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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Jun 12. 2021

명품, 사고 싶지만 사고 싶지 않아

욜로 일상 속 당연해진 명품을 고찰하다



정신없는 출근길, 어떤 여성이 내 앞을 지나간다. 셔츠에 청바지를 매치한 평범한 차림임에도 눈길이 가는 이유는 어깨에 살포시 걸쳐진 명품가방 때문이다.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패션이지만 그 브랜드의 로고를 발견하는 순간 누구나 시도할 수 없는 스타일로 느껴지게 하는 마법 같은 명품의 힘. 이런 고가의 명품 아이템들이 언제부턴가 우리 일상에 부쩍 가까이 다가온 것 같다.


내가 명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자주 가던 쇼핑몰의 상품 소개 콘텐츠를 통해서였다. 분명 나는 트렌치코트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이 페이지를 보고 있지만, 자꾸 시선이 가는 곳은 코트와 조화롭게 매치된 버버리 머플러, 메종 마르지엘라의 가방이었다. 이후 버버리 고유 패턴에 집착하는 증후군 비슷한 것이 생겼고, 마르지엘라의 그 가방과 비슷한 디자인을 접할 때마다 다소 흥분하곤 한다.


참을 수 없는 버버리의 클래식함. 노바체크 패턴은 언제나 광속품절


젊은 세대에게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이나 유명 인플루언서들 역시 사람들에게 명품 아이템을 소개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연예인의 경우 각자가 홍보대사(앰버서더라고도 한다)를 맡고 있는 브랜드의 제품을 몸에 두르고 촬영한 화려한 화보집을 선보이고, 인플루언서들은 해당 브랜드의 제품을 제공받거나 런칭 행사에 초대되어 멋지게 드레스업 한 사진을 SNS 피드에 공개하며 관심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어린 나이 때부터 명품을 구매하는 행태가 눈에 띄게 많아진 것 같다. 10대 학생이 본인이 소장한 고가의 명품가방을 리뷰한 유튜브 영상이 주목을 받기도 하고, 20대들이 구입할 법한 화장품 브랜드 제품을 중고등학생 친구들끼리 서로의 생일선물로 챙겨주기도 한다. 이렇게 명품을 소비하는 장벽이 낮아진 요즘, 이따금 명품 아이템 구입을 고민하게 되는 나 스스로의 변화도 크게 놀랍지 않다.


샤넬과 구찌의 뮤즈, 제니와 아이유 (출처_BAZZAR, W)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명품이란 '갖고 싶은' 욕망의 불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거부감이 드는 대상이기도 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소개하는 제품의 옆에는 늘 명품 아이템이 함께 자리했고, 그 후광효과를 얻고자 하는 전략이 이곳저곳에서 반복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피로감을 느꼈다. 가끔은 주객이 전도되어 명품이 지나치게 눈을 사로잡는 경우도 있어, 이제는 명품으로 스타일링하지 않는 쇼핑몰이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다.


모델이 샤넬의 가방을 메지 않았다면, 프라다의 모자를 눌러쓰지 않았다면, 구찌의 뮬을 신지 않았다면 내가 아직도 이 쇼핑몰의 이 제품에 집중하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내가 언젠가부터 빈티지 제품을 열심히 모으고 있는 이유도 제품 자체보다 단순히 로고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철자가, 악어 모양의 자수가, 입생로랑의 로고가 없었더라도 나는 과연 이 제품들을 망설임 없이 구매했을까?


내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셔츠인가 가방인가


사람들이 명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제품의 퀄리티가 뛰어나며 애프터서비스가 확실해서 일 수도 있고, 오랜 시간 동안 이어온 창립자의 마인드나 철학 혹은 브랜드 고유의 무드가 마음에 들 수도 있다. 비싼 몸값을 은근히 자랑하며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 수 있는 이유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요즘 같은 욜로 세상에, 몇 살에 어떤 브랜드 제품을 얼마를 주고 사는지는 지극히 각자의 판단이며 개인의 자유로운 영역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명품 그 자체에 매몰되어 무리하지 않는 태도는 확실히 중요해 보인다. (브랜드 로고에 집착했던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꼈다) 갖지 못해 전전긍긍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그것에 불필요하게 빠져들어 있다는 신호이며, 그 욕망을 조절했을 때 내 삶이 더 건강해진 것을 몸소 험했기 때문이다. 꼭 명품이 아니더라도 내가 편하고 조화롭게 코디할 수 있는 제품을 오래 입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더욱 큰 행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쇼핑백 마저도 급이 다르게 보이게 하는 로고의 힘


트렌드에 발맞춰 열일하고 있는 명품 브랜드들 덕분에 아직도 명품 하나쯤은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단순히 명품 가방을 소유하고 싶어서가 아닌, 정말 '이거다!' 싶은 제품을 기분 좋게 소비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가 올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고급 제품을 몸에 두르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날 수 있는 명품 인간이 된다면 값 비싼 아이템은 더 멋지게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글쓰기 모임

'쓰담'과 함께하는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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