전에는 생전 사용해 보지 않던 배달 어플로 와인에 곁들여 먹는 모둠 치즈, 생크림과 과일이 잔뜩 올라간 사치스러운 와플을 주문해 와인바와 카페에 가지 못하는 현실을 소소하게 달래 보았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에는 각자의 집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해두고 화상 미팅 서비스로 친구들을 만나 송년회를 대신했다. 다들 팍팍한 현실 속에서 그래도 아기자기하게 해 놓고 살고 있더라.


우리 모두 남은 2020년 보름은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아기자기하게 지내보면 어떨까?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글쓰기 모임

'쓰담'과 함께하는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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